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비나 교수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교
최근 대형 국제학술대회의 국내 유치 또는 자체 국제학술대회 개최가 일반화되었고 그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지방에도 대형 컨벤션센터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학문의 토양이 열악했던 30년 전 한국에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국내학계의 국제학술대회 역사로는 선도적 역할을 한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는 1976년 처음 개최된 이래 2005년 학술대회의 예산이 8억여원에 이른다. 반면 다른 비영리기관(학교나 학술단체)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들은 대부분 개최비용이 턱없이 부족하여 국제학술대회 최소 기준을 맞추는데 급급하다.
유관기관간 공동개최도 돌파구
자금력이 풍부한 학회는 국제회의 전문 용역회사를 활용하면 되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할 경우 국제학술대회를 용역회사에 의뢰하지 않고 저비용·고효율로 개최하는 원칙과 비결을 정리해 보겠다.
첫째, 비슷한 성격의 기관이 공동으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즉 각 기관의 대표가 공동 대회장을 맡아 함께 주최하는 것이다. 이 때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각 기관의 운영진이 모여 서로 협약서 등을 만들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연구비지원재단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경비를 보탠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9개월 전에는 초청국의 연자나 국제회의의 아젠다(agenda) 등이 완성되어 있어야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다.
셋째, 국내 개최만을 생각하지 말고 물가가 싸면서 영어권인 국가를 개최지로 선택하는 것도 발상의 전환이 될 것이다. 특히 보건 분야의 국제학술대회라면 필리핀을 국제학술대회 장소로 추천하고 싶다. 경희대학교의 최승훈 교수님이 WHO 서태평양사무소 전통의학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시므로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넷째, 대회 경비가 적으면 적을수록 준비를 일찍 시작하고 홍보를 부지런히 한다. 최근에는 각국마다 R&D 투자가 활발하여 대학이나 기업의 과제 수행자들이 실적을 쌓기 위하여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다. 잘 짜인 학술대회를 조기에 알게 되면 자비를 들여서라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초록을 접수하므로 해당분야의 우수한 전문가를 발표자로 확보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국제회의 기준을 갖추기 위한 비용제공 초청연자의 수를 줄일 수 있다.
다섯째, 국제행사의 업무를 세분화하고 자원봉사자, 특히 운영진을 구성하는 위원들을 잘 선별하여 각자의 소임을 분명하게 맡긴다. 전문가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내어 대회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비용을 절감하는데 가장 큰 관건이 된다. 업무의 세분화와 위원회 구성이 중요한데 각 대회마다 목적에 차이가 있으므로 여러 국제회의들을 참고하여 주최하고자 하는 회의의 성격을 반영하여 업무별 조직을 구성한다.
학문의 위상 객관적 평가 ‘기회’
이 때 국제행사를 주관해본 경험이 있는 운영위원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인데 의학계열의 기초분야 학회들은 의사가 아니라도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으므로 한의사들이 주로 활동하는 학회가 아닌 타 분야 전문가들이 혼재된 학회에 가입하여 그들과 함께 국제회의를 주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한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다 보면 우리의 자기중심적 자부심이 겸손함으로 다듬어지고 리더의 역할과 조직 운영 능력 등을 더 큰 규모에서 확실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우리 학문의 위상과 역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는 균형감각도 얻게 된다.
여섯째, 운영위원들이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이들을 이끌어 줄 기획력과 지도력 있는 사무총장을 선출 또는 위촉한다. 대회장은 주로 기관의 장이 맡게 되고 사무총장은 해당 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맡게 된다. 용역회사 없이 대회를 치르는 경우 사무총장이 용역회사의 팀장 역할도 하게 된다.
국제학술대회를 용역회사에 의뢰하지 않고 적은 비용으로 부끄럽지 않게 치르는 방법을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우리가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의 권위가 높아져서 국내외의 회원들이 고액의 등록비를 내고 참가하여 멋진 발표와 질문이 끊이지 않는 알찬 학술대회를 그려본다. 그 때 있을 갈라 디너(gala dinner)에서 출 춤을 배워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