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大韓乾坤 理氣復明”
李常和의 열정에 화답한 金九의 祝詩
李常和(1869~?)는 자신의 저술 『辨證方藥正傳』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14세부터 醫書를 읽은지 50여년이 되어 마음에서 얻은 바를 스스로만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혼자만 지니고 있을 수 없어서 이에 古今의 醫書들 가운데 일찍이 수집한 몇 개의 책들을 여기에서 번잡한 것들을 삭제하고 요점만을 모아서 『辨證方藥正傳』을 만들었다. 즉 陰陽五行의 변화, 인체의 생성구조, 臟腑經絡의 조직, 氣血精神의 生化, 察色, 辨音, 問證, 診脈四診要訣, 五運六氣, 病機 277字, 外感內傷辨證, 寒熱虛實表裏陰陽의 8條, 論治汗和下消吐淸溫補의 8法, 이전 方藥合編의 588方, 古今經驗秘方을 增補한 850方, 金四物의 四物湯加減法, 尹草窓의 二陳湯平胃散加減法, 李東垣의 補中益氣湯加減法, 馮氏의 六味地黃湯加減法의 부류가 그것이다. 한번 보고서 가히 그 요령을 얻어서 처방을 따른다면 온갖 병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니, 진실로 醫門의 寶鑑이다. 내가 평생의 정력이 또한 가히 여기에서 다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말들이 아니고 옛 사람들의 治法과 處方들이다. 어찌 스스로 자신의 뜻으로 부회하여 그 참람된 꾸지람을 불러들일 것인가!”
李常和는 『增補辨證方藥合編』(1927년 간행), 『麻疹經驗方』(1918년 간행), 『漢方醫學指南』(1941년 간행), 『辨證方藥正傳』(1950년 간행), 『李常和治療指針』(1986년 간행) 등 醫書들을 多作한 인물이다. 李常和는 14세에 의서의 학습을 시작하여 만권의 의서를 읽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의서의 저술을 시작하였고, 1939년에 京城(현재의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間島에 이주하였다. 李常和는 그곳에서 그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間島醫藥協會”의 會長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同會에서 月報를 간행하여 通信講義를 실시하여 한의학에 종사하는 醫人들의 자질 향상에도 힘썼고, 講習所를 설치하여 후학을 길러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1941년 『漢方醫學指南』이라는 책을 간행하여 학술적인 업적도 쌓게 되었다.
이 서문은 저자가 추구하는 것들을 잘 요약하고 있다.
“陰陽五行의 변화, 인체의 생성구조, 臟腑經絡의 조직, 氣血精神의 生化”는 이 책이 처방만이 아니라 기초원리에까지 穿鑿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察色, 辨音, 問證, 診脈四診要訣”은 그가 진단에서 四診의 合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이다. “五運六氣, 病機 277字, 外感內傷辨證, 寒熱虛實表裏陰陽의 8條, 論治汗和下消吐淸溫補의 8法”는 그가 辨證을 중시하였음에서 나온 말이다.
“이전 方藥合編의 588方, 古今經驗秘方을 增補한 850方, 金四物의 四物湯加減法, 尹草窓의 二陳湯平胃散加減法, 李東垣의 補中益氣湯加減法, 馮氏의 六味地黃湯加減法” 등은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처방 부분 구성의 성격을 표현한 말이다. 金四物의 四物湯加減法, 尹草窓의 二陳湯平胃散加減法, 李東垣의 補中益氣湯加減法, 馮氏의 六味地黃湯加減法은 이 책의 제일 후미에 붙어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方藥合編』의 處方用藥의 기조를 깔고, 醫論을 보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方藥合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시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附言하면 李常和가 추구한 것은 단순히 『方藥合編』에 대한 이해도 증대의 차원을 뛰어넘어 한국인에게 맞는 新醫論을 제시하자는 목표가 숨어 있다.
1964년에 간행된 판본에는 金九, 李揆同, 李始榮 등의 祝詩가 붙어 있다. 金九의 것은 1949년에 쓰여진 것이고, 李始榮의 것은 1948년에 쓰여진 것이다. 이 시기 李常和가 이들 유명인사들과 인간적 친분이 두터웠음을 느끼게 한다. 金九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의 간행을 축하였다.
“三空齋李常和 辨證方藥正傳 大韓乾坤 理氣復明 己丑元月日 金九”
<-변증방약정전에 나오는 김구의 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