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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0일 (일)

한의학의 세계화 그리고 나 ②

한의학의 세계화 그리고 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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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文化 연구회 소속(cafe.daum.net/mommam21)

세계 醫文化 학술기행단 신 동 진(서울 강남구 현대경희한의원)





신유한(申維翰)이 숙종45년(1719년)에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남긴 기록인 ‘해유록(海游錄)’에 ‘일본에는 없는 책이 없을 정도로 책이 매우 많고, 거리가 매우 깨끗해서 침을 뱉을 곳이 없다’는 내용이 있다. ‘책이 많다’는 것과 ‘거리가 깨끗하다’는 두 가지 사실에서 우리는 일본이 자주적으로 세계화·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핵심을 읽어야 한다. 바로 ‘번역 문화’와 ‘위생 관념’이다.



사진은 데지마(出島)에 전시되어있는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책이다. 이 책의 원본은 18세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해부학 책이었다. 네덜란드어 번역본을 텍스트로 하여 일본어로 재번역된 이 책은 일본 최초의 번역서로서 일본의 자주적 근대화·세계화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덜란드어 사전조차 없는 상황에서 두 명의 번역자가 3년간 총력을 다하여 번역·출간하였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Zenuw(=nerve)’라는 단어를 번역하기 위해 ‘신경(神經)’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이 두 명의 학자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왜 아직까지 동아시아권에서 일본식 한자어가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통용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생명력의 근원에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어 온 ‘번역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번역 문화를 생각한 순간, 사정이 이렇다면 동아시아권에서 조차도 한국은 학문적으로 독립할 수 없다는 자괴심이 가득해졌다. 일제시대의 잔재라며 우리말에서 일본식 한자어를 없애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일본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번역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 이 말은, ‘하나의 학문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학문이 되려면, 스스로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의 적용 범위를 다시 ‘한의학’으로 좁혀본다면, ‘서양의 해부학·생리학을 한의학 자체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해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의학이 온전한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해체신서(解體新書)’를 교훈으로 삼아, 한국 한의학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세계화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그 작업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하지 말자. 300여년 전 사전도 없이 3년 만에 서양 해부학 책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해낸 그들이 있지 않은가. 기존의 한의학 언어로 불가능하다면, ‘해체신서(解體新書)’를 번역한 일본의 학자처럼 신조어를 만들어서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만일 지금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한의학은 짧은 시간 내에 세계화라는 격랑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색을 잃어버리고, 빛바랜 학문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편 이미 300여년 전 에도시대에 일본에는 상하수도가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신유한(申維翰)이 일본의 거리가 너무 깨끗했다고 평할 수 있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위생 관념이 발달하였다. 목욕을 좋아하고, 상하수도를 건설한 것을 보면 로마제국의 역사가 에도시대에 재현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까지 할 정도이다. 거대한 로마제국의 역사는 도로와 상수도 건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에도시대 일본의 유학생들이 로마의 상수도와 도로의 유적을 보고 온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어쨌든, 일본의 근대화·세계화의 추진력은 ‘위생’의 힘이 밑바탕이 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위생’사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했던 이유, 그것은 일제가 ‘위생’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으로 조선의 민중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본의 근대화·세계화라는 거대한 축의 중심에 위생의 제국을 건설한 의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한의사와 의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21세기를 사는 지금, 과거의 ‘위생학’이라는 개념은 ‘예방의학’을 거쳐 ‘건강학’이라는 개념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의료인이 세계를 향해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 손에 ‘건강학’을 꼭 움켜쥐고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만을 두고 보았을 때, ‘건강학’에 보다 근접한 학문이 ‘한의학’이라는 사실은, ‘세계화’를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집단이 한의학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의 한의사는 대한민국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한의사 스스로가 그 역할을 자임하는 것, 이것이 세계화 속에 한국의 한의사가 나아갈 방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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