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20.8℃
  • 흐림15.5℃
  • 흐림철원15.6℃
  • 구름많음동두천15.3℃
  • 구름많음파주14.5℃
  • 구름많음대관령11.8℃
  • 흐림춘천15.8℃
  • 비백령도13.6℃
  • 흐림북강릉19.3℃
  • 흐림강릉20.7℃
  • 흐림동해19.1℃
  • 구름많음서울16.1℃
  • 구름많음인천15.5℃
  • 구름많음원주16.4℃
  • 흐림울릉도18.9℃
  • 구름많음수원15.4℃
  • 구름많음영월14.6℃
  • 흐림충주16.1℃
  • 흐림서산16.0℃
  • 흐림울진18.7℃
  • 비청주17.5℃
  • 구름많음대전17.2℃
  • 흐림추풍령16.0℃
  • 구름많음안동18.7℃
  • 흐림상주17.8℃
  • 구름많음포항20.6℃
  • 구름많음군산16.5℃
  • 구름많음대구19.2℃
  • 흐림전주18.3℃
  • 구름많음울산18.2℃
  • 구름많음창원17.3℃
  • 구름많음광주18.0℃
  • 구름많음부산17.6℃
  • 구름많음통영17.0℃
  • 흐림목포18.1℃
  • 흐림여수17.7℃
  • 구름많음흑산도15.9℃
  • 구름많음완도17.8℃
  • 구름많음고창18.2℃
  • 구름많음순천14.5℃
  • 흐림홍성(예)16.1℃
  • 흐림15.9℃
  • 구름많음제주18.8℃
  • 맑음고산18.1℃
  • 맑음성산18.7℃
  • 맑음서귀포19.3℃
  • 구름많음진주16.6℃
  • 흐림강화14.1℃
  • 흐림양평16.2℃
  • 흐림이천16.5℃
  • 구름많음인제14.9℃
  • 흐림홍천15.4℃
  • 흐림태백14.8℃
  • 흐림정선군13.7℃
  • 구름많음제천14.4℃
  • 구름많음보은15.8℃
  • 흐림천안16.1℃
  • 구름많음보령17.1℃
  • 구름많음부여16.2℃
  • 흐림금산16.6℃
  • 구름많음16.3℃
  • 구름많음부안16.3℃
  • 구름많음임실16.4℃
  • 구름많음정읍18.0℃
  • 구름많음남원18.7℃
  • 구름많음장수17.0℃
  • 구름많음고창군16.6℃
  • 구름많음영광군17.3℃
  • 구름많음김해시17.8℃
  • 구름많음순창군17.8℃
  • 구름많음북창원18.3℃
  • 구름많음양산시17.8℃
  • 구름많음보성군16.7℃
  • 구름많음강진군17.1℃
  • 구름많음장흥16.1℃
  • 흐림해남15.7℃
  • 흐림고흥16.1℃
  • 구름많음의령군17.9℃
  • 구름많음함양군17.1℃
  • 구름많음광양시16.8℃
  • 구름많음진도군16.5℃
  • 구름많음봉화15.2℃
  • 구름많음영주18.0℃
  • 구름많음문경17.3℃
  • 흐림청송군15.4℃
  • 흐림영덕17.0℃
  • 흐림의성17.1℃
  • 흐림구미19.2℃
  • 구름많음영천19.4℃
  • 구름많음경주시18.3℃
  • 구름많음거창17.3℃
  • 구름많음합천18.7℃
  • 구름많음밀양17.6℃
  • 구름많음산청16.7℃
  • 구름많음거제18.0℃
  • 구름많음남해17.7℃
  • 구름많음17.4℃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12일 (화)

김남일의 儒醫列傳 5

김남일의 儒醫列傳 5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 金 永 錫 (1079~1166)



高麗時代는 귀족이 지배한 시대로 佛敎가 국시인 관계로 儒學의 발전이 더딘 시대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제도가 확립된 후에 시험과목 가운데 많은 부분이 유학관련 경전들로 채워져 있어 儒學이 지식인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江陵이 본관인 金永錫은 고려 중기에 유학을 중시하는 문벌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그가 당시 최고위직인 문하시중에 앉아 있었던 金仁存의 아들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그는 아마도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을 것이다.



과거에 급제하면서 첨사부주부를 거쳐 합문지후, 전중내급사가 등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1133년에는 낭중으로 金나라에 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유학을 공부하는 여가로 의술을 연마하여 백성들의 질병의 치료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동로병마사를 세 번 역임하고 북로원수를 한번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은 이러한 그의 의학적 능력과도 관련이 깊다.

의학에 대해 천시하지 않는 고려시대 사회적 풍조도 의학적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 크게 작용되었다. 光宗 때인 958년부터 실시된 醫學科擧制度에는 응시자격으로 品官, 吏屬(품관이 아닌 자로 중앙관직자), 鄕吏, 庶人 등으로 그 자격을 차별하지 않았고, 仁宗 3년인 1125년에는 兩大業은 5品, 醫·卜·地·律·算은 7品까지 허용하였으며 지조와 덕망이 있는 자는 4品까지 응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의학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成宗 6년(987년)에는 醫學搏士를 임명하여 12牧에 파견하여 쓸만한 자를 골라 가르치게 하여 의학연구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김영석은 『濟衆立效方』이라는 醫書를 편찬하여 임상에 힘을 기울였는데, 이 책은 新羅와 宋나라의 醫書들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鄕藥集成方』에 남아 있는 한 개의 조문으로 그 전모를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내용이 고려의 독자적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 내용은 “偏風手足不遂, 疼痛을 치료한다. 松葉 다섯말 정도에다가 소금 두되를 쪄서 뜨겁게 하여 푸댓자루에 담아 다림질해준다. 차가워지면 다시 쪄주어 병이 나을 때까지 한다”이다. 이러한 치료법이 唐代 王燾의 『外臺秘要』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이기는 하지만 『外臺秘要』의 경우에는 內服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濟衆立效方』에서는 外用하는 것이기에 그 중국적 맥락이 아니라 한국적 맥락에서 치료법을 정리한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