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 학식이 높은 사람과 낮은사람, 권력이 있고 없고의 구분 대신에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둘로 나뉜다."
랑탕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시작하는데 차에 탈 때 포터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자기 역할이 있었다. 가이드는 노르부(Norbu), 등반대장은 까미(Kami), 그리고 부등반대장과 주방장, 주방보조 4명, 두 명의 여자와 남자 3명으로 모두 13명이다.
놀라운 것은 여자 둘이 주방보조도 아니고 주방도구 및 음식물을 나르는 포터요, 남자 3명은 포터들로 카고백을 하나씩 가져갈 줄 알았는데 왠걸 백 3개를 하나로 묶어 머리에 이고 간다.
개당 무게만도 아마 60Kg은 훨씬 넘으리라. 우리는 가벼운 차림에 배낭 하나만 맨 채로 걷기 시작해 해발 1672m의 도멘, 1970m의 밤부롯지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했다.
이날 오후 2390m의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다음 날 오전 8시에 출발 1시간30분 후에 리버사이드(해발 2769m)에 다다르고 11시에 고라타벨라(해발 2992m)에 도착하니 시골장터처럼 시끌벅적하다. 독일, 일본, 영국, 스위스, 페루 등 세계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점심 식사 후 1시 출발하여 한 시간 여를 걸으니 탕삽(해발 3141m)이 나타난다. 방목하여 기르는 야크(수컷)와 냐크(암컷)를 보면서 천천히 가니 오후 4시30분에 랑탕 2봉(해발 6571m)과 랑탕리룽(해발 7225m)이 보이는 랑탕밸리(해발 3500m)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묵는 동안 바람이 너무 세서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데 어찌나 추운지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에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지고 있다.
5일째 랑탕밸리를 출발, 계곡 아로 빙하가 녹아 내는 큰 물소리를 벗 삼아 걷기를 네 시간. 랑탕트래킹의 목적지인 강진곰파(해발 3850m)에 도착하여 잠시 쉰 다음 야크 치즈공장과 지상에서 제일 높은 곰파(사원)를 구경한 뒤 랑탕리룽의 바로 밑에서 사진을 찍으며 휴식을 취했다.
6일째는 세 개의 빙하가 교차하는 랑시샤카르카(해발 4160m)를 다녀오기로 했다. 눈으로 덮여 있는 세 개의 봉우리 즉, 우측에는 조개 모양의 간첸포봉(해발6387m), 좌측에는 모리모토봉(해발6750m), 가운데 랑시사리(해발6427m)가 위엄있게 자리하고 있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랑탕 콜라(강) 상류 주변의 황량한 풍광을 여유있게 감상하며 삶의 여정에서 휴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다음 날 힘들었지만 매우 의미있던 트레킹을 마치고 하산을 했다. 하산하여 우리는 구왕궁에 들렀다. 구왕궁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더발광장에 43개의 건물들이 있는 곳이다. 중요한 것으로는 수도 카트만두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카타만답이라는 사원으로 12C에 하나의 큰 나무만을 사용해 만들었다.
우리는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전국 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신 시인이 자작시와 미국의 철학자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낭송하였다. 산은 우리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한다. 여행이란 이래서 가치가 있나 보다.
마지막 날은 인도의 아쇼카왕이 지었다는 탑과 원숭이가 있는 스와이암부넛사원을 시작으로 바그마티강 옆 화장터이자 창조의 신 브라흐만, 죽음의 신 비쉬느, 파괴의 신 시바의 힌두신 중 시바를 모신 파슈파티넛사원과 티벳난민이 모여 있고 불교사원으로 이름난 보우드넛을 관람했다.
이후 인천공항을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난 일정을 회상한다. 기내에서 만난 국내신문은 나를 쉽게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다. 네팔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 학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권력이 있고 없고의 구분 대신에 히말리야를 다녀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둘로 나뉜다라는 말이 기억에 와 닿는다. 다시 또 히말라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내 마음은 벌써 눈 덮인 히말라야 한 계곡으로 달리고 있다.
최영국 원장
안양시 선우한의원
전 경기도한의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