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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권영규 교수

권영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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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미래 한의학 R&D 준비합시다”



S박사님! 잘 지내십니까?

이니셜 때문에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까 망설이다가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지난번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읽으신 어머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여 오랜만에 안부도 여쭙고 꼭 한번 모시겠다는 인사도 드리는 기쁨을 누렸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아직도 한의신문과 민족의학지를 보시면서 한의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계심을 볼 때 S박사나 저의 사명과 의무는 남다르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1기라는 공통점 때문에 금세 친해졌던 S박사님!

지금도 서로 존칭을 붙이는 사이의 S박사님을 처음 뵌 날이 분명하지 않지만 꽤나 오래되었지요? ‘1차 한약분쟁’의 성과물(?)로 탄생한 연구소가 임시로 청담동 청암빌딩에 개소한 것이 1994년이니까 족히 15년은 넘었겠죠? 작고하셨지만, 초대 소장을 홍원식 교수께서 맡으셨기 때문에 초기 멤버가 원전학을 전공한 분들이 많았죠? 물론 10여명이 넘지 않는 연구원이었지만.



저는 당시 대학동기가 원전교실의 조교를 포기하고 연구소로 가게 되고, 기초학을 전공하던 대학 후배도 연구소에 지원하면서 친근감을 가지고 자주 방문하게 되었죠. 또 제가 본과 3학년 때 지금은 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합쳐진 구미의 연구소분들과 함께 인공지능(AI)기법을 이용한 전문가시스템(expert system)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 때문에 복지부 공무원들께 연구소 설립 초기의 관련 자료를 전해 드린 적도 있었기에 더 관심이 많았답니다.



당시에 한의사출신 연구원이 몇 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신대학이 달라도 식사자리에서 많은 고민을 서로 나누곤 하였죠. S박사와 제가 특별히 친밀감을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책 때문이었죠? ‘아! 恨醫學’.



저도 대학시절 한의학 교육에 회의를 하고 고민하였기에, S박사께서 편집부 출신답게 가슴에서 우러나온 글들을 모아 출판한 책 내용에 공감하였지요. 그래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어느 날, 청담동 좁은 총각 하숙집에 하룻밤 신세졌던 기억도 납니다. 제가 386컴퓨터에서 도트프린터로 출력한 ‘골 때리는 한의학’ 글을 보여드리며 함께 이야기하였던 기억이 나는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요즈음 한의학에 입문하는 학생들도 여전하겠지요?



동시대에 대학시절을 보내고, 대학이 다르지만 초창기여서 겪어야 했던 고충에 공통점이 있어서 더 가까워졌던 S박사님. 우리들의 모교 설립자가 똑같이 한의사였지만, 1년 차이로, 우리 대학은 한의예과가 설립된 후 다른 학과가 신설이 되었고, S박사의 모교는 다른 학과가 먼저 설립되고 한의예과가 개설되어 대학행정을 서로 비교하곤 하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과의 설립 순서보다 설립자의 교육철학과 설립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교수들의 역량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아무튼 오랜 인연에게 안부 자주 전하지 못하지만 잘 지내시죠?

가끔씩의 안부에 ‘아! 권 교수님! 오랜만입니다’라며 반갑게 맞으면서도, 꼭 ‘대학은 좋죠? 방학이 있어서’라고 비교하는 S박사님! 한의학전문대학원은 방학이 많이 짧고, 초창기라 요즈음도 방학없이 지낸답니다. ^^



한의학 R&D를 선도하고 있는 S박사님!

지난해 연말 ‘2009 한국한의약연감’을 보면서 2014년이면 벌써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설립된 지 20주년이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연구원의 초기멤버 연구원들은 10년을 서울 청담동에서, 10년을 대전 전민동에서 젊음을 연구와 함께 보낸 셈이 되니까요. 비록 초창기 시절 자료는 없었지만, 2005년과 비교하여 예산이 99억원에서 330억원으로 연평균 35.1% 증가하였고, 정규직 인력도 59명에서 119명으로 연평균 19.2% 증가하였다는 기록을 보면서 그야말로 괄목할 성장이라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연구원의 초창기 멤버가 몇 분이 없어서 과거를 얘기하면 감흥이 없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발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답니다. 오랜 역사에 묵묵히 버티며 연구원을 지켜온 멤버들이 자랑스럽다고.



