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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8일 (목)

일제 치하 전국에 약재 나른 사업가·한의사, 박성수

일제 치하 전국에 약재 나른 사업가·한의사, 박성수

조선무약 합자회사 설립해 한약 현대화 이바지
현대 한의사 제도 기반 마련…대한한의사협회장 역임

본란에서는 광복 77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한의사들의 삶을 조명하고 의미를 되새겨 본다.[편집자주]

박성수1.jpg

 

나라 망한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이여. 오늘 일은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살아서 살고 싶어도 살고 죽고 죽어도 죽고. 지난 백 년 동안 누가 죽을 수 있을까? 어쩌면 생명의 선을 위해 싸웠고, 죽음을 위해 생명의 선을 위해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동포 2천만 명은 근거도 없이 죽었다.”

 

1919년 기미독립만세 운동에 참여, 10개월 간 감옥에 수감됐던 기업가이자 교육자, 한의사인 박성수 선생이 쓴 시다. 독립운동이 투철했던 그의 시에는 망국의 설움에 대한 감회가 베어 있다.

 

문집으로 일송문고(一松文稿)’ 4권이 있다. 1에는 시(), 2에는 문장(文章), 3에는 잡저(雜著), 5에는 연보(年譜) 등이 실려 있다.

 

생애 초기

 

1897812일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일송(一松) 박성수는 유교가문에서 성장했고 일제강점기 식민교육을 시행하는 학교교육을 받는 것에 반대했던 선친의 뜻을 따라 13세부터 어머니 전씨(全氏)에게서 한학(漢學)의 기초를 배웠다. 이후 한의사 이상열(李相烈)에게 한의학을 배웠고, 경성한의약전수학원(京城漢醫藥傳受學院)을 졸업했다.

 

24세가 되던 1920년 한성약업사 및 대창창업사를 창업했으나, 이해 9월 독립자금과 밀서를 전달하며 1919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 방방곡곡에 약재를 나르며 독립운동가들의 편지를 함께 전달했다. 이 때문에 11개월간 감옥에 수감됐고 혹독한 고문 끝에 간신히 살아 나왔다.


솔표 우황청심원의 탄생

 

1925년 감옥에서 나온 뒤 그는 약업에 전념하며 또 다른 회사를 창업했다. “우리나라의 건강은 우리가 지킨다라는 신념으로 한의학의 현대화를 목표로 하는 조선무약 합자회사(줄여서 조선무약)였다.

 

조선무약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제약사며 솔표 우황청심원, 위장약, 위청수 등 대표적인 한약들을 개발했다. 특히 솔표 우황청심원은 한약의 현대화에 크게 이바지한 제품이다.

 

솔표 우황청심원은 해방 후 일본 전역에 수출되기 시작했고, 그는 스타한의사로 일본에 초빙돼 각종 세미나에서 학술 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박성수2.jpg
박성수 한의사의 공적을 조명한 1989년 3월27일 약업신문(오른쪽 첫 번째)기사

 

한의사 제도 기틀 다져

 

1950년 박성수는 수양한의원을 개설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온양에 <국립구호병원>을 설립해 다친 장병들과 마을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같은 시기 부산 피난 시절에는 전란 중임에도 불구하고, 한의사제도를 만들기 위해 동료 한의사들과 고군분투했다.

 

이런 공로로 1953년 서울시한의사회 초대회장에 피선돼 활동했고, 1954년 한의사협회 기관지 <東洋醫藥>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개인재산을 털어 창간작업에 매진하기도 했다.

 

1955년 박성수는 동양의약대학의 설립인가를 얻어냈다. 같은 해 8월 동양의약대학에 약학과가 병설됐고, 1964년에는 동양의과대학으로 개칭됐다. 이에 따라 수업 연한이 6년제로 바뀌어 국내 한의사 양성 기반이 확고해졌다.

이 대학이 바로 지금의 경희대학교 한의과다. 박성수는 1957년 한국에서 두 번째 한의학 교수가 되어 경희대학교에서 제자들을 육성했고, 이때 제3, 4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역임했다.

 

1957년에 간행된 <忠淸人士集>에는 충청도 출신 인물 가운데 공적이 있는 인물로서 그를 소개하고 있다. 그 자료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양정중학교 후원회장부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의예과 후원회장(1945), 서울 사립중학교 후원회 연합회장, 한양국립구호병원 건설위원장, 한의사 국가시험위원,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상임위원, 대한한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다 1961년 당시 국가재건회의에서 한의사제도 관련 법률을 삭제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박성수를 포함한 초기 한의계 원로들은 한의사제도 폐지획책을 저지하고 한의사의 법적 지위가 확보된 의료법안을 통과시키려 엄청난 노력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성수는 오한영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과 내무부장관, 문교부 장관 등 각 요직에 손을 써 한의대 인허를 받아내는 한편, 법 제정 쪽에 관심을 쏟아 국민의료법 제2조 의료업자 종류에 한의사를 삽입, 명문화하는 데 성공해 오늘날 한의사 제도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성수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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