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부 구성태 책임연구원
내년부터 국제표준 경혈위치 중점 보급
지난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일본 쯔쿠바시 쯔쿠바 국제회의장(Tsukuba International Congress Center)에서 열렸던 WHO 주관 국제경혈위치표준화 회의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회의는 WHO 서태평양 사무국(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 WPRO)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의학 표준화 사업 중 하나로서 경혈위치의 국제표준 제정을 위해 2003년 10월3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만 3년 동안 한·중·일 전문가들이 6차례의 국제회의(Informal consultation meeting)와 3차례 TFT회의를 거치면서 만들어 낸 국제경혈위치 표준안을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자리였다.
이번 회의에는 한·중·일 3국에서 각 4명의 전문가가 참가했고, 서태평양지역 회원국인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 호주에서 각 1명, 침과 관련한 국제기구인 WFAS와 AAOM에서 대표 각 1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서 전문가 1명씩이 초청되어 모두 20명의 전문가가 WHO 지역회의 비상임고문(Temporary Adviser)으로서 참가하였다. 이외에도 제2차 일본경혈위원회 소속 전문가 4명과 미국 Acupuncture Today의 칼럼니스트가 옵서버로 참석하였다. 한국에서는 강성길·김용석 (이상 경희대), 임윤경 (대전대) 교수와 필자가 참가하였으며 전체 회의는 WHO 서태평양 사무국 전통의학 고문인 최승훈 박사가 주관하였다.
논의할 회의문건들은 한·중·일 전문가들이 9차례의 회의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본 회의는 먼저 국제경혈표준위치를 결정하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 논의하였는데 기본원칙에는 표준경혈 위치를 기술하는데 사용할 용어에 대한 정의(골도분촌, 지촌법, 혈위 표현을 위한 기본자세, 해부학적인 기준점, 타 경혈위치를 설명하는데 사용할 표준경혈 등)와 경혈위치를 기술하는 기본 원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중·일이 작성한 표준안은 표준위치를 결정할 때 역사와 현실을 모두 중시하는 ‘respect history and real’ 원칙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하여 고전문헌으로『 黃帝明堂 』,『千金方·甄 明堂』,『銅人 穴鍼灸圖經』,『鍼灸甲乙經 』등을 근거로 하였고, 현재 임상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위치를 고려하였다. 위치 표현은 가능한 한 해부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였다.
경혈위치를 기술하는 기본형식은 혈이 위치한 부위(region)를 정하고, 경혈을 지나는 세로선과 가로선 순서로 기술하기로 하였다. 예를들어 천부(LU3)의 경우, On the anterolateral aspect of the arm (부위), just lateral to the border of the biceps brachii muscle(세로선), 3 B-cun inferior to the anterior axillary fold (가로선). 이러한 표현은 경맥이 흘러가는 유주방향을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세로선을 언급하고, 그 후에 기준점에서 상하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가로선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대로 배부 수혈과 흉복부 등의 경혈을 표기하면 기존 표현방식과 달라지게 되는데(방광경 제1선의 경우, ‘정중선에서 1.5촌 떨어진 곳, 몇 번째 척추극돌기아래’와 같이 표현하게됨) 중국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관성보다 편리함이 앞선다’는 원칙하에 사지에서는 세로선을 먼저 기술하고, 구간(머리, 목, 몸통)에서는 가로선을 먼저 기술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울러 위치를 기술하고 난 후 경혈위치를 쉽게 찾기 위한 방법이 있으면 각 경혈별로 따로 주석을 달기도 하였다.
361개의 경혈 중 그동안 한·중·일 3국 사이에 위치가 다른 곳이 92개 경혈임을 지난 2004년 3월 2차 회의에서 확인하였다.
그 후 3개 국가 중 2개 나라가 동의하면 그 안을 표준으로 결정하고 다른 의견은 주석으로 달기로 하여 합의안을 결정하였으나 6개 혈은 합의하지 못하고 이번 회의에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투표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투표에 의해 결정하기로 한 혈은 수구, 화료, 영향, 노궁, 중충, 환도 등 6개 경혈이었다. 이 중 (구)화료는 수구와 수평인 경혈이기 때문에 수구의 위치가 결정되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경혈이므로 사실 논란이 되는 것은 5개 경혈인 셈이었다.