짧지 않은 연구원의 역사를 다섯 분의 원장으로 개괄해 보면, ‘원전(기초교수)→생리(기초교수)→사상(임상교수)→행정전문가→개원의’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돌이켜 보면 한의학이 한의학다운 것을 초대 소장께서는 늘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한의학 고전 연구의 필요성으로 대변하셨고, 기초에서 실험을 이해하셨던 분이 소장을 맡고 원장으로 승격되면서 실험연구를 통한 과학화를 선도하였고, 한의학의 특성이 임상에 근거를 두고 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을 상징하는 사상의학을 전공한 분이 원장을 맡아 세계화를 시도한 시기까지 연구원의 초기로 보입니다. 이후 정부출연 기관의 규모 경쟁과 예산 확보를 위하여 한의학전공 대학교수 출신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행정전문가를 영입하였고 연임에 성공한 원장의 기여는 아마 연구원 역사를 이전과 구분하는 시기로 보입니다. 동의하시는요? 진행형인 역사에 어찌 정답이 있겠습니까만, 여전히 연구원의 화두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이 무엇을, 왜, 어떻게 연구해야 하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기억해 보면, 연구소 초기의 화두는 한의학의 연구방법론이었고, 원전전공자들과 많이 부딪혔던 한의사 출신 연구원이 가장 먼저 연구소를 떠난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에 원전 분야에서는 의방유취 DB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실험 분야에서는 ‘한열’개념의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실험 분야를 주도하던 K박사도 제 모교 교수의 선배였던 관계로 남다른 입장으로 대하며 한의학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의학 기초이론의 제 학위논문을 드리기도 하였답니다. 그 분과 공동연구를 하셨던 한의사 출신 L박사께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였는데, 한의학의 개념을 실험적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기초적인 가설부터 설정하여 차근차근 접근해야 하는데 다른 분들이 무의미하다고 하여 힘들어 하셨지요. 안타깝지만 거칠 수밖에 없었던 기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요? 한의학전공자와 타 분야 전공자 사이에 공통의 언어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서로간의 전공을 존중하며 나아가 한의학전공자보다 한의학을 더 가치있게 바라보며 지원해주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는지요? 제가 90년대 초 북경의 중국중의연구원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중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이 ‘조국의학인 중의학’이라며 자랑스럽게 중의학을 소개할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의학전공자들은 한의학을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고, 다른 전공자들은 우리 조상의 위대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것처럼 생각하는 현실 때문이었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요?



혹 그런 분들이 아직도 많지 않다면 한의학전공 초창기 멤버들이 분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보건을 위하여 혹은 우리나라 기초 (의)과학을 위하여 한의학 전공자들이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고 얼마나 함께 하고자 노력하였는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답니다. 벌써 포기하지는 않았지요?



지금 연구원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그야말로 약학을 비롯한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 한의학의 연구개발을 선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의학 전공자들이 한번쯤 생각하였던 웬만한 주제는 다루고 있고 다루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이나 한의사들은 아직도 흡족해 하지 않으니 또 다른 도약이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S박사님! 기억하십니까? 직접 초기에 연구하였던 한의학 분야의 미래기술 예측보고서. 당시의 예측과 현재의 상태를 한번쯤 비교하여 다시 10년 뒤 한의학의 미래기술을 예측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통 크게 미래를 준비한 연구원으로 역사에 남기를 기대하는 S박사님!

연구소 설립과 함께 시작한 연구원으로서의 기간이 남다른 S박사님! 대학교수는 전공만 강의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연구할 수 있다고 부러워 하셨죠? 짧은 경험이지만, 3~40대에 공동연구를 이유로 특정대학 교수와 함께 한 뒤 그 대학으로 옮기는 연구원들을 보았기에 이직을 하지 않고 계시는 분들에게 연구 동료로서 지지를 보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양성될 때까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년 이상이 필요한데, 유일하게 있는 국가출연 연구기관에 한의학전공 연구원들이 버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좁게는 우리나라 한의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넓게는 중국과 전 세계를 무대로 힘겨루기를 하는 전통의학 분야에서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할 일은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년도 채 되지 않은 연구원이 중국중의연구원과 대등하게 교류하고, 전 세계 전통의학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의학을 보급하며, 한방산업의 기반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참여하고 각종 연구개발사업의 기획단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하였던 일입니까? 제가 2003년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대구경북한방산업 육성계획을 기획하면서 K부장과 함께 하였던 논의를 기억하십니까?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한의학 분야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10년간 4200억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고, 이 정도 규모의 투자로 농업을 살릴 수 있다면 쌀농사 보호에 투입한 돈보다 비용대비효과가 훨씬 크다면서 한방산업의 가치를 인정하였던 일말입니다. 당시에 엄청난 규모로 보였던 예산이 이제는 연구원 자체예산과 비슷하게 되지 않았나요?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갑니다.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위하여 통 크게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리하여 전란의 와중에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허준 선생처럼 미래 한의학의 R&D 청사진을 역사에 제대로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恨의학을 자랑스러운 韓의학으로 후배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S박사님의 혜안을 기대해 봅니다. 함께 밤새워 얘기할 수 있도록 S박사님의 고향인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좋은 숙소 예약할테니 연락주세요.

부산광역시옆 양산캠퍼스 연구실에서

권영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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