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7.8℃
  • 맑음19.6℃
  • 구름많음철원17.6℃
  • 구름많음동두천17.2℃
  • 맑음파주16.7℃
  • 맑음대관령15.5℃
  • 맑음춘천19.7℃
  • 맑음백령도15.0℃
  • 맑음북강릉16.3℃
  • 맑음강릉19.0℃
  • 맑음동해16.6℃
  • 맑음서울18.2℃
  • 맑음인천16.4℃
  • 맑음원주19.9℃
  • 맑음울릉도14.8℃
  • 맑음수원17.8℃
  • 맑음영월19.8℃
  • 맑음충주20.2℃
  • 맑음서산16.2℃
  • 맑음울진16.2℃
  • 맑음청주19.8℃
  • 맑음대전19.7℃
  • 맑음추풍령18.4℃
  • 맑음안동21.0℃
  • 맑음상주21.0℃
  • 맑음포항19.0℃
  • 맑음군산16.3℃
  • 맑음대구22.7℃
  • 맑음전주17.9℃
  • 맑음울산17.0℃
  • 맑음창원17.6℃
  • 맑음광주19.2℃
  • 맑음부산17.2℃
  • 맑음통영17.1℃
  • 맑음목포16.3℃
  • 맑음여수16.9℃
  • 맑음흑산도14.6℃
  • 맑음완도17.1℃
  • 맑음고창16.4℃
  • 맑음순천17.1℃
  • 맑음홍성(예)18.0℃
  • 맑음18.6℃
  • 맑음제주17.5℃
  • 맑음고산15.9℃
  • 맑음성산17.1℃
  • 맑음서귀포17.2℃
  • 맑음진주17.5℃
  • 맑음강화14.0℃
  • 맑음양평19.0℃
  • 맑음이천18.9℃
  • 맑음인제18.4℃
  • 맑음홍천19.9℃
  • 맑음태백16.2℃
  • 맑음정선군18.7℃
  • 맑음제천19.2℃
  • 맑음보은19.3℃
  • 맑음천안18.1℃
  • 맑음보령14.6℃
  • 맑음부여18.7℃
  • 맑음금산18.8℃
  • 맑음18.4℃
  • 맑음부안16.2℃
  • 맑음임실17.7℃
  • 맑음정읍17.6℃
  • 맑음남원20.4℃
  • 맑음장수17.3℃
  • 맑음고창군16.7℃
  • 맑음영광군16.2℃
  • 맑음김해시17.9℃
  • 맑음순창군19.1℃
  • 맑음북창원18.6℃
  • 맑음양산시19.4℃
  • 맑음보성군18.0℃
  • 맑음강진군18.7℃
  • 맑음장흥19.0℃
  • 맑음해남17.1℃
  • 맑음고흥16.2℃
  • 맑음의령군19.8℃
  • 맑음함양군21.6℃
  • 맑음광양시17.5℃
  • 맑음진도군15.2℃
  • 맑음봉화18.3℃
  • 맑음영주19.3℃
  • 맑음문경17.8℃
  • 맑음청송군17.2℃
  • 맑음영덕15.3℃
  • 맑음의성21.6℃
  • 맑음구미21.5℃
  • 맑음영천19.1℃
  • 맑음경주시18.6℃
  • 맑음거창18.5℃
  • 맑음합천21.1℃
  • 맑음밀양20.6℃
  • 맑음산청19.3℃
  • 맑음거제16.8℃
  • 맑음남해16.9℃
  • 맑음18.4℃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9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04

김남일의 儒醫列傳 104

B0112008060334529-1.jpg

뛰어난 의술로 堂上官이 된 儒醫



연산군 대에 한명의 御醫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연산군 초기부터 치료에 공로를 세워 여러 차례 상을 받고 관직이 상승한 河宗海이다.



연산군 3년인 1497년에는 元子가 안전하게 출산한 것을 공으로 인정하여 연산군에게서 상을 받았고, 1501년에는 元子의 疫疾을 치료한 공로로 품계가 올라가게 되었다. 이 때 正三品 堂上官으로 진급시키려고 하였지만 醫官을 堂山官으로 승급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중신들의 반대로 올리지는 못하였다.



河宗海가 당시 궁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 있다. 1505년 喪中임에도 벼슬을 종용받아 궁중으로 들어온 것이 그것이다. 궁중에서는 그의 뛰어난 의술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 河宗海는 堂上官으로 승급되어 있었다.



중종이 등극한 후에도 河宗海의 관직은 상승하였다. 중종원년인 1506년에는 嘉善大夫에 올라가고, 1514년에는 醫官出身으로는 파격적으로 惠民署提調로 승급되게 되었다. 이에 신하들은 提調는 재상으로 임명되는 것이 전례임을 들어 반대하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1517년 7월 元子의 瘡疹을 치료하여 상을 받았고, 1530년 7월 內醫院提調가 되고 1533년까지 內醫院醫官으로 왕실에 질병이 있을 때마다 診候하였다.



이렇듯 河宗海는 연산군, 중종 년간에 궁중의술의 중심리더로서 활동하면서 의관출신으로는 파격적으로 堂上官까지 올라가는 신화를 남겼다. 그의 노력으로 醫官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게 되었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