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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1일 (월)

김남일의 儒醫列傳 23

김남일의 儒醫列傳 23

醫學서 治國의 원리 찾아낸 儒醫



‘千金要方’에서 孫思邈은 “가장 수준 높은 의사는 나라를 치료하고, 보통 수준의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고, 낮은 수준의 의사는 병만 치료한다(上醫醫國, 中醫醫人, 下醫醫病)”고 하였다. 나라를 치료한다는 것은 나라에 속하는 임금·백성들의 질병만을 치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학 속에서 治國의 원리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권찬은 아마도 文官으로서 醫學에서 治國의 원리를 찾아낸 인물이다. 그는 1462년(세조 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醫書習讀官에 임명되어 이후로 의학을 넓게 연구하여 의학에 정통하게 되었다.



醫書習讀官은 조선 초기에 의학교육과 의학연구를 위해 士族 출신의 젊고 총명한 관리를 뽑아 醫書를 읽도록 한 제도이다. 醫書習讀官으로 임명된 자들 가운데 성적이 우수하다고 평가된 자는 顯官(널리 알려진 높은 벼슬)을 제수하는 등, 이 제도는 의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긍정적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의학을 士族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에게까지 보급하여 의학에 종사하는 자들의 수준을 높이는 좋은 제도로 이후 한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권찬이 바로 이 제도의 수혜자였던 것이다. 醫書習讀官 시절의 우수한 성적은 이후 그의 출세를 앞당겨 주었다. 그는 1466년에 내의원주부 겸 의학교수, 감찰을 역임하였고, 이듬해에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왕손의 질병을 고친 공으로 품계가 두 단계 상승하게 되면서 종친부전부 겸 의학교수로 승진하였다.



그는 이후 세조를 치료해준 공로와 ‘醫方類聚’를 간행한 공로로 자헌대부(정 2품)로 승진되었다. 1478년에는 세조비 정희왕후의 치료에 대한 노고로 다시 정헌대부로 올라가게 되었고, 1483년에는 현복군으로서 약방제조를 겸임하다가 공조판서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醫人으로서 자신의 전공을 계속 유지하면서 중앙 무대에서 정치가로 이름을 드날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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