먼저, 수구(水 )는 한국과 일본은 수구의 이명(異名)이 人中인 점과 인중구 중앙이라는 문헌(在鼻柱下 中央)을 근거로 인중구의 중앙에서 취혈할 것을 주장하였고, 중국은 비주에 가깝다고 표현한 문헌(人中近鼻柱《千金要方》卷六, 在鼻柱下 中央,近鼻孔)등을 근거로 만약 인중구의 중앙이라면 굳이 비주에 가깝다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며, 신응경 등의 문헌에서 인중구 중앙은 수직선에 대한 중앙이 아니라 수평선에 대한 중앙을 말한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투표권은 각 나라와 침관련 단체에 1표씩 주어져서 11개였으며 투표결과 6:5로 인중구의 중앙으로 결정되었다(그림1.참고).
영향은 한국과 일본안은 비순구에서 비익하연 수평선이 만나는 점으로 주장하였고, 중국은 비순구에서 비익외연중점이 만나는 곳으로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비익하연 수평선과 비순구가 만나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거료의 위치와 구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영향이 거료와 분명히 구별된다는 방대한 자료를 제시했지만 투표결과 비익외연중점과 비순구가 만나는 점으로 결정되었다.
노궁은 사람에 따라서 민감한 곳이 다르기를 하지만 한국측 주장은 X-ray 실측결과 대릉과 중지첨을 잇는 선이 2~3지 사이보다 3~4지 사이가 더 가깝기 때문에 3~4지 사이에서 취혈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勞宮者….在掌中央 動 中. 『鍼灸甲乙經』券三, 勞宮…. 在掌中央 動 中. 以屈無名指取之. 『銅人 穴鍼灸圖經』) 중국과 일본은 영추 본수편(勞宮者, 掌中 中指本節之內間也.『靈樞』本輸篇) 등 에서 ‘內’는 요측을 뜻하기 때문에 2~3지 사이에서 취혈할 것을 주장하였다. 투표결과 2~3지 사이로 결정되었다(그림2.참고).
중충은 한국과 중국은 중지첨이라는 안을 주장하였고 (中衝者, 手中指之端也. 『靈樞』本輸篇, 手心主之 , 出於中指之端, 內屈中指內廉. 『靈樞』邪客篇), 일본은 다른 정혈처럼 조갑요측이라는 안을 주장하였다. (中衝者…. 在手中指之端 去爪甲如 葉陷者中. 『甲乙經』卷三, 中衝, 在手中指內廉之端 去爪甲如 葉. 『鍼灸大全』)중충은 투표결과 환도 위치가 중지첨으로 결정되었다.
환도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대전자 앞쪽에서 취혈해 왔기 때문에 한국·중국안인 대전자 뒤쪽에서 취혈하는 안에 합의하지 않았던 경혈이다. 투표결과 대전자와 천골열공을 잇는 선의 바깥쪽 1/3에 해당하는 점으로 결정하였다.
361개 경혈의 위치를 모두 합의한 후 경혈괘도와 경혈삽화 등의 제작에 대해서 각국의 발표가 있었다.
이번에 정한 표준은 WHO를 통하여 내년에 출판될 예정이고, WHO는 물론 각 나라에서 이번에 정한 표준의 보급을 위해서 노력하기로 하였다. 경혈괘도나 경혈삽화 이외에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침구동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으며, 향후 경외기혈의 위치표준화나 일회용 침 규격의 표준화 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WHO에 제안하였다.
이번 경혈위치국제표준은 침구학이 근거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아울러 세계적으로 침구임상, 교육 및 연구의 질적인 개선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니 표준으로서 널리 활용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에 표준으로 결정된 부위만 치료효과가 있고, 표준으로 결정되지 않은 부위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이와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를 통하여 꾸준히 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