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4.0℃
  • 흐림26.5℃
  • 구름많음철원26.4℃
  • 구름많음동두천25.7℃
  • 구름많음파주26.9℃
  • 흐림대관령22.9℃
  • 흐림춘천26.9℃
  • 맑음백령도24.0℃
  • 흐림북강릉24.4℃
  • 흐림강릉25.1℃
  • 흐림동해25.5℃
  • 흐림서울26.4℃
  • 구름많음인천26.5℃
  • 흐림원주26.6℃
  • 흐림울릉도26.2℃
  • 구름많음수원26.6℃
  • 흐림영월25.6℃
  • 흐림충주25.5℃
  • 흐림서산25.8℃
  • 구름많음울진26.3℃
  • 흐림청주26.2℃
  • 흐림대전27.3℃
  • 흐림추풍령27.4℃
  • 흐림안동28.1℃
  • 흐림상주28.5℃
  • 흐림포항28.6℃
  • 흐림군산27.3℃
  • 구름많음대구31.4℃
  • 흐림전주29.2℃
  • 구름많음울산31.3℃
  • 구름많음창원30.4℃
  • 구름많음광주30.5℃
  • 구름많음부산32.4℃
  • 구름많음통영31.3℃
  • 구름많음목포29.8℃
  • 구름많음여수30.2℃
  • 흐림흑산도29.0℃
  • 흐림완도32.1℃
  • 흐림고창29.8℃
  • 구름많음순천29.1℃
  • 흐림홍성(예)25.9℃
  • 흐림25.0℃
  • 구름많음제주31.4℃
  • 구름많음고산28.3℃
  • 구름많음성산30.8℃
  • 구름많음서귀포31.8℃
  • 구름많음진주29.7℃
  • 구름많음강화25.9℃
  • 흐림양평25.5℃
  • 흐림이천25.9℃
  • 흐림인제26.4℃
  • 흐림홍천25.7℃
  • 구름많음태백24.7℃
  • 흐림정선군1.5℃
  • 흐림제천24.1℃
  • 흐림보은26.2℃
  • 흐림천안25.2℃
  • 흐림보령26.3℃
  • 흐림부여26.9℃
  • 흐림금산27.7℃
  • 흐림25.4℃
  • 흐림부안28.7℃
  • 구름많음임실29.0℃
  • 흐림정읍29.5℃
  • 구름많음남원29.7℃
  • 구름많음장수28.1℃
  • 구름많음고창군30.2℃
  • 흐림영광군28.3℃
  • 구름많음김해시32.8℃
  • 구름많음순창군29.5℃
  • 구름많음북창원32.0℃
  • 구름많음양산시32.9℃
  • 구름많음보성군30.7℃
  • 구름많음강진군32.4℃
  • 구름많음장흥31.2℃
  • 구름많음해남30.9℃
  • 구름많음고흥29.3℃
  • 구름많음의령군31.1℃
  • 흐림함양군31.3℃
  • 구름많음광양시31.3℃
  • 구름많음진도군27.1℃
  • 흐림봉화26.1℃
  • 흐림영주26.9℃
  • 흐림문경27.4℃
  • 구름많음청송군29.6℃
  • 흐림영덕27.8℃
  • 흐림의성28.8℃
  • 흐림구미29.7℃
  • 흐림영천31.0℃
  • 구름많음경주시32.3℃
  • 구름많음거창30.6℃
  • 구름많음합천30.8℃
  • 흐림밀양32.0℃
  • 구름많음산청31.0℃
  • 구름많음거제29.8℃
  • 구름많음남해30.0℃
  • 구름많음32.5℃
기상청 제공

2026년 09월 02일 (수)

김남일의 儒醫列傳 85

김남일의 儒醫列傳 85

B0112007113036701-1.jpg

백성의 치료를 위해 醫術을 연마한 右議政



1534년에 內醫院提調가 “安玹은 藥理에 精하다. 전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金孫萬應膏를 만들었는데 惡瘡의 毒을 없애고 膿을 제거하는데 효과가 좋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같은 해에는 王의 병세가 점점 심해질 때 兵曺參議 安玹이 천거되어 內醫院에서 근무하면서 治療에 同參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언급된 安玹은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된 후에 승정원주서·병조정랑을 거쳐 1533년에는 사헌부지평에 올라간 당대의 실력 있는 젊은이였다. 그가 1534년 궁중에서 여러 차례 천거되어 의학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이렇듯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기였다.



1541년 陳慰使로 明나라에 다녀와서 우승지가 되었고 중종이 말년에 숙환으로 고생할 때에는 승지로서 의약에 밝아 항상 시종하였다. 명종이 즉위하자 이조참의에 제수되었고, 이후에 전라도 관찰사·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렴결백한 인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1558년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여 관직의 최고점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특히 형제간의 우의가 좋기로 소문이 났었고, 의학에 뛰어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공사에 공변되고 검소하여 집안이 청빈하였다.



그가 의학 연구에 힘쓴 것은 순전히 활인을 통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기에 이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