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3.8℃
  • 박무23.9℃
  • 구름많음철원23.3℃
  • 흐림동두천24.3℃
  • 구름많음파주23.8℃
  • 흐림대관령22.0℃
  • 구름많음춘천23.6℃
  • 맑음백령도23.4℃
  • 흐림북강릉23.7℃
  • 흐림강릉24.2℃
  • 흐림동해25.0℃
  • 구름많음서울24.3℃
  • 흐림인천24.3℃
  • 흐림원주24.6℃
  • 흐림울릉도26.1℃
  • 흐림수원24.6℃
  • 흐림영월23.1℃
  • 흐림충주24.0℃
  • 흐림서산25.1℃
  • 구름많음울진25.6℃
  • 흐림청주24.7℃
  • 흐림대전25.3℃
  • 흐림추풍령26.0℃
  • 흐림안동25.7℃
  • 흐림상주26.8℃
  • 구름많음포항28.6℃
  • 흐림군산24.9℃
  • 흐림대구27.6℃
  • 구름많음전주28.1℃
  • 구름많음울산29.6℃
  • 구름많음창원29.3℃
  • 흐림광주27.7℃
  • 구름많음부산29.4℃
  • 구름많음통영29.6℃
  • 흐림목포28.3℃
  • 흐림여수28.2℃
  • 흐림흑산도27.6℃
  • 흐림완도28.8℃
  • 흐림고창26.8℃
  • 흐림순천26.9℃
  • 흐림홍성(예)24.0℃
  • 흐림23.4℃
  • 맑음제주31.2℃
  • 구름많음고산29.9℃
  • 구름많음성산30.8℃
  • 구름많음서귀포28.8℃
  • 흐림진주26.7℃
  • 구름많음강화24.3℃
  • 흐림양평23.5℃
  • 흐림이천24.3℃
  • 흐림인제24.0℃
  • 흐림홍천23.3℃
  • 흐림태백21.8℃
  • 흐림정선군23.3℃
  • 흐림제천22.8℃
  • 흐림보은24.5℃
  • 흐림천안23.4℃
  • 흐림보령24.3℃
  • 흐림부여24.2℃
  • 흐림금산25.6℃
  • 흐림24.2℃
  • 흐림부안26.5℃
  • 구름많음임실26.6℃
  • 흐림정읍27.1℃
  • 흐림남원26.6℃
  • 구름많음장수26.4℃
  • 흐림고창군26.8℃
  • 흐림영광군26.2℃
  • 구름많음김해시30.5℃
  • 흐림순창군27.0℃
  • 구름많음북창원30.1℃
  • 구름많음양산시30.2℃
  • 흐림보성군28.4℃
  • 흐림강진군28.2℃
  • 흐림장흥27.9℃
  • 구름많음해남29.7℃
  • 흐림고흥29.7℃
  • 구름많음의령군27.7℃
  • 구름많음함양군25.2℃
  • 흐림광양시28.9℃
  • 구름많음진도군29.2℃
  • 흐림봉화24.2℃
  • 흐림영주24.3℃
  • 흐림문경25.1℃
  • 흐림청송군25.8℃
  • 흐림영덕26.3℃
  • 구름많음의성25.9℃
  • 구름많음구미28.9℃
  • 흐림영천26.9℃
  • 구름많음경주시28.5℃
  • 구름많음거창25.7℃
  • 흐림합천28.1℃
  • 구름많음밀양29.6℃
  • 구름많음산청25.6℃
  • 구름많음거제28.2℃
  • 구름많음남해27.9℃
  • 구름많음30.0℃
기상청 제공

2026년 09월 02일 (수)

김남일교수의 儒醫列傳 91

김남일교수의 儒醫列傳 91

B0112008011836558-1.jpg

佛法으로 백성들의 고통과 함께한 儒醫



학문을 하는 자로서 백성들에게 직접 시혜를 베푸는데 있어서 의학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고려 후기에 살았던 蔡洪哲은 의학으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실천궁행한 지식인의 표상이다. 蔡洪哲의 미담은 그의 묘비에 기록되어 있는 蔡洪哲墓誌銘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蔡洪哲墓誌銘’은 1340년 蔡洪哲의 사후에 이곡(李穀)이 지은 것으로 실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고, 李穀의 문집인 ‘稼亭集’ 권11과 조선 초 徐居正(1422~1492)의 ‘東文選’ 권124에 실려 있다. 이 묘지명을 통해 채홍철의 생애와 학술사상 그리고 의료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동 묘지명에 따르면 蔡洪哲의 字는 無悶으로, 交州道 平康縣 사람이었다. 나이 18세에 成均試에 합격하고 23세에 진사로 합격하여 膺善府錄事에 임명되었고, 여러 관직을 거친 후에 通禮門祗侯가 되었다가 長興府使가 되어 어진 정치를 하였다. 부사를 그만둔 후에는 14년간 집에서 머물면서 스스로 中菴居士라 부르면서 불교와 의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자신의 집 북쪽에 ‘전단원’을 지어 禪僧이 기거하게 하였고, 또한 ‘전단원’에 活人堂이라는 의료기관을 짓고, 백성들의 무료진료에 힘썼다.



佛法으로 무장한 그는 大慈惻隱之心을 크게 발휘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노력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蔡洪哲의 인품에 감동하여 훌륭한 군자로 여겼다고 한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