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西厓先生文集』은 柳成龍(1542~1607)의 유고를 모아 1633년 간행된 문집으로서 17권에 ‘醫學辨證指南序’라는 제목의 글이 보인다. 이것은 柳成龍이 지은 책인 『醫學辨證指南』이라는 책의 서문을 수록한 것이다.
아쉽게도 원서는 남아있지 않고 이 서문만 남아 있지만 이 서문을 통해 그의 의학관을 엿볼 수 있다. 아래에 서문을 기록한다.
“醫學은 辨證을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옛적의 神醫들은 臟腑를 꿰뚫어보아 겉을 보고 속을 알아내었으니, 이것은 진실로 숭상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 아래로 脈을 잡아서 病을 알아내는 것이 또한 그 다음이다. 오호라! 의사가 脈에 밝지 못하면 끝끝내 삶과 죽음을 맡길 수 없다. 近世에 醫學이 전해지지 못하였는데, 脈法은 더욱 망가지게 되었다. 俗醫들이 억측으로 결단하여 병을 치료하여 이따금 병의 근본은 심해지지 않더라도 藥으로 인하여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오랜기간 喪禍를 경험한 나머지로 매번 程子의 不孝不慈의 가르침을 생각하게 되어 일찍이 애통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 한가한 가운데 우연히 『醫學入門』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이 오로지 辨證을 위주로 하고 있었다. 마음으로 느낀 바가 있어서 그 긴요하고 적절한 것을 베껴서 內傷과 外感을 나누어 두 권으로 만들어 『辨證指南』이라고 이름붙였다. 이것을 家庭의 子弟들에게 주어 救急에 사용하도록 하고자 하니, 억측하여 결단하는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조금은 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醫以辨證爲難. 古之神醫, 洞視臟腑, 望表知裏, 斯固不可尙已. 下此切脈而知病, 抑其次也. 嗚呼. 醫非明脈, 終不可托以死生. 近世醫學不傳, 脈法尤廢. 俗醫臆決治病, 往往病本未甚, 而因藥誤人者多. 余於積年喪禍之餘, 每念程子不孝不慈之訓, 未嘗不傷痛. 閒中偶觀醫學入門, 其書專以辨證爲主, 心有感焉. 於是抄出其緊切者, 分內傷外感爲二卷, 名曰辨證指南. 以與家庭子弟, 爲救急之用, 比之臆決者, 差賢乎爾.)”(필자의 번역)
柳成龍은 어린 시절부터 질병이 많아서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醫學入門』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었다.
『醫學入門』은 『景岳全書』, 『東醫寶鑑』과 함께 한국인이 다독하였던 三大醫書의 하나이다. 특히 『醫學入門』의 心學的 이론체계는 조선의 지식인들의 학술적 경향과 상통하는 점이 많아 많이 읽히게 되었다.
위에서 柳成龍은 『醫學辨證指南』이라는 책의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주요 논점이 內傷과 外感임을 밝히고 있다. 內傷과 外感은 『醫學入門』에서 감별에 초점을 두어 상세하게 논술하고 있다. 李東垣(1180〜1251)의 『內外傷辨惑論』에 의해 제기된 內外傷辨의 주장이 『醫學入門』에서 ‘內外傷辨’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었고 이것을 柳成龍이 『醫學辨證指南』에 抄寫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壬辰倭亂, 丁酉再亂 등을 겪으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사상적 신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柳成龍이 內傷과 外感에 대한 감별에 穿鑿한 것은 外憂內患으로 신음하는 조선 사회에서 국가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요구되는 시국적 판단이 작용된 것이 아닌가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같다고 하지만 원인이 다르기에 치료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는 內傷과 外感은 감별에서부터 정확한 기준을 요한다. 게다가 內外傷의 감별은 外感으로 인식된 기존의 잘못된 편견을 타파하고 內傷이었음을 밝혀주는 데에 더욱 중요성이 있었던 역사적 과정이 있다. 이것은 李東垣, 李 , 許浚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들 모두 內傷과 外感을 분별하는 것보다 그 질환이 內傷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데에 더 무게를 실었다.
柳成龍이 內外傷辨을 주제로 한 醫書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도 日本의 外侵보다 內部分裂이 국가의 위기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모든 지식인들에게 알려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