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17.1℃
  • 구름많음23.2℃
  • 맑음철원20.7℃
  • 구름많음동두천20.3℃
  • 구름많음파주20.2℃
  • 맑음대관령20.1℃
  • 구름많음춘천23.2℃
  • 구름많음백령도13.4℃
  • 흐림북강릉21.4℃
  • 구름많음강릉25.1℃
  • 구름많음동해19.8℃
  • 맑음서울21.6℃
  • 맑음인천18.1℃
  • 맑음원주23.8℃
  • 맑음울릉도16.8℃
  • 맑음수원20.8℃
  • 맑음영월24.5℃
  • 맑음충주25.2℃
  • 맑음서산18.7℃
  • 구름많음울진18.4℃
  • 맑음청주25.2℃
  • 맑음대전24.5℃
  • 맑음추풍령24.7℃
  • 맑음안동26.2℃
  • 맑음상주25.7℃
  • 맑음포항24.8℃
  • 맑음군산18.1℃
  • 맑음대구24.4℃
  • 맑음전주22.0℃
  • 맑음울산22.1℃
  • 맑음창원19.6℃
  • 맑음광주23.0℃
  • 맑음부산19.3℃
  • 맑음통영19.3℃
  • 맑음목포20.3℃
  • 맑음여수18.9℃
  • 맑음흑산도16.2℃
  • 맑음완도20.8℃
  • 맑음고창23.4℃
  • 맑음순천19.4℃
  • 맑음홍성(예)19.3℃
  • 맑음23.5℃
  • 맑음제주20.8℃
  • 맑음고산19.8℃
  • 맑음성산20.4℃
  • 맑음서귀포22.2℃
  • 맑음진주19.3℃
  • 맑음강화17.1℃
  • 맑음양평23.3℃
  • 맑음이천23.1℃
  • 맑음인제21.5℃
  • 맑음홍천23.3℃
  • 맑음태백20.6℃
  • 맑음정선군23.4℃
  • 맑음제천23.6℃
  • 맑음보은24.3℃
  • 맑음천안22.2℃
  • 맑음보령17.2℃
  • 맑음부여20.6℃
  • 맑음금산23.3℃
  • 맑음23.7℃
  • 맑음부안19.6℃
  • 맑음임실23.0℃
  • 맑음정읍21.9℃
  • 맑음남원23.8℃
  • 맑음장수22.0℃
  • 맑음고창군24.1℃
  • 맑음영광군21.3℃
  • 맑음김해시20.5℃
  • 맑음순창군23.7℃
  • 맑음북창원21.6℃
  • 맑음양산시21.7℃
  • 맑음보성군19.9℃
  • 맑음강진군19.9℃
  • 맑음장흥19.0℃
  • 맑음해남19.6℃
  • 맑음고흥20.6℃
  • 맑음의령군22.5℃
  • 맑음함양군23.1℃
  • 맑음광양시19.9℃
  • 맑음진도군19.0℃
  • 맑음봉화23.3℃
  • 맑음영주24.0℃
  • 맑음문경25.1℃
  • 맑음청송군24.8℃
  • 맑음영덕20.4℃
  • 맑음의성26.3℃
  • 맑음구미25.3℃
  • 맑음영천24.4℃
  • 맑음경주시23.8℃
  • 맑음거창22.4℃
  • 맑음합천23.0℃
  • 맑음밀양23.3℃
  • 맑음산청21.0℃
  • 맑음거제18.7℃
  • 맑음남해18.5℃
  • 맑음20.7℃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10일 (일)

[儒醫列傳 80]조선 역사 속 비운의 儒醫

[儒醫列傳 80]조선 역사 속 비운의 儒醫

B0112007101946225-1.jpg

康命吉은 조선 문화의 황금기인 영조와 정조년간에 御醫로 활동하면서 뛰어난 의술로 당대 최고의 의사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영조 44년인 1768년에 의과고시에 합격하여 내의원에 들어온 후에 정조대까지 의술과 학식으로 이름을 떨쳤고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1794년에는 首醫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종1품인 崇祿大夫까지 오르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와 같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된 데에는 그의 깊은 학식과 인격을 정조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康命吉은 1799년 왕명에 따라 ‘濟衆新編’이라는 의서를 간행하는데, 이 책은 ‘東醫寶鑑’의 단점을 극복하고 활용도가 높은 의서를 만들고자 하는 정조대왕의 의지의 반영으로서 康命吉은 이를 잘 수행해냈다. 일명 “芟繁補漏” 즉 “번잡한 것을 베어내고 빠진 것을 보충한다”는 이 책의 편집방침은 이러한 목표에서 설정된 것이었다. 지창영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芟繁’에 대해서는 경락학적인 부분, 질병서술의 부분, 진단의 부분, 질병의 분류, 유사한 증상, 병리기전에 대한 부분, 운기적인 내용의 측면에서 이루어졌고, ‘補漏’에 대해서는 ‘東醫寶鑑’의 내용에 대한 補漏, ‘東醫寶鑑’에서 잘못 인용하고 있는 문장을 바로 잡음, 약물의 가감, 外症·自覺症狀·時間에 따른 疾病의 間甚, 常病中에 ‘東醫寶鑑’에서 빠진 부분 등의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외에도 새로운 醫論을 新增하였고, 老人處方과 藥性歌를 첨부하고 있다.



이렇듯 한의학사에 남는 명저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인적으로 정조의 죽음 이후에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말았다. 순조가 즉위한 후에 정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덮어쓰고 죽게 된 것이다. 정조와 친하게 지냈던 이력을 볼 때, 이것은 반대파의 숙청이었던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