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17.2℃
  • 맑음15.3℃
  • 맑음철원13.1℃
  • 맑음동두천15.6℃
  • 맑음파주12.6℃
  • 구름많음대관령14.0℃
  • 맑음춘천16.8℃
  • 맑음백령도12.1℃
  • 흐림북강릉22.1℃
  • 흐림강릉23.3℃
  • 흐림동해19.7℃
  • 맑음서울16.4℃
  • 맑음인천14.8℃
  • 맑음원주18.7℃
  • 구름많음울릉도16.7℃
  • 맑음수원14.0℃
  • 구름많음영월16.2℃
  • 맑음충주16.4℃
  • 맑음서산14.6℃
  • 구름많음울진16.5℃
  • 맑음청주19.9℃
  • 맑음대전18.2℃
  • 맑음추풍령18.4℃
  • 맑음안동20.8℃
  • 맑음상주20.5℃
  • 맑음포항20.6℃
  • 맑음군산14.3℃
  • 맑음대구19.5℃
  • 맑음전주16.2℃
  • 맑음울산15.8℃
  • 맑음창원15.1℃
  • 맑음광주17.7℃
  • 맑음부산15.9℃
  • 맑음통영15.7℃
  • 맑음목포16.9℃
  • 맑음여수16.2℃
  • 맑음흑산도13.3℃
  • 맑음완도14.6℃
  • 맑음고창16.8℃
  • 맑음순천13.1℃
  • 맑음홍성(예)15.6℃
  • 맑음16.8℃
  • 맑음제주17.8℃
  • 맑음고산17.6℃
  • 맑음성산17.8℃
  • 구름많음서귀포19.4℃
  • 맑음진주15.1℃
  • 맑음강화13.6℃
  • 맑음양평18.8℃
  • 맑음이천16.9℃
  • 맑음인제13.7℃
  • 맑음홍천15.7℃
  • 구름많음태백15.0℃
  • 맑음정선군14.9℃
  • 맑음제천15.6℃
  • 맑음보은17.0℃
  • 맑음천안16.6℃
  • 맑음보령15.7℃
  • 맑음부여14.4℃
  • 맑음금산15.7℃
  • 맑음16.2℃
  • 맑음부안15.7℃
  • 맑음임실15.3℃
  • 맑음정읍15.5℃
  • 맑음남원17.9℃
  • 맑음장수12.5℃
  • 맑음고창군16.5℃
  • 맑음영광군16.8℃
  • 맑음김해시15.9℃
  • 맑음순창군18.0℃
  • 맑음북창원16.6℃
  • 맑음양산시16.5℃
  • 맑음보성군13.2℃
  • 맑음강진군14.6℃
  • 맑음장흥14.3℃
  • 맑음해남15.1℃
  • 맑음고흥13.1℃
  • 맑음의령군16.3℃
  • 맑음함양군13.9℃
  • 맑음광양시15.5℃
  • 맑음진도군14.9℃
  • 맑음봉화14.1℃
  • 맑음영주19.0℃
  • 맑음문경18.1℃
  • 맑음청송군14.9℃
  • 맑음영덕15.0℃
  • 맑음의성16.1℃
  • 맑음구미21.2℃
  • 맑음영천19.5℃
  • 맑음경주시18.4℃
  • 맑음거창14.3℃
  • 맑음합천18.1℃
  • 맑음밀양18.2℃
  • 맑음산청15.9℃
  • 맑음거제15.6℃
  • 맑음남해14.4℃
  • 맑음14.6℃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10일 (일)

김남일의 儒醫列傳 54

김남일의 儒醫列傳 54

B0112007031631985-1.jpg

宋時烈의 질병을 치료해준 儒醫



효종이 죽은 다음에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를 두고 벌인 禮訟論爭은 宋時烈과 許穆이 벌인 유명한 논쟁이다. 각각 서인과 남인에 속해있던 두 사람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정쟁을 계속 벌이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의학에 대해서 조예가 깊었다. 宋時烈은 ‘三方撮要’라는 醫書의 저자로 유명하며, 許穆은 뛰어난 질병치료로 유명하였다.



양천 허씨인 許穆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피폐된 조선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를 위해 그는 군주의 권위 회복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체계를 구상하였다.



온라인 신문인 세계닷컴에 나온 시인 강태형의 글에 따르면 송시열은 정적인 허목의 의학지식을 인정하여 중병이 든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허목에게 아들을 보내어 치료처방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에 허목은 송시열에게 비상과 할미꽃뿌리와 부자가 들어있는 처방을 주니, 송시열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용하여 몇일간 혼절하였다가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인가? 허목은 어린 시절부터 의학에 관한 서적들을 탐독하여 많은 의론을 꿰고 있었고, 이것을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많은 사대부들은 의학 연구를 지식인으로서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이것은 당파를 초월한 공동의 목표였던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