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로 원장 천안 약선당한의원
<한의학당 회장>
한의학은 지금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인류의 문명사를 보면 문화는 민족간의 침략이나 상업적인 교류를 통해 발전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침략을 통한 지배일 경우는 지배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피지배자의 문화가 억압되기도 하며, 때론 아주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 경우엔 오히려 권력의 비호 아래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올바른 문화교류란 서로의 특성에 맞게 단점은 도태되고 장점은 융화되어 더욱 발전을 이뤄내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학(전통의학)은 자연스러운 동서의학의 교류의 장을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곤 긴 역사적 단절 속에서 전통의학의 수많은 유산이 서서히 사장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말로 암울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국가제도 속에서 계승발전 해오던 전통의학은 19세기말에 서양의학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기존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찰의 틀과는 전혀 다른 근대 과학을 등에 업고 발전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의학이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선조들은 자주적으로 서양의학을 수용하고자‘의학교관제’와 ‘의사규칙’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곧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고 일제에 의한 전통의학 말살 정책과 함께 우리의학은 자주성을 잃게 됩니다.
그로부터 우리의학 중심이었던 의료체제가 서양의학중심으로 바뀌어졌고, 주류의학에서 밀려난 한의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전통의학이 개발한 소중한 의료기술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지만, 오늘날까지 한의학은 학문적 성숙에 매진할 경황이 없었습니다. 단지 존재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1951년 한의학은 한의사 제도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서양의학에 내어준 주류의학의 자리는 오늘날까지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류에서 밀려난 한의학은 제도적 뒷받침과 지원도 없이 다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저 소중한 한의학의 명맥을 이어가며 사라졌던 한의학 유산을 발굴하고, 교육의 기틀을 다지기에도 힘에 벅차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한의학은 더 이상 시대의 변화에 주도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의학은 불현듯 세상의 새로운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의학이 시대에 맞게 발전함으로써 마련된 장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서양의학의 문제가 드러나고 고전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고육지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기회일지 또 다른 위기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대에 걸맞는 한의학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한의학만의 영역에서 벗어나 서양의학을 수용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한의학의 장단점을 직시하고 주변의학의 장점을 취하여 발전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의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어 인류의 역사와 함께 끝날 것입니다. 선조들이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한의학을 발전시켜왔듯이 우리도 그렇게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의학은 더 이상 발전을 기대 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영원한 비주류의 피곤함이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아류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