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로 원장 천안 약선당한의원 <한의학당 회장>
‘넌 누구냐?’ 2004년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15년 동안 누군가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 세상에 나온 오대수(최민식)가 자기를 감금시켜온 누군가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대수가 이 질문을 던질 때의 심정은 정말 절박했을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학문과 직업에 질문을 던져봅니다.
‘한의학! 너는 누구냐?’, ‘한의사! 너는 누구냐?’ 이런 질문은 한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누구나 한번씩은 가졌던 질문이었고, 졸업을 하고 임상을 하는 지금도 우리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한의학과 한의사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해답을 얻지 못한 채로 무관심하게 보내온 수 십년 동안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의학과 한의사의 영역은 서양의사, 약사, 침구사, 의료기업자, 건강식품업자 등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계속될 뿐만 아니라 점점 가속화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 학문과 직업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확인은 이 시대와 우리사회에 대해 한의학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영역을 확보하는 당위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의사의 직역을 확립하는 데에는 몇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이는 크게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문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학문을 하는 방법과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의 문제입니다. 가끔 한의사통신망에 환자 케이스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올라오는데, 동일한 단어라도 한의사들 서로간에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질문자와 응답자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의학은 의학이며,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의학 역시 인체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관찰하고 설명하고 연구합니다. 이와 같은 연구내용을 설며하기 위해 전문적인 언어가 필요합니다.
다만 한의학은 고대로부터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속에서 동양철학에서 사용되던 언어를 차용하여 인체가 발현하는 현상들을 설명하다보니 추상적, 중의적 언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인체의 현상을 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좀더 세분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하지 못함으로 인해 용어의 표준화와 객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고, 한의사 서로간의 학문적 소통에 장애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체라는 실체에 기반을 둔 소통 가능한 언어로 한의학이 설명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적으로는 국민들에게 비쳐지는 한의사의 정체성 확보가 시급합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 아직도 한의사는 ‘침이나 놓고 보약이나 처방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환자를 심심치 않게 만나곤 합니다.
또한 한의원마다 진단하고 치료할 때 이를 설명하는 언어와 방식이 제 각각이라 혼란스러워 하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각종 매체에 나오는 한의사들은 민간요법의 해설자이거나 식품영양학의 전도자이거나 신비스런 동양철학자처럼 제각각 나름의 논리와 언어로 한의학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국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한의사가 되려면, 서양의학과 다른 관점을 견지하면서 고유의 의료영역과 치료방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질병치료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한의사의 기본적인 의학적 소양속에 객관성과 재연성이 함유되어 지금보다 상향평준화된 한의사가 많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문제를 상담하고 해결책에 대해 조언을 얻을 수 있도록 신뢰받는 의료인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임상한의사들이 매일 매일의 임상 속에서 일대일로 만나는 환자들에게 한의학이 이해받을 수 있고 신뢰받을 수 있다면 이 땅에 한의학과 한의사가 설 자리는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처음 대면하는 환자의 눈 속에 항상 이런 의문이 들어 있습니다. ‘넌 누구냐?’ 우리들 모두는 이 질문에 당당하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우리들의 말이 또 다른 우리들에게 들리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