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근(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1학년)
지난 7월15일부터 22일까지 청년한의사회 회장인 박용신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를 단장으로 한 10명의 한의사와 한의과대학 학생으로 이루어진 한방의료봉사단(박용신, 김권희, 박재만, 고수정, 윤정제, 석명진, 김동우, 김상주, 김보근, 장병권)은 사할린을 다녀왔다.
사할린은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인들이 광복이 된 후 귀국선을 타지 못하고 또한 그동안의 노동에 대해 적절한 임금을 받지도 못한 채 2, 3대째 삶의 터전을 이어오는 곳이며, 현재까지 영주귀국을 비롯한 보상 문제와 새로운 이산가족 문제 등을 낳고 있는 곳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사할린은 이름만 들어도 추운 곳이었다.
진료소가 되는 아랄리아 요양원에 짐을 푼 한방의료봉사단의 일정은 사할린주 이산가족협회 이수진 회장의 인솔 아래 뷔코브 탄광마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20세기 초 감옥 건물을 연상시키는 탄광회의실에서 뷔코브 한인들의 전쟁 당시와 전쟁 후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돌보지 않아 허리보다 높은 풀이 무성한 탄광을 직접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주로 한인 2세들로 이루어진, 한국어에 서툰 그네들이 또렷하게 알고 있는 단어는 그동안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들로부터 수십 번은 들어왔을 ‘영주귀국’이었지만, 그네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새로운 이산가족을 낳는 ‘나홀로 영주귀국’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었다. 한달 수입에 해당하는 교통비를 지불하고 와야 하는 아랄리아 요양원까지의 거리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진료기간…. 우리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러한 아쉬움을 애정과 정성어린 진료로 보답하기로 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날 오전은 아랄리아 요양원에서 사할린주 병원의사들과 한방의료봉사단의 학술교류 회의가 있었다. 사할린주 와실첸코 병원장을 비롯한 주병원 의사들은 한국의 한의학 체계와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치료방법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를 시작으로 사할린주 병원장과 침구과 과장이자 학술교류 및 진료단에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준 한의사 최 블라지슬라브가 주최하고 한국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가 주관하며 사할린 한인이산가족협회의 협조 하에 실시된 회의와 진료단의 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진료단은 미리 나누어준 번호표를 중심으로 환자를 받았고, 재진 환자를 제외하고 하루에 300명, 총 130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한인 환자 6~70% 나머지는 러시아인 환자들이었는데, 진료단에 대한 입소문이 나서인지 러시아인 환자의 숫자는 점점 늘었고, 그 중에는 법률가·문화부 관리·러시아영웅 아프가니스탄참전자 츠위트코프·‘판크라치온 (규칙이 없는 싸움)’ 세계챔피언 로친 등도 있었다.
춥고 건조한 지역이어서인지 고혈압·당뇨·관절염 환자가 많았고, 갑상선·알레르기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진료단은 매일 저녁 이루어진 평가회의를 통해서 환자의 사례와 치료방법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고, 밤 10시가 넘어서 해가 지는 백야에 적응하기 위해 배드민턴과 족구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했다.
진료단의 마음과 환자들의 마음이 라뽀(rapport)를 이루어 한의사들의 따뜻하고 정성 담긴 손길에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있었다. 실제로 목발을 짚고 와서 걸어나가는 분도 있었고, 몇몇 사례는 현지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해가기도 했다. 의사는 환자의 몸의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곳에서도 단순한 근골격계 질환뿐 아니라 정지상(情志傷)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진료단의 언어적인 불편함 해결에 많은 도움을 준 김부자 선생님을 비롯한 통역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