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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금)

“한의학, 전통 근거한 끊임없는 발전 추구해야”

“한의학, 전통 근거한 끊임없는 발전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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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박사, ‘조선시대 왕들…의학변천사’ 논문 발표



“우리 의학의 역사에서 보여주듯 의학이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변화와 발전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현대의 한의학이 조선시대 한의학의 면모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은 비(非)역사적이다. 한의학도 필연적으로 시대에 맞게 변모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지난 8월 서울대 의학박사학위 논문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을 발표한 한의사 김정선 씨(사진)는 이 논문을 통해 조선시대 역대 왕의 질병치료 기록을 중심으로 의학의 변천과정과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한국의 의료를 이해하고 향후 합리적인 의학의 방향을 설정해보고자 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는 68세 때 풍질(風疾)을 앓았고 이로인해 74세때 사망했다.



세종은 젊은 시절에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못할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고 당시 왕들이 즐겼던 사냥을 좋아하지 않은 비만한 체구였다. 이러한 세종은 당뇨병과 이로인한 당뇨망막병증 또는 당뇨병성 백내장을 앓았던 것으로 보이며 50세 때는 풍증으로 수전증이 생겨 수결을 두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문종은 종기 치료를 위해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이거나 십선산 같은 약물을 복용했으나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청심원을 복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틈도 없이 사망했다.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속에 번열증이 있어 의원(醫員)들은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느라 음욕을 채우기 위해 양기를 돕는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고 한다.



명종은 세자와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인한 심열(心熱)로 사망했다.



선조와 광해군은 질병치료로 침을 자주 맞았으며 인조는 인목대비가 죽자 오랜 소찬(素饌)으로 인해 내상(內傷)이 생겨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못해 번침(燔鍼)치료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

조선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장수한 영조는 83세에 사망했으며 비록 담병을 자주 앓았지만 노령에도 불구하고 검은 머리털이 있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1876년 개항 이후 서양문물이 도입되면서 조선왕실의 의료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되었는데 대한제국시대 국립병원인 내부병원과 광제원에서는 보완적인 관계의 한·양방 공동 진료 및 시술이 이뤄졌으며 고종과 순종은 이러한 한·양방 진료를 병용했다.



이러한 조선시대 역대 왕의 질병치료 기록을 종합해 보면 조선시대 27명의 왕들 가운데 환갑을 넘긴 사람은 6명밖에 되지 않으며 평균 사망 나이는 47세였다.



김정선 박사는 조선 왕들이 현대인들보다 단명했던 원인으로 목욕이 해롭다고 생각할 정도의 잘못된 보건개념으로 인한 불결한 위생습관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및 기욕의 무절제, 지나친 호의호식과 그에 비해 운동이 부족했던 점 등을 꼽았다.



또 조선 왕들의 주된 치료방법은 환제나 탕약 같은 약물, 침과 뜸, 치종술 그리고 인삼속미음 같은 유동식의 공급 등이었으며 의학의 이론과 방법은 시기를 지남에 따라 뚜렷한 변화를 겪어왔다.



김 박사는 “조선 초기의 소박한 의학이론과 치료법에서부터 조선 중기에 명의학의 조선화 과정을 거쳐 조선 후기를 지나면서 조선의학의 고유한 특징들이 더욱 명확해지는 의학의 흐름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조선 왕들의 질병치료에는 당대 최고 수준의 의학적 내용들을 적용했는데 이는 이후 내의원을 통해 민간의료의 모범적이고 표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민간의료는 이를 많은 경험을 통해 발달시킴으로써 다시 내의원의 의학으로 되돌려 줬다.



그 결과 조선 후기에는 독특한 한국 전통의학의 특징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현재 한의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험적이고 실용적이며 몸을 보하고 안전한 치료방법을 선호하는 경향들이 이러한 조선시대 의학의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학사상은 일반인들의 의료에 대한 관념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으며 현재까지도 이웃나라에 비해 한국인이 유독 보약을 선호하는 경향은 이러한 역사와 무관치 않다는 견해다.



김정선 박사는 우리 의학전통의 특질에 대해 “이웃나라와 비교해 관념적이기보다는 실증적이고 실용적이며 이웃나라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의학의 정수를 취하려는 학문적 면모를 지녔다”며 “한국의 의학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으나 중국의학에 종속적이지 않으며 그것을 우리 실정에 맞춰 재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의학도 역사적으로 다른 의학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점에서 한의학의 존재가치를 우리 고유의 ‘전통’에 두고 원형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김 박사는 “비록 현대인들은 의학발달에 비해 만족감은 그리 크지않아 보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의사의 공통적인 특징은 최고의 의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성실성과 진지함을 들 수 있을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언제나 가장 큰 만족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환자의 건강과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의 마음이라는 점은 다시 한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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