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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이상곤 원장

이상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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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偶像에서 理性으로’



의학의 ‘醫’라는 한자는 본래 아래 받침인 酉가 아니라 巫로부터 시작된다. 의학의 기원을 무속으로 보는 것이다. 역사적인 기록도 이런 견해를 반영한다.



“지금 세상은 병이 나면 점치고 기도를 드린다. 그러므로 질병이 더욱 심해진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활을 쏘는 자가 과녁을 수리하는 격이다.” 「여씨춘추」 진수편(盡數篇), 무당인 무의는 황제에게도 접근하였다. 한무제가 질병에 걸리자 무당을 불러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병이 나았다. 이후 한무제는 무당의 권유에 따라 모습을 감추고 그림자 정치를 펼친다. 왕이 나타나지 않는 예측불허의 정치가 잘 될리 없는 것은 분명하다.



진시황제도 마찬가지다. 제나라 사람인 서불(서씨 혹은 서복)을 보내 불사의 묘약을 찾게 하였다. 그 외에도 한종 후공같은 방사에게도 불사의 묘약을 찾게 하였으나 불로불사의 꿈은 이루지 못한 채 병으로 죽었다.



이에 비하면 조조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무당과 같은 방사인 좌자·감시·극검 등의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만 차갑게 그들을 감시할 뿐 신뢰하지 않았다. 화타도 그의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 치료법을 제시하자 과감히 죽여 버리는 극단적 행동을 보인다.



무당으로부터 갈라져 이성적 치료방식을 적용한 최초 명의는 역시 편작이다. 그는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자의 병은 낫지 않는다고 하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며 생·병리를 음양이론에 맞춰 합리적으로 설명하였다.



그에 비하면 화타는 이단아다. 마비산이라는 약물을 통해 마취하고 직접 절개하고 수술한다는 것은 외과의학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인도의학의 전통으로 추론하지만 너무나 혁신적이고 이방인적인 치료법은 조조에 의해 거부되었고 사라지고 말았다. 화타와 편작은 무의에 이은 신의의 평가에 가깝다.



실제했던 한의학 이론의 집대성자는 장중경이다. 전국시대부터 진한대에 이르기까지 우상적 질병관에서 이성적 질병관으로 변하는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도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조조가 재위 중인 건안년인 점은 이채롭다. 그는 호남성 태수를 지낸 관리로 그의 일족은 전염병에 걸려 200명 중 2/3가 죽었다.



전염병을 깊이 관찰한 뒤 단계를 6단계로 나누고 단계마다 질병의 특징적인 증상과 치료방법 및 처방을 기록하였다. 증상과 처방의 대증적인 논리적 방식은 많은 의학자들을 매료시켰고 모든 처방의 비조로 불린다. 한의학이 음양오행의 관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전염병 치료를 통해 질병 관찰의 결과로 시작한 임상 영역의 학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한의학자들은 지금도 장중경의 상한론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진료한다.



장중경은 관료요 정치가요 학자인데도 의학에 투신한 이유는 무얼까. 사농공상 중에 의사는 商工에 속해 그 순위가 겨우 상인 바로 앞이다. 점치는 사람과 같은 기술자 대열에 끼였으며 잡류로 분류되었다. 동양학에서는 본래 훌륭한 재상이 되지 못하면 훌륭한 의사가 되라는 덕목을 강조한다. 이 점은 의술이 인술이라고 하는 점과 통한다. 仁의 기본적 함의는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애인(愛人)이다. 의술은 생사가 달려 있으므로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백성이 병들지 않고 위아래가 화목하여 국가사회의 평안에 도달한다는 유학적 이념과 통한다.



장중경으로부터 의학의 학문적 영역과 기술적 영역은 구분되어 나타난다. 학문적 영역은 우의들이 맡고 기술적 영역은 일반 의료활동을 하는 한의사들이 맡는다. 한의학은 실전 경험을 통해 입증된 것들이 이론으로 승화하였다. 먼 상고 시대부터 이어진 단편적이고 분산된 많은 경험을 축적해 왔기 때문에 종합과 향상을 추구하였고 이것이 이론으로 재현되어 왔다. 음양오행도 이를 기반으로 한의학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임상성과의 취합에서 논리적 도구로 사용될 뿐인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질병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이지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장중경을 시작으로 정치 관료 유학자들이 의학 영역에 뛰어들면서 무의와 신의의 시대에서 유의의 시대로 변화된 것이다. 우상에서 이성으로, 기술의 영역에서 논리의 영역이 되었다. 논리의 영역에서 배제된 것은 전수하고 계승되던 전문가의 영역이다. 실제로 진료하는 학술은 멸시되고 배척당하였고 응용적 기술의 승화는 제한을 받았다. 한의학서들이 유학자들에 의해 장대한 논리를 표방하면서 비슷비슷한 책만 만들 뿐 실제 진료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어 진 것이다.



학문과 기술의 영역이 합해진 새로운 의학의 탄생은 의외로 조선에서 태동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전문가의 영역과 유의의 영역이 절묘하게 절충된 시도였다. 중국의 의학은 사대부나 유학자들의 자발적인 봉사정신에 의해 이끌어 나갔지만 한국 한의학은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었다. 유학자들은 정치투쟁에만 골몰했지 의학을 연구한 사람은 유성룡, 정약용 등 몇몇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데 불과했고 이론의 영역으로 승화한 사람은 전무했다.



