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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0일 (일)

신동진의 醫文化 칼럼10

신동진의 醫文化 칼럼10

“스스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기술, 그것이 곧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 플라시보이다.” 최근 한약에 대한 불신감과 경기 악화로 인한 한의원의 경영난, IMS에 대한 법원의 판결 등으로 인해 한의학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어느 칼럼은 이런 위기감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며, 그 근본 원인은 한의학의 정체성 부재라고 지적하였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만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얼마 전에 몇 분의 의대 교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난 왜 그렇게 사람들이 한의원에 가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였다. 의대 교수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로컬의 양방의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의대 교수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의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한번이라도 고민해 봤다면 그런 질문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의학계에는 그나마 역사의식이 남아있어 의학계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나는 한의학계나 의학계가 정체성을 말할 때, 결코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 한 단어를 여기에 꺼내놓고자 한다. 그 단어는 제목에서 쓴 바와 같이 ‘플라시보(placebo)’이다.



의료계의 정체성 혼란은 근본적으로 플라시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의학의 뿌리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것과 같다. ‘의(醫)’의 뿌리는 ‘무(巫)’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醫)’의 뿌리는 ‘무(巫)’였다. 서양에서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무(巫)’속에 있던 ‘의(醫)’가 순수하게 추출되어 더욱더 발전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무(巫)’속에 들어있던 다른 모든 기술들이 폐기됨으로서 서양의사들은 스스로 자신을 거세한 꼴이 되었다. 그들이 버린 기술 속에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플라시보라고 말한다. 일부 양의사가 짐작은 하면서도 이게 의학인지 아닌지 스스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기술, 그것이 곧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 플라시보이다.



플라시보는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형식과 이론이 있어야 하고, 환자의 몸에 무언가 행해지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양방병원에서 진단명이 안 나오는 환자는 모두 플라시보를 목표로 접근 가능하다. 그러나 양방병원은 그런 환자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치료와 처방의 근거가 없으니 처방할 약도, 이론도, 절차도 없다. 이것이 의과대학 교수가 그렇게 “가지마라, 가지마라” 해도 환자들이 한의원으로 오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한의학은 어떤 환자를 데려와도 병의 원인을 설명해주지 못할 것이 없다. 치료법이 없는 것이 없다. 음양오행 상생상극으로 설명 안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미 모든 환자를 다룰 수 있는 형식과 이론과 행위가 갖추어져 있기에 기술을 행하는 한의사 자신도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게 플라시보인지 아닌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또 다른 의료인의 고민, 한의사의 정체성 혼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양방과는 정반대의 조건에서 한의사의 정체성 혼란은 시작된다. 이미 한의학 자체에 플라시보 기술이 녹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약과 뜸과 침에는 절대 플라시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론과 기술이 기본적으로 ‘무(巫)’의 시대 것인데, 어떻게 우리의 기술에 플라시보가 없을 수 있겠는가. 한의사로서, 의사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에 플라시보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플라시보를 받아들일지, 배척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서양은 이미 현대의학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의사의 카리스마와 플라시보의 의학적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해선 ‘The Powerful Placebo: From Ancient Priest to Modern Physician’ 을 비롯한 여러 전문 서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국내에 이렇다 할 책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의사의 카리스마와 플라시보는 한의원 개원의를 상대로 하는 수많은 강의들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열심히 강의를 듣고 하라는 대로 했는데 치료술이 재현이 안된다면, 오랫동안 수련한 제자들이 스승의 치료법을 재현하지 못한다면 그 강의는 강사만의 카리스마와 플라시보만을 보여주는 강의인 것이다.



결코 내가 도(道)에 이르지 못하여 재현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플라시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다시 보자. 도처에서 발견되는 플라시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놀라움은 한의사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정체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도 잊지 말자. 그런 식으로 의학의 정체성은 확립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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