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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이상곤의 타임머신

이상곤의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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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불 같은 속성의 한국인은 자연과 늘 열려 있다. 불이 속에서 타면 홧병이 난다.

그런 것을 피해 한국인은 외부로 열려 있는 자연을 품는 것을 선호한다.”



고택(古宅)이 있어 아름다운 경주시 안강읍 양동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기계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삼거리가 있다.



포항에서 안강으로 차를 몰다보면 이 삼거리 신호등 앞에 머무른다.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두 물이 만나는 편안한 풍광이 너무나 멋스럽게 펼쳐진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 서면 부딪치는 아무런 소리도 불어난 폭의 물이 넘쳐나는 장관도 없다. 그저 편안하게 서로를 아우르고 다독이며 다시 더 큰 흐름으로 느리면서 더 조용하게 낮게 흐를 뿐이다.



하나가 하나를 만나면 다툼이 있게 마련이고, 권익과 투쟁의 목소리가 열을 올려야 하지만 물은 아무런 말이 없다.



생각해 보면 물의 위대함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데 있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물은 둥근 그릇 모양이 되고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가 된다. 그렇지만 물이 자기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다.



불 난데는 건질 물건이 있지만 물이 지난 데는 건질 물건이 없다는 말처럼 물은 끓일 때는 음식 맛을 순화시키고 물에 담그고 나면 반드시 선명해지고 정화된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깊은 고립이 그것이다.



물은 개별적일 수 없다. 한 방울의 물은 증발하기 마련이고, 큰 흐름이 나눠지고 나눠지면 바다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커지면서도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에 물은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바다는 더 낮은 곳에서 강물을 받아들이고 강은 낮은 곳에서 계곡의 물을 넉넉하게 담는다. 크고 강할수록 낮추어서 수용하는 미덕이 있기에 합치는 곳에서 더 조용하고 느린 흐름이 있을 뿐이다.



고즈넉한 동네 어귀로 들어서면 멋스런 고택들이 눈을 즐겁게 하지만 나는 외관의 풍경보다 집에 깃든 정신에 주목하고 싶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가옥 구조가 가옥 주인을 닮는다. 가옥 주인 또한 그 가옥 안에 살아가면서 집을 닮아간다. 집 짓는 이의 마음이 사람들의 사고와 심리를 지배하게 되고, 결국에는 생활과 행동양식까지 다스리게 된다.



그래서 일본 집은 일본인의 속성과 일치하고, 한국 집은 한국인의 속성과 일치한다. 일본인은 물을 닮아 있다. 물 한방울에 세상이 들어 있는 것처럼 자신 속에 세상을 아우른다.



일본의 건축도 마찬가지다. 교토의 료안지(龍安寺)에 있는 가짜 산수 카레이 산스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코드에 등재된 정원으로 그 모습은 세상의 축소판으로 축조되어 있다. 모래로 물을 상징하고 바위로 산을 상징하여 산수를 묘사한 그 추상성도 그렇지만, 작은 정원 하나에서도 온 세상을 안고 있는 일본인의 물 같은 정체성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에 비해 잡스럽지 않으면서 순수한 불 같은 속성의 한국인은 자연과 늘 열려 있다. 불이 속에서 타면 홧병이 난다. 그런 것을 피해 한국인은 외부로 열려 있는 자연을 품는 것을 선호한다.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소쇄원(瀟灑園)과 식영정(息影亭)은 자연을 향해 축조된 서원 건축물의 대표격이다. 자연과 동화하기 위해 입구가 항시 열려 있다. 울창한 대나무, 개울과 연못이 흐르는 풍광의 아름다움은 물론, 소쇄와 식영이 주는 교훈적 의미는 더욱 크다. ‘소쇄(瀟灑)’는 송나라 때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두고 ‘가슴에 품은 뜻이 맑다’고 한 말을 집주인 양산보가 옮겨 놓은 것이다.



‘채근담’의 ‘바람과 꽃의 소쇄로움이나 눈과 달의 맑음은 자연의 참모습을 닮은 고요한 자의 것이다’란 문장이 소쇄원 식영정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식영(息影)’은 노자(老子)가 언급하는 자연과의 동화다. 목적으로 치닫는 삶은 잊고 그림자마저 쉬게 하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 되고자 하는 염원이다. 전라도에 노자 스타일을 지닌 물아일체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경상도에는 유가 스타일의 이상인 우주관과 건축물의 풍요로움이 있다.



민속마을 경주 양동리의 고택 ‘무첨당’이 소쇄원, 식영정에 버금가는 풍광을 지니고 있다.



금방이라도 필듯 윤기가 오른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연륜이 쌓일수록 운치를 자랑하는 매화나무에 바람소리는 더욱 시원하다. 비 내리는 오후 고색창연한 기왓장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소리며 산새 노래로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다.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 후손 한 분의 호를 딴 정자다. 무첨은 ‘태어난 바 그대로의 심성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으로 천진난만한 본심을 일컫는 뜻이다. 집 이름에 당(堂)이 들어간 것은 집이 곧 자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김정희 선생이 완당(阮堂)으로, 정약용 선생이 여유당(與猶堂)으로 호를 정한 것은 집을 자신의 육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집에 사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집이 닮아가고, 어떤 집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닮아가듯 끊임없는 수양은 마음과 몸을 하나로 되게 한다.







이와 같은 각고의 수양이야말로 자신의 육신을 맑게 닦아 선비정신을 구현하겠다는 실천의지의 표현이다. 집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자연과의 동화를 위해 무첨당에는 본래 담장이 없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연장이기에 누울 공간마저 넓으면 힘이 모자랄 수밖에 없어서 스케일이 자그마하다. 모두가 집과 자신을 하나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무첨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유학의 현실 적응에 대한 이유와 당위성이다. 집이 곧 나 자신이므로 자신을 금전으로 사고 팔 수는 없다. 집을 사고 팔면서 금전적 이득을 얻는 행위를 후손에게 일체 금했다고 한다.



부득이해서 사고 팔 때는 이득을 얻어서 거래하는 상행위를 말도록 했다는 것은 지금의 세대에는 넌센스로 보일 수도 있다. 이득과 목적을 위해 치닫고만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집의 본래 모습이나 용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두셋만 있으면 강남집값, 버블세븐을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무첨당이 있어 한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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