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3.7℃
  • 비22.6℃
  • 흐림철원22.3℃
  • 흐림동두천23.2℃
  • 흐림파주22.5℃
  • 흐림대관령19.3℃
  • 흐림춘천22.9℃
  • 흐림백령도22.1℃
  • 흐림북강릉23.3℃
  • 흐림강릉23.7℃
  • 흐림동해24.0℃
  • 비서울24.0℃
  • 비인천25.1℃
  • 흐림원주23.4℃
  • 비울릉도24.8℃
  • 흐림수원23.7℃
  • 흐림영월23.2℃
  • 흐림충주23.6℃
  • 흐림서산23.8℃
  • 흐림울진23.9℃
  • 비청주24.8℃
  • 비대전22.8℃
  • 흐림추풍령22.8℃
  • 비안동24.3℃
  • 흐림상주23.6℃
  • 흐림포항24.4℃
  • 흐림군산22.6℃
  • 흐림대구23.6℃
  • 흐림전주23.4℃
  • 흐림울산22.9℃
  • 구름많음창원25.3℃
  • 흐림광주26.0℃
  • 구름많음부산27.0℃
  • 맑음통영27.0℃
  • 구름많음목포26.4℃
  • 맑음여수26.9℃
  • 비흑산도26.5℃
  • 구름많음완도26.1℃
  • 흐림고창23.5℃
  • 흐림순천23.2℃
  • 비홍성(예)23.6℃
  • 흐림23.5℃
  • 맑음제주27.5℃
  • 맑음고산27.0℃
  • 맑음성산27.5℃
  • 구름많음서귀포28.0℃
  • 구름많음진주23.2℃
  • 흐림강화23.1℃
  • 흐림양평23.8℃
  • 흐림이천23.9℃
  • 흐림인제21.4℃
  • 흐림홍천23.2℃
  • 흐림태백21.3℃
  • 흐림정선군22.6℃
  • 흐림제천22.1℃
  • 흐림보은23.2℃
  • 흐림천안24.3℃
  • 흐림보령24.2℃
  • 흐림부여23.2℃
  • 흐림금산22.8℃
  • 흐림22.8℃
  • 흐림부안22.1℃
  • 흐림임실23.5℃
  • 흐림정읍23.8℃
  • 흐림남원23.8℃
  • 흐림장수22.3℃
  • 흐림고창군23.3℃
  • 흐림영광군22.6℃
  • 구름많음김해시24.5℃
  • 흐림순창군23.8℃
  • 구름많음북창원25.2℃
  • 구름많음양산시24.2℃
  • 구름많음보성군25.8℃
  • 흐림강진군26.5℃
  • 구름많음장흥26.9℃
  • 구름많음해남26.1℃
  • 맑음고흥25.4℃
  • 구름많음의령군23.7℃
  • 흐림함양군23.8℃
  • 구름많음광양시25.4℃
  • 흐림진도군27.1℃
  • 흐림봉화23.4℃
  • 흐림영주23.5℃
  • 흐림문경23.3℃
  • 흐림청송군23.3℃
  • 흐림영덕22.9℃
  • 흐림의성24.0℃
  • 흐림구미23.9℃
  • 흐림영천23.0℃
  • 흐림경주시22.8℃
  • 흐림거창23.7℃
  • 구름많음합천24.2℃
  • 흐림밀양24.0℃
  • 흐림산청24.2℃
  • 맑음거제27.1℃
  • 구름많음남해26.4℃
  • 구름많음24.5℃
기상청 제공

2026년 08월 31일 (월)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4)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4)

B0042011032239843-1.jpg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西厓先生文集』은 柳成龍(1542~1607)의 유고를 모아 1633년 간행된 문집으로서 17권에 ‘醫學辨證指南序’라는 제목의 글이 보인다. 이것은 柳成龍이 지은 책인 『醫學辨證指南』이라는 책의 서문을 수록한 것이다.



