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성찰 통해 청년 ‘허준’ 살길 제시해야”
호황기 수익창출만 연연… 치료 방법 개발 인색
지원 세력 양성·건강 파트너로서 이미지 변화해야
한방의료보험이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된 1987년부터 1996년 IMF가 나라경제의 발목을 잡을 때까지 10년 동안 한의계는 찬란한 호황기를 누렸다. 개원가의 쏠림현상은 두드러졌으며, 원장들은 한의원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 ‘허준’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개원시장에 뛰어들어도 나눠먹을 땅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대학에 남거나 다른 분야로 진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이와관련 잠실 함소아한의원 김정현 원장(서울시한의사회 前 보험이사)은 “선배들은 한의학의 마지막 호황기를 누렸다”며 “학문적인 발전과 치료의학으로서의 도전보다는 당장 눈앞의 수익창출에만 연연했다”고 선배들의 책임론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또 “한의계가 공공의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도 개원시장의 팽창으로 경쟁이 어려워지면서부터”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한의사협회 엄종희 회장은 선배들의 자성론을 밝혔다. “가장 큰 실수는 교육부분을 놓쳤다는 것이다. 원활한 진료 시스템과 질병분류 등도 교육에서 시작된다. 한의학적 원리를 이용한 치료방법 개발에 인색했다.”
대한한의학회 김장현 회장은 교육의 문제보다는 학회를 제대로 육성하고 활용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학회는 치료법 및 신 의료기술 등을 검증과정을 통해 널리 보급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옳지만, 열악한 재정상태는 도전의지 자체를 힘들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동안 서양의학은 한의학을 따라 잡으려고 맹추격을 펼쳐왔다. 서양의학이 한의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젠 옛말이 됐을 뿐만 아니라 모방 수준을 벗어나 막대한 자본과 연구를 통해 한의학을 서양식으로 상품화시키고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몇 년 전 MBC에서도‘위기의 한의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음료로 판매하고 있는 탕약과 침술로 에이즈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정을 보도한 사례가 있었다.
이제는 한의계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할 때다. 과거의 잘못에 연연하기보다는 내일을 위한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크게 나서야 한다. ‘성장’과 ‘분배’가 함께 이뤄져야 지속적인 ‘발전’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한의협 엄종희 회장은 “협회는 법 제도 확충을 통해서 안정적 진료환경을 도모해야 하며, 대학과 병원 등은 새로운 진료영역과 의료기술을 발굴해 임상과의 접목을 시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협회가 국회에 ‘한의사의 산업보건의 편승’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한 것도 새로운 직업 창출을 위한 노력인 셈이다.
한의학회 김장현 회장은 한의사를 도와줄 주변세력의 양성을 주장했다. “서양의학은 혼자만의 힘으로 커온 것이 아닙니다. 생명공학자, 유전공학자, 생물학자 등 의사들을 지원해준 많은 연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반면 한의학은 간호조무사를 제외하고, 학문적으로 도와줄 세력들을 양성해오지 못했습니다. 우리 때문에 먹고사는 단체들이 많아져야 한의사들도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함께 김창권 원장(경희대 前 한의대 총문회장)은 “청년 ‘허준’들은 개원시장에 뛰어들더라도 의사의 범주를 뛰어넘는 건강상담의 파트너로서의 이미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리더로서의 한의사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