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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신미숙 교수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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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를 사랑했던 류근철 박사님을 추모하며…



과학영재라고 불리우는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 공부나 착실히 따라가는 수준인 필자와는 차원이 달랐던 번뜩이는 창의성과 뒤떨어진 사회성으로 확실히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는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내게 ‘카이스트’라는 네 글자는 그 영재로 불리우던 몇몇 동창들이 입학했다더라는 풍문만 있을 뿐, 그 이후의 진로를 묻기가 상당히 애매모호한 뭔가 블랙홀같은 미지의 세계를 암시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그랬던 카이스트가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던 것은 가까이 알고 지내는 전종욱 선생님이 2007년 2월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일 것 같다. 의사·한의사·치과의사들이 기초의학 연구를 위해 입학하는 그 대학원에 한의사들이 해마다 몇 명씩 입학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 선생님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게다가 지난 2008년 8월14일에는 류근철 한의학박사께서 카이스트에 578억원을 기부하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카이스트는 또 한 번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듯 했다. ‘한의사가 그 거액의 재산을 카이스트에 왜 기부하게 되었을까?’ 하는 세간의 궁금증과 존경심을 한 몸에 받으시며 그 해 ‘기부천사’라는 이름으로 국내 모든 언론으로부터 그야말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셨다.



2008년 초가을, 잠깐이었지만 광화문 자택에서 선생님을 직접 뵈올 기회가 있었다. 가까이에서 뵌 선생님의 생전 모습은 열정 그 자체였다. 이런저런 추억이 얽힌 선생님의 서가에 꽂힌 책과 박물관을 능가하는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는 여러 물건들을 보여주시며 나눈 1시간여의 대화는 마치 몇 분처럼 훌쩍 지나갔고 기어이 우리 일행들을 데리고 근처 회전초밥집에서 융숭한 대접까지 해 주셨다.

그랬던 류 박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2011년 3월 8일 듣게 되었다. 2011년 1월8일 로봇영재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지 딱 2개월 후의 시점이었다. 1월8일 첫 번째 사건 이후 3월20일, 3월29일, 4월7일 잇따른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도미노 소식을 선생님은 접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카이스트를 사랑했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카이스트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학생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선생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셨더라면, 얼마나 슬퍼하시고 또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 카이스트 교정을 걸으시며 선생님 혼자 몰아 쉬셨을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카이스트 사태>로까지 불리우는 이번 일에 연관된 많은 보도들 중에 내 관심과 흥미를 끌었던 대목은 개교 이래 40년만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비상학생총회라는 것이 열렸다는 사실이었다. 각자의 실험실에서 각자의 세부 전공 공부와 과제, 논문작업을 수행하느라 단 한 번도 공공의 일에 혹은 동료들의 죽음과 맞바꿀만한 삶의 고민과 괴로움에 관심을 쏟을 시간조차를 못 냈을 그들이 40년만에 처음으로 자체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느라 밤샘 회의를 했고 이 최대 위기를 스스로 돌파해 나가자는 의지를 대내외에 공표했다는 사실에 ‘역시 카이스트 학생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서남표 총장님의 거취가 결정되고나면 카이스트는 2011년의 잔인한 4월의 사태를 뒤로 하고 다시 이전의 카이스트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한차례 성장통을 앓고 난 뒤이므로 이전의 카이스트와는 다른 차원의 카이스트로 거듭날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또 바래본다. 류근철 박사님의 고귀한 뜻이 잊혀지지 않아야 하기에, 또 무엇보다도 카이스트는 대한민국의 소위 말하는 과학의 산실이자 요람이므로.



40년만에 비상학생총회를 가졌다는 카이스트 학생들을 떠올리며 지난 몇 년동안 수도 없이 비상학생총회를 가졌던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비교해보게 되었다. 한의대생들의 대부분의 모임이나 집회들은 대개 ‘한의사’라는 직능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약사들의 한약조제를 금지해달라, 미국FTA 협정체결에 따른 미국한의사들의 국내 진출을 막아달라, 뜸시술 자율화법안을 상정하지 못하게 해달라, 또 뭐가 있었더라? 앞으로도 빈약한 ‘국내 한의사’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투쟁거리들은 넘쳐나리라. 1993년 필자가 예과 1학년이었을 때 이른바 한약분쟁으로 수업 거부에 상경투쟁을 시작할 즈음, 한 나이지긋한 예비역 형님께서 이런 투쟁에 왜 학생들이 동원되어야 하느냐고 역정을 내셨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 그 투쟁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2011년 우리는 더 나은 한의사의 위치를 확보했는가? 그리고 그 때 그 투쟁에 학생들의 참여는 순수하고 정당했는가?

