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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9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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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東西醫學講習所의 설립과

한의학교육을 위한 韓醫들의 노력



“明治四十一年一月十日洪鍾哲李海盛趙炳瑾三氏가發起야京城中部寺洞八統二戶에設立얏다가大正元年十月一日水門洞九十四統一戶元普光學校跡을修理移轉얏더니大正四年六月十日昌德宮에셔基址를使用심에因야臥龍洞十五番地로移轉고大正五年一月十九日益善洞五十七番地全鮮醫會會舘內로移轉얏다가仝年四月一日現在齋洞百番地로移設다 敎科目과經費 東醫科와西醫科를幷히敎授며校具物品及消耗費洪鍾哲氏敎科書印刷及紙物은趙炳瑾氏가分擔이러니明治四十四年四月에至야一般經費를洪鍾哲氏가專擔고事情에依야要醫料敎授를 停止얏더니本年一月로始야敎務를一層擴張고東西醫學의敎科目이別表와如히定니리講習所公認 大正二年五月二十日設立者洪鍾哲氏의命義로醫學講習所의公認을承다”



위의 자료는 東西醫學講習所의 설립시기와 장소의 전말을 소상히 밝히고 있는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이 글은 1916년 6월 26년에 나온 『東西醫學報』1호에 실린 “本講習所沿革略記”라는 題下의 글이다.



이를 잘 풀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東西醫學講習所는 1908년 1월 10일 洪鍾哲, 李海盛, 趙炳瑾 등이 發起하여 京城 중부에 있는 寺洞의 8統 2戶에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1912년 10월 1일에 水門洞 94統 1戶 普光學校의 학교터를 修理하여 이전하였다. 1915년 6월 10일에는 昌德宮에서 이곳을 使用하게 됨에 따라 臥龍洞 15번지로 이전하게 되었고, 1916년 1월 19일에는 益善洞 57번지 全鮮醫會會舘內로 이전하였다가 같은 해 4월 1일에는 齋洞 100번지로 이전하였다. 敎科目은 東醫科와 西醫科를 같이 敎授하였으며, 校具物品과 消耗費는 洪鍾哲이 분담하였고, 敎科書印刷와 紙物은 趙炳瑾이 분담하였다. 1911년 4월에 一般經費를 洪鍾哲이 專擔하였고 事情에 의하여 東醫科는 敎授를 정지하기도 하였지만 1916년 1월부터 敎務가 一層擴張되게 되었다. 1913년 5월 20일에는 設立者인 洪鍾哲의 命義로 醫學講習所의 公認을 받게 되었다.



이렇듯 위의 기록은 東西醫學講習所라는 한의학교육기관의 시작과 1916년까지의 상황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기록이다. 본 교육기관의 설립자로 언급되고 있는 洪鍾哲(1852-1919)은 號가 慕景으로 서울에 거주하면서 구한말에서 일제시대 초기까지 40여년간 名醫로 이름을 날린 醫家이다. 그는 일찍이 12세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한의학에 뜻을 두기 시작하여 『景岳全書』를 많이 연구하여 호를 張景岳(1563-1640)을 사모한다는 의미인 ‘慕景’이라고 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景岳全書』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八陳新編』上下卷을 저술하여 자신의 학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매일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景岳全書』에 나오는 脈, 陰陽, 表裏, 虛實, 寒熱 등의 篇을 한두 차례 읽은 다음에 진료에 임한 것으로도 유명하였다.



교과서 인쇄와 종이 비용을 부담한 趙炳瑾(1868-?)은 1915년 한의사단체의 연합대회인 全鮮醫生大會를 열기 위해 발기인으로 참석하면서 10월 1일에 열린 발기인총회에서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23일에 大會가 열릴 때 “醫學과 生命”을 주제로 하는 개회사를 하여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全鮮醫會가 설립된 후에는 監事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東西醫學講習所에서는 3년제로 예과 2년 본과 1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교과목은 크게 東醫學, 西醫學, 東西醫學, 기타 과목으로 구분되었다. 東醫學에 속하는 과목으로서 臟腑經絡學, 脈學, 傷寒學, 雜病學, 小兒科學, 四象學 등을 설강하였고, 西醫學에 속하는 과목으로서 解剖生理學, 病理學, 診斷學, 眼耳卑咽喉科學, 內科學 등을 설강하였고, 東西醫學에 속하는 과목으로서 外科學, 婦人産科學, 藥物學 등을 설강하였고, 기타과목으로 修身, 國語, 算術, 理科 등을 설강하였다.



그러나, 이 東西醫學講習所는 1919년 강력한 후원자였던 洪鍾哲가 서거하게 됨에 따라 廢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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