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국가가 막대한 교육·연구 자원을 투입해 육성한 과학기술 핵심 인재들이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5년8개월간 4대 과학기술원 중도이탈자 7명 가운데 1명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장학금 환수 등 사후적 조치에 머물러 있는 과학기술 인재 유지 정책의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결정된 2024년에는 중도이탈자 가운데 의·약학 계열 진학자 비중이 17.5%까지 상승했다. 향후 의대 정원 확대가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유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동시에, 우수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남아 연구와 진로를 이어갈 수 있는 교육·연구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1년부터 ’26년 8월까지 4대 과기원 중도이탈자는 총 293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18명(14.2%)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다.
의대증원 결정된 2024년 17.5%…UNIST는 3명 중 1명
연도별 의·약학 계열 진학자는 △’21년 69명(13.1%) △’22년 80명(14.2%) △’23년 97명(17.2%) △’24년 91명(17.5%) △’25년 76명(13.7%)으로 나타났다.
’23년과 ’24년에는 중도이탈자 중 의·약학 계열 진학자 비중이 17%를 넘어섰다. 특히 의대증원 결정과 의정갈등이 있었던 2024년에는 조사기간 중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다만 ’24년 수치만으로 의대증원이 과기원 학생들의 중도이탈을 직접 유발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3년에도 이미 17.2%를 기록했고, ’25년에는 13.7%로 낮아졌다는 점에서 의대 정원 변화와 과학기술 인재 유출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기관별로는 KAIST의 의·약학 계열 진학자가 275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중도이탈자 1636명의 16.8%에 해당한다. 이어 △GIST 61명(560명 중 10.9%) △UNIST 44명(342명 중 12.9%) △DGIST 38명(401명 중 9.5%) 순이었다.
’24년에는 UNIST의 의·약학 계열 진학 비중이 두드러졌다. 중도이탈자 83명 가운데 29명(34.9%)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해 3명 중 1명꼴을 기록했다. 같은 해 KAIST는 289명 중 48명(16.6%), DGIST는 64명 중 10명(15.6%)이었다.
’26년에는 8월까지 중도이탈자 217명 가운데 5명(2.3%)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연간 집계가 완료되지 않은 만큼 이전 연도와의 직접적인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장학금 돌려받으면 끝?…인재 유출 막을 실질적 대책 부재
문제는 국가가 과학기술 핵심 인재 양성을 위해 상당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이들의 중도이탈을 예방할 실질적인 대책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4대 과기원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등록금·장학금·학업지원금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자퇴·제적 등 학적 변동이 발생하면 일정 기준에 따라 지원금을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의·약학 계열 진학에 대한 별도 제재 없이 경제적 지원금 환수에 그치고 있어,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유출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원금 반환이 이뤄지더라도 학생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탈하는 문제 자체는 해결되지 않는다. 장학금 환수 여부를 넘어 과기원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과학기술 분야의 진로·처우·연구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27학년도부터 ’31학년도까지 의대 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과학기술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의사인력 양성계획에 따르면 기존 의대 정원은 2027학년도 490명, 2028~2031학년도 매년 613명씩 늘어난다. 공공·지역 신설 의대 계획까지 포함한 5년간 누적 증원 규모는 3342명이다.
다만 의대 정원 확대가 실제 과기원 중도이탈 증가로 이어질지는 향후 추이를 확인해야 한다. 의·약학 계열 진학을 선택한 학생들의 구체적인 진로 변경 사유와 중도이탈 시점 등을 함께 분석해야 정책적 대응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후적 조치에 국한…연구현장 떠나는 이유 점검 시급”
김선민 의원은 “4대 과기원은 우리나라가 미래 과학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육성하는 핵심 인재 양성기관”이라며 “과기원에서 중도이탈한 학생 7명 중 1명꼴로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진로 선택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추가적인 인재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과기원들이 장학금이나 지원금 환수 등 사후적 조치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과기원들은 왜 학생들이 과학기술원의 교육과 연구 환경을 떠나 의·약학 계열을 선택하는지, 과기원 교육과정과 진로·처우·연구환경 등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시급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