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강원도한의사회 임일규 명예회장
‘氣化生理에 대한 고찰’로 교수 자격검정 통과
동양의약대학 한의학과장 역임 후진 양성
‘성실한 진료로 정당한 대가 받아라’ 정신 중시
국산(菊山 )김장헌 선생님은 본적이 함경북도 명천군 상운남면 마전동이며 사립광동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보통학교(현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조부께서는 이름난 명의로 계셨다. 국산 선생님은 “仁心儒術 功同良相”이란 옛성인의 글 한구절을 마음깊이 읽으면서 한의학을 배워 유명한 명의가 되여 救濟蒼生으로 이름을 떨쳐 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때 연령은 17세다.
스승은 李希煥 선생과 金命駿 선생 두분이였다고 한다.
방학 때면 반드시 절간에 들어가 한의학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일본어를 중학교 당시 배운바 있어 일본서적도 능히 볼 수가 있어 일본에서 구입한 양방의서를 보아 청진기 등으로 진찰도 하기 때문에 늑막염, 폐병을 정확히 진단하며 치료하였기 때문에 명성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29세때 처음으로 道에서 실시한 鍼灸시험에 합격하였고, 大正15년 즉 昭和元年에 道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醫生시험에 學科와 臨床의 두 시험을 보아 모두 합격하였으며, 합격자는 66명중 18명이었으며 30세부터 개업하였다고 한다.
해방후 한국동란시 1.4후퇴 당시에 갖은 고초와 여러번 사경을 겪으면서 월남하였다. 후퇴하는 국군과 같이 항도 부산시 부산진역에 내려 진해 통제부사령관으로 있는 아우 김장흥관사로 가게 되었다. 아우 사령관 권유로 진해해군사관학교 도서관에서 장서 가운데 한의서가 많이 있어 1년동안 한권도 빠짐없이 공부하였다고 한다.
당시 동양의약대학 전신인 동양대학관에 교직을 잡게 되었다. 학관이 대학으로 승격되어 서울 수복과 같이 대학도 수복하게 됨에 따라 김장헌 선생님도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동양의약대학의 교직생활 10여년동안 도서관장, 한의학과장, 학장서리 명예교수로 봉직하였다.
김 선생께서 후진들에게 부탁한 것은 “한의학도는 무엇보다도 꾸준히 공부할 것이며 둘째로는 품행을 방정히 가질 것과 그 방정은 환자에 있어 빈부를 가리지 말 것이요, 주색에 치우치기를 삼가며, 금전에 탐내지 말라고 하였으며, 임상진료에 있어서 유의하여 둘 것은 四診을 중심으로 행할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잡병치료에 있어서는 내감외상을 중심으로, 부인과에 있어서는 월경중심으로, 기혼부인에 있어서는 임신중심으로, 소아과에 있어서는 식체·외감·풍열중심으로 조심하면 대과없는 의원행세를 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하였다.
많은 한의서 가운데 한의학도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의서는 의학입문, 그 다음에 내경이며 임상병리치료법 등을 보자면 石室秘錄책자가 좋으며, 이론 전개를 하려면 醫林改錯이라 한다.
참고로 부언할 것은 북한에서 내가 떠나올 그 시절에 치료에 유행한 것이 있었는데 애기 태아집을 세분말하여 늑막염증에 환처늑막염 부위에다 切開付植시키면 백발백중이었으며, 한방에서 자하차(태아집)를 폐병에 聖藥이란 것이 사천년전에 밝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의림 서기1964년 41호 요약발췌)
박호풍(朴鎬豊) 동양의약대학장이 한국최초로 단기4290년 1월30일에 문교부로부터 한의학교수증을 받았다.
이어서 두번째로 박성수(朴性洙) 대한한의사회장, 김장헌(金長憲) 동양의약대학한의학과장, 홍성초(洪性初) 동양의약대학교수가 단기 4290년 11월8일에 문교부로부터 교수증을 받았다.
문교부 대학교수 자격검정위원회에 통과된 논문은 다음과 같다.
◇박성수=한의학상으로 본 내과학(중풍)
◇김장헌=氣化生理에 대한 고찰
◇홍성초=문헌상에 나타난 고대 위생학의 동양의학적 고찰
漢醫學大學 敎授 資格證 傳達式
지난5일 정오 동양의약대학 교정에서는 한의약계의 원로 諸氏 각기관단체장 내빈다수와 동대학생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번 한의학대학 교수자격을 획득한 朴性洙·金長憲·洪性初 諸氏에게 동자격증 전달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이날 동대학 梁忠鎬氏 개회사에 이어 논문통과 경과보고, 대학교수자격증 수여, 기념품 증정이 있은 다음, 전 한의약계를 대표하여 金永勳氏의 간곡한 축사를 비롯하여 祝宴이 있었다.
(동방의약 통권 제9호. 단기 4290년 11월 15일)
국산(菊山) 김장헌 한의학 과장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55년도 동양의약대학 입학식과 한방내과학 강의를 들었을 때다. 첫인상은 인자하시고 전형적인 할아버지상으로 웃음띤 인상은 친근감과 친화력을 갖고 계시면서 함경도 특유의 사투리와 긴 수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있다. 또 성품이 결백하셨고 청렴한 한의학자요 교육자로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하신 분이셨다.
강의를 하시면서 어느 교수보다도 仁術에 대한 것을 강조하셨으며 필자는 지금까지도 인술정신을 잊지않고 명심하고 있다.
도서관장님으로 계실 때 자주 찾아뵈면 친절하게 맞이해 주시며 사람답게, 醫者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하교하시어 주셨다.
醫術은 仁術이지 商術이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씀과 인술이라고 해서 무료봉사하라는 것이 아니고 성실한 진료로 정당한 대가를 받으라는 것이다. 환자를 긍률히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醫道, 醫者仁也, 智圓行方, 心細膽大.
醫者는 겸손해야한다. 존경받는 醫者가 되라는 말씀은 오늘까지도 명심하고 실천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