• 맑음속초13.2℃
  • 구름많음6.3℃
  • 구름많음철원6.8℃
  • 구름많음동두천7.3℃
  • 구름많음파주5.2℃
  • 맑음대관령3.7℃
  • 구름많음춘천7.2℃
  • 맑음백령도11.0℃
  • 맑음북강릉14.8℃
  • 맑음강릉15.9℃
  • 맑음동해13.8℃
  • 맑음서울10.2℃
  • 구름많음인천12.1℃
  • 맑음원주8.5℃
  • 맑음울릉도14.8℃
  • 맑음수원8.0℃
  • 맑음영월5.5℃
  • 맑음충주6.6℃
  • 맑음서산6.9℃
  • 맑음울진9.7℃
  • 구름많음청주11.0℃
  • 맑음대전9.0℃
  • 맑음추풍령5.8℃
  • 맑음안동7.3℃
  • 맑음상주7.5℃
  • 맑음포항13.4℃
  • 맑음군산7.5℃
  • 맑음대구10.3℃
  • 맑음전주10.3℃
  • 맑음울산10.7℃
  • 맑음창원12.3℃
  • 맑음광주10.6℃
  • 맑음부산13.4℃
  • 맑음통영11.3℃
  • 맑음목포10.4℃
  • 맑음여수12.7℃
  • 맑음흑산도10.8℃
  • 맑음완도9.8℃
  • 맑음고창6.8℃
  • 맑음순천4.9℃
  • 맑음홍성(예)6.5℃
  • 맑음6.6℃
  • 맑음제주11.9℃
  • 맑음고산11.6℃
  • 맑음성산7.9℃
  • 맑음서귀포12.5℃
  • 맑음진주6.5℃
  • 구름많음강화10.0℃
  • 맑음양평8.1℃
  • 맑음이천6.7℃
  • 구름많음인제6.6℃
  • 맑음홍천6.2℃
  • 맑음태백5.3℃
  • 맑음정선군4.4℃
  • 맑음제천4.8℃
  • 맑음보은6.2℃
  • 맑음천안6.0℃
  • 맑음보령8.8℃
  • 맑음부여5.9℃
  • 맑음금산6.2℃
  • 맑음8.2℃
  • 맑음부안8.2℃
  • 맑음임실5.2℃
  • 맑음정읍8.2℃
  • 맑음남원7.6℃
  • 맑음장수4.9℃
  • 맑음고창군7.0℃
  • 맑음영광군7.3℃
  • 맑음김해시11.6℃
  • 맑음순창군6.4℃
  • 맑음북창원11.6℃
  • 맑음양산시9.7℃
  • 맑음보성군6.9℃
  • 맑음강진군7.2℃
  • 맑음장흥5.5℃
  • 맑음해남5.4℃
  • 맑음고흥5.8℃
  • 맑음의령군6.4℃
  • 맑음함양군5.5℃
  • 맑음광양시10.7℃
  • 맑음진도군5.9℃
  • 맑음봉화3.4℃
  • 맑음영주6.4℃
  • 맑음문경7.5℃
  • 맑음청송군4.0℃
  • 맑음영덕9.3℃
  • 맑음의성5.6℃
  • 맑음구미8.8℃
  • 맑음영천6.8℃
  • 맑음경주시7.8℃
  • 맑음거창5.4℃
  • 맑음합천7.8℃
  • 맑음밀양9.4℃
  • 맑음산청6.9℃
  • 맑음거제10.1℃
  • 맑음남해11.2℃
  • 맑음8.6℃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10일 (일)

김남일의 儒醫列傳 88

김남일의 儒醫列傳 88

B0112007122138849-1.jpg

斥和를 주장하며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은 儒醫



충절과 절의로 뭉친 蔡得沂는 조선 중기 儒醫들 가운데 빛나는 인물이다. 특별히 鍼灸에 뛰어나 鍼醫로 묘사되기도 한 그는 인조년간에 여러 차례 인조의 질환에 대해 뛰어난 진단과 치료로 상을 받고 관직이 상승하기도 하였다. 제자백가에 달통하고 의방, 복서, 천문, 지리, 음율, 병서 등에 조예가 깊었던 채득기는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청나라와의 전쟁을 전후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비분강개하여 華山 仙遊洞에 들어갔다가 다시 尙州의 無知山에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독서에만 전심하였다. 후에 鳳林大君 등이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되자 인조가 그를 往護로 불렀으나, 병을 핑계로 불응하여 3년 동안 보은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다시 인조의 권유에 의하여 심양에서 대군들을 잘 받들었다.



蔡得沂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醫書로 ‘四醫經驗方’, ‘三意一驗方’이 있다. ‘三意一驗方’은 蔡得沂와 李碩幹, 朴濂 세명의 의사의 경험방을 후세 醫家가 편집한 서적이다. ‘四醫經驗方’은 안상우에 의하면(안상우, ‘[고의서산책194] 醫方合編’), ‘三意一驗方’에 許任의 경험방을 첨가하고 이를 증보한 서적이다. 이러한 醫書들에 蔡得沂의 경험방들이 비중있게 들어가 있는 것은 조선 후기에 의술로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蔡得沂는 1644년 봉림대군이 볼모에서 풀려나 瀋陽에서 함께 귀국한 후에 여러 차례 관직을 권유받았지만, 일체의 관직을 사양하고 낙동강 유역의 玉柱峯 아래에 은거하며 지냈다. 1798년(정조 22) 집의에 추증되었고, 상주 尙義祠에 제향되었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