아쉽게도 원서는 남아있지 않고 이 서문만 남아 있지만 이 서문을 통해 그의 의학관을 엿볼 수 있다. 아래에 서문을 기록한다.



“醫學은 辨證을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옛적의 神醫들은 臟腑를 꿰뚫어보아 겉을 보고 속을 알아내었으니, 이것은 진실로 숭상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 아래로 脈을 잡아서 病을 알아내는 것이 또한 그 다음이다. 오호라! 의사가 脈에 밝지 못하면 끝끝내 삶과 죽음을 맡길 수 없다. 近世에 醫學이 전해지지 못하였는데, 脈法은 더욱 망가지게 되었다. 俗醫들이 억측으로 결단하여 병을 치료하여 이따금 병의 근본은 심해지지 않더라도 藥으로 인하여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오랜기간 喪禍를 경험한 나머지로 매번 程子의 不孝不慈의 가르침을 생각하게 되어 일찍이 애통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 한가한 가운데 우연히 『醫學入門』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이 오로지 辨證을 위주로 하고 있었다. 마음으로 느낀 바가 있어서 그 긴요하고 적절한 것을 베껴서 內傷과 外感을 나누어 두 권으로 만들어 『辨證指南』이라고 이름붙였다. 이것을 家庭의 子弟들에게 주어 救急에 사용하도록 하고자 하니, 억측하여 결단하는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조금은 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醫以辨證爲難. 古之神醫, 洞視臟腑, 望表知裏, 斯固不可尙已. 下此切脈而知病, 抑其次也. 嗚呼. 醫非明脈, 終不可托以死生. 近世醫學不傳, 脈法尤廢. 俗醫臆決治病, 往往病本未甚, 而因藥誤人者多. 余於積年喪禍之餘, 每念程子不孝不慈之訓, 未嘗不傷痛. 閒中偶觀醫學入門, 其書專以辨證爲主, 心有感焉. 於是抄出其緊切者, 分內傷外感爲二卷, 名曰辨證指南. 以與家庭子弟, 爲救急之用, 比之臆決者, 差賢乎爾.)”(필자의 번역)



柳成龍은 어린 시절부터 질병이 많아서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醫學入門』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었다.

『醫學入門』은 『景岳全書』, 『東醫寶鑑』과 함께 한국인이 다독하였던 三大醫書의 하나이다. 특히 『醫學入門』의 心學的 이론체계는 조선의 지식인들의 학술적 경향과 상통하는 점이 많아 많이 읽히게 되었다.



위에서 柳成龍은 『醫學辨證指南』이라는 책의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주요 논점이 內傷과 外感임을 밝히고 있다. 內傷과 外感은 『醫學入門』에서 감별에 초점을 두어 상세하게 논술하고 있다. 李東垣(1180〜1251)의 『內外傷辨惑論』에 의해 제기된 內外傷辨의 주장이 『醫學入門』에서 ‘內外傷辨’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었고 이것을 柳成龍이 『醫學辨證指南』에 抄寫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壬辰倭亂, 丁酉再亂 등을 겪으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사상적 신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柳成龍이 內傷과 外感에 대한 감별에 穿鑿한 것은 外憂內患으로 신음하는 조선 사회에서 국가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요구되는 시국적 판단이 작용된 것이 아닌가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같다고 하지만 원인이 다르기에 치료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는 內傷과 外感은 감별에서부터 정확한 기준을 요한다. 게다가 內外傷의 감별은 外感으로 인식된 기존의 잘못된 편견을 타파하고 內傷이었음을 밝혀주는 데에 더욱 중요성이 있었던 역사적 과정이 있다. 이것은 李東垣, 李 , 許浚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들 모두 內傷과 外感을 분별하는 것보다 그 질환이 內傷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데에 더 무게를 실었다.



柳成龍이 內外傷辨을 주제로 한 醫書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도 日本의 外侵보다 內部分裂이 국가의 위기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모든 지식인들에게 알려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