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동의내경학 이어 동의외경학 내놓아
‘생리→병리→진단→치료’ 등 일관성 있게 저술
“4백여년 전인 1610년에 허준 선생이 집대성한 ‘동의보감’을 실험과학과 밝혀진 생·병리와 임상치료의 근거에 의거해 기술한 만큼 후학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30여년을 한의학 연구와 임상에 받쳐온 두호경 교수가 19년에 각고 끝에 지난 2004년 ‘동의내경학’(1948쪽)을 발간한데 이어 2년 후인 올해 또다시 ‘동의외경학’(1349쪽)을 세상에 내놓았다.
동의보감의 내경편을 동의내경학으로, 외경편을 동의외경학으로 확장해 자세하고 분명하게 ‘생리→병리→진단→치료’의 기술순서로 일관성 있게 저술한 집대성한 두 교수의 저서는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한층 진일보시킨 ‘21세기 동의보감’이라는 평가에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동의신계학’(1462쪽)을 비롯해 ‘임상신계학 연구’(734쪽), ‘동양의약은 어떤 학문인가’(776쪽) 등의 저술에서 두 교수의 학술적 평가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두 교수는 우주에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우주가 있으며, 무극이 있어 태극이 있고 태극이 있으므로 음양이 있고 음양이 있으므로 내외가 있다는 것. 따라서 의학에서도 동의내경학이 있으므로 동의외경학이 있는 것처럼 동의외경학과 동의내경학은 본시 하나라고 설파한다.
본래 남자가 있으므로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으므로 남자가 있는 것과 같이 남성학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학을 알아야 하고, 또한 여성학을 논하기 위해서는 남성학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다.
따라서 동의외경학은 홀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의내경학을 본으로 해 쓰여 졌으며, 또한 동의내경학은 동의외경학을 표로 삼아 기술한 책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들 결과물이 나오기까진 쉽지 않았습니다. ‘동양의약은 어떤 학문인가’를 집필하기 위해서 먼저 서양의학을 좀더 이해해야 했고, 또 서양의학과의 대대(待對)를 통해 동양의학의 가치와 위상을 정확하게 인식해서 그 정화(精華)는 취하고 조박(糟粕)만은 버리고 싶어 책의 저술을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두 교수는 경희의료원 양방병원의 내과의국 컨퍼런스에 끼어 앉아 청강하는 등 눈치, 코치에 염치까지 외면(?)면서 보낸 10여년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같은 노력은 그가 경희대 최초로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하는 동서협진센터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해 한방병원장, 한의대학장, 한의학과학기술위원장, 제1회 국제한의학박람회 운영본부장 등 다양한 이력에서 엿보게 한다.
“직장에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은 결코 녹녹하지 않습니다. 학생들 강의와 학장과 병원장 보직을 수행해야 하며, 특히 소홀히 할 수 없는 병원진료만으로도 힘겨운 하루하루인 셈이죠.”
매일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며 생활하는 그에게 그나마 짬을 낼 수 있는 것은 새벽 시간이었다. 수십년을 새벽에 연구실로 출근한 것이 경희대 내에서도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어둠을 흔들어 깨우는 전령사처럼 요즘도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연구실 불을 켠다.
하지만 학교를 오가는 새벽 길목은 즐겁고 안전하지만은 않다. 때론 과속으로 무섭게 질주하는 화물차량과 제멋대로 음주운전으로 위태위태 곡예하는 음주차량과 맞딱뜨려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술에 취해 갑자기 무단횡단을 하는 취객들로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기를 수차례.
무엇보다 책을 저술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새벽운전을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도 과속차량의 질주 위협도 아니었다.
생리, 병리, 동의진단 등의 기초학문을 소홀하게 생각하고 처방중심이나 유효물질의 추출을 통한 신약을 개발해 눈앞의 이익으로 바꾸려는 변해버린 세상의 분위기였다. 게다가 이같은 사회적 영향으로 임상치료에 직접 응용되는 임상서적을 제외하고는 학문의 기초학술을 다룬 이론서적이 외면당하는 풍토가 그의 가슴 아프게 했다.
때문에 ‘경제성 없는 책’ 출간, 그것도 책의 내용이 생리·병리 진단을 중시하는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저술과 출간은 한마디로 모험이자 무모함 그 자체였다.
“저를 아끼는 지인들로부터 ‘치료처방의 특효약물이나 비방을 중심으로 하지 않은 책은 출간되어도 팔리지 않을 것이니 책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건강을 무릅쓰면서까지 애쓰지 말라’는 충고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개업하는 한의사들에게 별 매력이 없을 터여서 당장 출판되더라도 한 권의 책도 팔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심한 말까지 들을 땐 서글펐죠.”
하지만 주위로부터 수많은 충고와 고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묵묵히 길을 걷게 해준 것은 이 시대 삶 속에서 한의학을 지키고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한의학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교수로서의 ‘자부심’이었다.
“한의학이 세계의학으로 우뚝 서서 인류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모두가 가야할 멀고도 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희한의대 원로교수로서 지금도 한방 6내과를 지키고 있는 두 교수는 “동료학자들 그리고 내일을 담당할 후학들이 자신의 노력들을 디딤돌로 삼아 넘어 더 나은 세계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