조선 건국 초에는 의약관계 관서들이 양반 중 동반에 두었으며 그것이 잡과일지라도 교습하는 생도는 동서양반 및 양가의 자제들이어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태종 15년 서얼에 대한 엄격한 차별제도가 생기고 한편으로는 서얼에게 의과에 시험 칠 기회를 부여하자 의약직에 나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3년 7월30일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본조는 의술을 소중히 여겼다. 사대부로서 재주와 학식이 있는 자가 양과에 떨어지면 곧 의학에 투신하여 세상의 명의가 되었다. 세종조 때 천출의 서자들이 지원할 수 있게 되면서 사대부들이 더불어 짝이 되는 것을 수치로 여겨 거의 달아나고 말았다.”

의관으로서 허준의 수모는 여러 차례 이어졌다. 선조 39년의 기록이다. 보국·숭록대부의 가자를 내리자 사간원은 조정의 수치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선조를 압박한다. 결국 그 명은 거두어졌고 허준이 사망한 이후 다시 회복되었다. 침의 대가로 일세를 울린 허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침술효과로 경기지방의 요지에 수령으로 임명되지만 사간원과 사헌부의 끈질긴 반대가 이어져 곤욕을 치뤘다.



중요한 역사적 의의는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과 허임이 저술한 ‘침구경험방’이 일본과 중국에서도 앞다투어 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질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의학적 성과물이기에 학술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동의보감’류의 백과사전식 의서는 중국의학사에 다양하고 많다. 하지만 음양오행이나 유학적 해석에 기대지 않고 도가적 해석과 정기신을 위주로 편제를 구성한 것은 없다. 더욱 발군인 것은 실질적인 의료적 경험과 덧붙여 책을 직접 저술할 만큼 뛰어난 학문 능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학과 술의 일치로 그의 손에서 동의학의 집대성을 이룬 것이다.



중국과 한국 한의학에서 가장 대조적인 사실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론의 완성자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있다면 사상의학의 집대성자인 이제마 선생이다. 사상의학은 유학 속에 한의학을 끌어들여 재해석한 것이다. 이제마 선생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전라도의 거유 이정진 선생이다. 선생이 ‘100년 뒤에 자신의 의학이 빛을 볼 것’이라고 예언하였지만 노사 기정진 선생도 ‘100년 뒤에 자신의 글을 끄집어내라’고 한 것은 묘하게 일치한다. 사상의학은 심(心)이 일신의 주재이고 이를 바탕으로 네개 장부의 크고 작음에 따라 체질이 결정된다고 추론하였다. 노사 기정진 선생도 심(心)이 일신의 주재이며 여기에 가장 순수한 기인 정상(精爽)이 있다고 규정한다.



사상의학이 기존의 한의학인 음양오행과 배치되는 점은 중심에 대한 논쟁이 가장 핵심이다. 음양오행설이 소화기인 비위가 바퀴의 축선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점은 돼지 바비큐 때 입에서 항문까지의 관을 축선으로 사용한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사상의학은 성리학에서 성은 ‘心+生’이다. 여기서 ‘心’은 사유능력이다. 도덕적 판단능력의 근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바로 심은 축선이 되며 음양오행에서 이해하는 심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이기론과 조선유학의 이기론은 차이가 있다. 중국은 우주자연의 생성병화를 이해하고 그 일부로서 인간의 성정을 설명한다. 조선유학은 인간의 정신적·심리적 작용을 설명하고 도덕적 판단 및 행위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설명하는데 초점이 있다. 바로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이며 ‘心’ 속의 도덕률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체질불변의 법칙도 이런 사유가 바탕이 된 것이다(공자는 학습에 따라 ‘心’이 달라진다고 보면 본질적 측면보다 변화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이런 관점을 종합한다면 사상의학은 조선의 성리학이 바탕이 된 학문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정기신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은 천지인의 삼원론이다. 허임의 보사법의 핵심도 인체를 천지인으로 나누어 세 번 돌리고 세 번 밀어넣는 삼원론이다. 한글도 천지인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든 것은 핸드폰 문자로도 확인된다. 사상의학도 조선 500년 동안 갈고 닦은 성리학을 뿌리로 탄생한 것이다. 우리의 고유정서를 바탕으로 나타난 것만이 생명력을 갖는다.



일본의 한의학은 황한의학이다. 일본식의 한의학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지금의 한의학은 한국 한의학이지 동양의학이라는 이름으로는 정체성을 나타내기 힘들다. 질병은 시대와 사회가 만드는 측면이 많다. 오늘 먹는 음식과 생활기구인 냉장고, 전등, 의복 등이 알러지와 위장병 등 다양한 질병을 만든다. 우리의 의학에는 우리의 전통과 사유방식 역사성이 녹여져 있는 것이며 단순히 동양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아쉽다.



한국 한의학은 지금 몇 시일까. 중국은 근대에 공산주의 체제로 말미암아 경쟁력 없는 한의학이 되었으며 기술적 발전이 없었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래로 한의학이 의학으로 흡수합병되어 고유의 특징이 사라졌다. 우리는 현대의학과의 공존과 경쟁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의료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세계일등 한의학이냐 아니냐는 마지막 관문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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