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3.9℃
  • 비24.4℃
  • 흐림철원23.7℃
  • 흐림동두천24.1℃
  • 흐림파주24.0℃
  • 흐림대관령20.7℃
  • 흐림춘천24.6℃
  • 박무백령도24.8℃
  • 비북강릉23.9℃
  • 흐림강릉24.4℃
  • 흐림동해24.7℃
  • 비서울24.2℃
  • 비인천24.5℃
  • 흐림원주24.5℃
  • 흐림울릉도25.2℃
  • 비수원24.9℃
  • 흐림영월24.4℃
  • 흐림충주24.6℃
  • 흐림서산23.9℃
  • 흐림울진25.1℃
  • 비청주24.9℃
  • 비대전23.9℃
  • 흐림추풍령24.4℃
  • 흐림안동23.5℃
  • 흐림상주23.7℃
  • 구름많음포항30.2℃
  • 구름많음군산24.2℃
  • 구름많음대구31.7℃
  • 비전주27.1℃
  • 구름많음울산30.7℃
  • 구름많음창원30.3℃
  • 맑음광주30.9℃
  • 맑음부산30.6℃
  • 구름많음통영29.3℃
  • 구름많음목포30.9℃
  • 구름많음여수29.5℃
  • 맑음흑산도29.4℃
  • 맑음완도32.1℃
  • 구름많음고창29.2℃
  • 구름많음순천28.6℃
  • 비홍성(예)24.0℃
  • 흐림23.6℃
  • 구름많음제주32.7℃
  • 맑음고산28.7℃
  • 맑음성산29.7℃
  • 구름많음서귀포30.9℃
  • 구름많음진주28.4℃
  • 흐림강화23.9℃
  • 흐림양평24.6℃
  • 흐림이천24.8℃
  • 흐림인제23.7℃
  • 흐림홍천24.2℃
  • 흐림태백22.1℃
  • 흐림정선군23.5℃
  • 흐림제천23.5℃
  • 흐림보은24.2℃
  • 흐림천안23.8℃
  • 흐림보령23.5℃
  • 흐림부여24.1℃
  • 구름많음금산25.1℃
  • 흐림23.7℃
  • 구름많음부안26.3℃
  • 맑음임실30.2℃
  • 구름많음정읍27.6℃
  • 맑음남원30.8℃
  • 맑음장수29.3℃
  • 구름많음고창군29.0℃
  • 구름많음영광군29.5℃
  • 구름많음김해시29.7℃
  • 맑음순창군30.6℃
  • 구름많음북창원31.2℃
  • 구름많음양산시31.1℃
  • 맑음보성군28.9℃
  • 맑음강진군31.7℃
  • 맑음장흥30.4℃
  • 맑음해남31.3℃
  • 구름많음고흥30.7℃
  • 구름많음의령군30.8℃
  • 구름많음함양군32.2℃
  • 구름많음광양시30.8℃
  • 맑음진도군30.6℃
  • 흐림봉화25.0℃
  • 흐림영주23.4℃
  • 흐림문경22.9℃
  • 구름많음청송군29.4℃
  • 구름많음영덕25.7℃
  • 구름많음의성30.9℃
  • 구름많음구미32.8℃
  • 구름많음영천31.6℃
  • 구름많음경주시32.2℃
  • 맑음거창31.6℃
  • 구름많음합천32.1℃
  • 구름많음밀양32.3℃
  • 구름많음산청30.0℃
  • 구름많음거제29.2℃
  • 구름많음남해28.1℃
  • 구름많음30.4℃
기상청 제공

2026년 08월 31일 (월)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4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4

B0042010111632503-2.jpg

B0042010111632503-1.jpg

양반의 자제들에게 의학 교육을 시킬 것을 건의한 의학자



‘태조실록’ 1393년 1월29일자 기록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외방(外方)에는 의약(醫藥)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원컨대 각도에 의학교수(醫學敎授) 한 사람을 보내어 계수관(界首官)마다 하나의 의원(醫院)을 설치하고, 양반의 자제(子弟)들을 뽑아 모아 생도(生徒)로 삼고, 그 글을 알며 조심성 있고 온후한 사람을 뽑아 교도(敎導)로 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향약(鄕藥)으로 백성의 질병을 고치는 경험방(經驗方)을 익히게 하고, 교수관(敎授官)은 두루 다니면서 설명 권장하고, 약을 채취(採取)하는 정부(丁夫)를 정속(定屬)시켜 때때로 약재(藥材)를 채취하여 처방(處方)에 따라 제조하여,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즉시 구료(救療)하게 하소서.”



위의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당시 전라도 按廉使였던 金希善으로서 도평의사사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김희선은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이며 의학자이다. 조선이 개국하는 해인 1392년에 호조판서로 활동을 시작하여 1395년 노비변정도감의 판사, 1398년 원주목사, 1402년 참지의정부사·서북면도순문찰리사, 1404년 대사헌·지의정부사, 1406년 형조판서 등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김희선은 문신임에도 의학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鄕藥濟生集成方’, ‘牛馬醫方’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 개국 이듬해에 국가적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정책의 수립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러한 의학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407년에는 부모의 질병으로 관직을 사직할 것을 간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김희선이 편찬에 간여한 ‘향약제생집성방’.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