2011년 오늘이야말로 전국 11개 한의대와 1개의 한의전 학생들을 포함한 2만여명의 한의사들 모두는 비상총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다 진지하게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용어규정과 반성과 변화와 변신과 발전을 위한 범한의계의 지혜와 아이디어를 짜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바짝 가지게 된다.



외부의 압력과 지적에 의해 내 의지와 관계 없이 떠밀려가듯 치루게 되는 개혁은 늘 조급하고 깊이가 없게 마련이다.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성장통이라면 어차피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면 달게 받아들이자. 우리가 주저하고 있는 동안 한의과대학 학생들 스스로 이러한 개혁의 의지마저 포기해 버린다면 우리는 서서히 모두가 침몰하고야 마는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입장에서 한의대 교수들과 선배 한의사들에게 개혁 요구안을 낸다면 그 내용에는 뭐가 포함되어 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1)교수들은 제발 아는 것만 가르쳐라, 2)교수들은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해라(책 읽어주는 남자, 여자는 가라), 3)임상 교수들은 임상 실습을 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갖추고 준비해라(임상 교수님들 진료실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실습은 의미없다, 우리들은 실습다운 실습을 원한다), 4)교과서다운 교과서를 제공하라. 또 뭐가 있을까? 전국의 한의대생들과 한의전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라도 해볼 일이다.



우리는 카이스트 학생들처럼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배우고 가르친 적이 있었을까? 우리가 주변의 의료인들 혹은 무자격 침구사들을 포함한 비의료인들에게 한의사로서의 차별성을 과시하며 내뱉는 말은 “우리는 한의대 나온 사람들이다”, “한의대 커트라인이 얼마나 높았는지 아느냐?”, “00대 의대도 우리 밑이었다…” 라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랑질이었다. 그야말로 “SO WHAT?”이다. 커트라인이 높아서 어쨌다는 건가? 그런 학생들을 모아서 우리는 어떻게 교육했고 또, 어떤 한의사로 길러냈는가? 커트라인 그 자체보다도 한의과대학의 교육은 과연 경쟁력을 갖추었는가? 그 점을 따져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공고 출신이 들어오건 과학고 출신이 들어오건 카이스트라는 용광로는 그들에게 대한민국 과학영재들의 프라이드를 각인시켜 줄 정도의 치열함과 진지함을 안겨주었다. 물론 그 과도함이 잔인한 4월을 만들고야 말았지만 그 누구도 카이스트의 높은 연구성과와 면학 분위기를 거짓이라고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의 전쟁같은 삶이 부럽다고 한다면 이 또한 돌팔매질 당할 말이겠지만 그에 비하여 한의과대학은 너무 안일한 것 아닌가 하는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한의대생들이 방학 때마다 사비를 들여가며 사교육 임상특강과 한의원 견습과 도통한 도사 찾아나서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 한의과대학을 해부해보자. 환부는 과감하게 도려내자. 교육과정을 공개하자. 좋은 강의는 널리 알리자. 영 아닌 교과서는 이제는 버리고 가자. 좋은 교수는 널리 자랑하자. 한의대에서 뭘 제대로 배운 게 없다는 학생들의 허무개그는 이제 끝을 내자.

한의대와 한의전을 졸업만 해도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한의사들로 길러내자. 한의쉼터의 깊은 한숨은 거두어내자. 왜 류근철 박사님께서 한의계가 아닌 카이스트에 그 거액의 돈을 기부하셨는지 그 뜻을 되새겨보자. 한의사로서 그 거액을 버셨지만 결국 과학을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류근철 박사님을 기억하자.





전한련의 행림제가 몇해 전부터 시들해졌다고 한다. 발표할 논문이 없어서, 학생들의 참여율이 저조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의대생들의 기가 팍팍 꺾여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한의학이라는 바다에 빠져 한의사라는 비전없어 보이는 미래에 한숨짓는 전국의 한의학 청춘들이여.



비상총회든 새로운 행림제든 좋다. 우리 모두 단 한번이라도 뜨거운 함성, 불타는 정열로 카이스트의 자기반성을 벤치마킹해보자. 우리 모두 누구에게든 연탄재같은 뜨거운 존재일 수 있다. 우리는 한의학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함께 걷는 도반(道伴)들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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