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성·유효성 잣대로 한의학 평가는 어불성"
공정한 평가위한 독립 한의약청 신설 선행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기우 의원 외 37인에 의해 발의된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 법안의 골자는 한 마디로 현재의 한·양방 의료기술을 새롭게 평가해 인정을 받지 못한 의료 행위는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기존 의료법 및 국민건강보험법을 비롯 복지부장관의 유권해석 등에 의해 시술되고 있는 의료기술도 재평가하겠다는 초법적 발상이 담겨 있다.
이에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이 법안은 어디 한 두군데 손을 봐서 시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전면적인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토록 한의계가 발끈하게 된 이유는 현재와 같이 양방의약적 편향된 의료정책 아래서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는 것은 결국 한의학의 존재를 무시, 상당수의 한방의료기술이 불법의료로 전락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법통과시 인정된 기술만 행해야
실제 이 법안 제45조의3 제1항은 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등에 관한 평가(의료기술평가)를 실시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 동 조의 2항은 의료인은 평가에 따라 안전성·유효성이 인정된 의료기술을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못박고 있다.
3항에서는 안전성·유효성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재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고, 4항은 의료기술평가 결과 공표, 6항은 의료기술평가를 관계 전문기관 또는 단체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의료기술평가위원회 설치, 의료기술로 인정못받은 의료행위시 3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은 각 조항마다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의료기술평가위원회 구성만 해도 정부가 지금껏 해온 과거의 행태만 따져봐도 위원회 구성원 대다수가 양방의사로 채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의료기술평가위원회 구성도 허울
이렇게 되면 겉으로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위원회의 운영이 담보된다. 그러나 실상은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의 극치에 불과하다. 결국 이 위원회의 결정은 공정함을 내세워 한방의료기술의 불인정을 남발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의료기술평가를 위탁할 관계 전문기관 또는 단체 실체도 같은 맥락에서 한의계에 신뢰를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식약청과 같은 또 다른 평가 전문기관이 설립될 때 현 의료정책상 양의약학 위주의 관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될텐데 그곳에 올바른 한의학 평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가장 불합리한 부분은 역시 '의료기술평가' 자체다. 안전성·유효성을 인정할 수 있는 한방의료기술 평가 잣대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서는 그 무엇도 평가할 수 없다.
양방에서 주장하는 과학적 논거 중심의 근거중심의학(EBM) 체계로 한방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의료의 접근 체계 및 관점이 상이한 독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서양의학적인 일방적 논리로 한의학을 재단할 것이 뻔한 의료기술평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한의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또한 안전성·유효성의 재평가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가령 추나요법 처럼 학문적 인정은 물론 복지부장관의 유권해석에 의해 시술되어온 그 동안의 일상이 모두 무시될 수 있는 불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관련 수원시 고려한의원 황화수 원장의 지적은 많은 공감을 불러 모은다. 황 원장은 자신이 개발한 의료기기 허가를 받기위해 식약청, 심평원, 복지부를 방문하면서 경험한 한방의료기술의 소외 현장을 말했다.
안전성 규정 자체가 한방 장애물
황 원장은 "한방의료기기를 개발했을 때 식약청에서 허가를 득하는 첫 번째 절차는 안전성·유효성 심사 규정에 따른 근거 자료 제시다"라며 "하지만 그 근거자료는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잣대에 의해 아예 한의학 원리는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임상시험 계획서 제출도 넘어야 할 산이나 그 산을 넘을 방법이 전혀 없다. 관련 규정에는 200병상 이상의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며 "그러나 200병상이 넘는 한방병원이라곤 경희대 한곳 밖에 존재치 않는 실정에서 이 규정은 한의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와 다름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런 암담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고쳐 나가기 위해 청와대 민원을 비롯 복지부, 심평원, 식약청 관계자들과 숱하게 부딪쳤지만 결론은 양방의학적 사고와 관점이란 장벽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맛보아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황 원장의 지적은 한의학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안전성·유효성 확보도 양방적 시각으로 접근할 때는 한의학을 가둬 메는 올가미에 불과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채 의료기술평가를 강행한다는 것는 한의계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타협 불가 사항이다. 꼭 시행하고 싶다면 수천년 임상경험의 보고인 한의학적 특성을 인정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먼저 해결될 때야만이 가능하다.
특히 이 가운데는 양방 의약학적 관리 감독의 중추기관인 식약청과 같은 별도의 ‘한의약청’이라는 조직의 신설이 필요하다.
또한 당장 한의약청의 신설이 어렵다면 식약청내 한의약 전담부서를 설치, 제대로 된 한방의료행위 평가를 위한 인프라부터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