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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최승훈 경희한의대 교수

최승훈 경희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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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통의학계 국제적인 표준전쟁에 접어들고 있다

ISO/TC249 2nd Plenary Meeting in The Hague - 3



이 회의 역시 전체회의의 축소판으로 중국과 그를 지원하는 노르웨이·스페인·캐나다 대표,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한국·일본·미국·독일 등 사이의 공방전이 치열하다. 중국측은 오래 전부터 WFCMS의 영어번역 표준용어를 ISO의 국제표준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절치부심 노력해 왔다. 그러나 국제표준이 되기 위한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 그러나 꼭 거쳐야 할 과정들을 피한 채 자기들의 입맛과 방식대로 작업을 해왔고, 또 그렇게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필자가 2007년 WHO근무 당시 북경의 WFCMS사무처를 방문하여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WHO의 IST와 중복되게 표준 경쟁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고, 먼저 출판된 IST를 그들이 인정하고 따르도록 협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멈추지 않고 수개월이 지나 자기들의 영어번역표준을 내놓았다. 그 때 WFCMS의 최고 실세로 전 국가중의약관리국 부국장을 지낸 리전지는 “비록 WHO가 조금 앞서 국제표준을 만들었지만, 국제 사회에서 표준에 관해서는 ISO가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WFCMS는 결국 ISO로 가져가겠다”는 말을 필자에게 한 적이 있다.



그것이 4년 전 북경에서 있었던 일이고, 그때의 목표를 실현시키고자 지금 그들은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간 WHO를 등지고 있었으며 결국 ISO로 가기 위한 길목에서 다시 WHO에 의해 덜미를 잡히고 있다. 3조에서의 치열한 논란 끝에 결국 그 제안은 WHO와 ISO/TC215와의 협력을 통해서 새롭게 수정 보완해서 NWIP를 다시 제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를 위한 Working Group(WG)을 만들기로 하였으며, 이번에 투표로 가는 것은 보류되었다.



그러면서 시간은 이미 분임토의에 주어진 1시간 반을 넘겼고, 나머지 중국측에서 제안했던 두 안건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 채 다음 기회로 미룬다는 결정을 하고 회의가 종료되었다. 결국 중국측에서 제안했던 세 개의 NWIP는 하나도 통과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분임토의가 예정시간에 밀려 끝나고 본 회의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리전지 WFCMS대표는 필자의 손을 꼭 잡으면서 “우리들은 오랜 친구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주 만나자”고 다짐하고 있다. 본 회의장에 도착하여 세 그룹에서의 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중국과 그에 대항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각 조에서 나온 결의안의 문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그 가운데 3조에 속해 열변을 토했던 중국 대표 루아이핑은 “3조의 회의는 실패로 끝났고, 그래서 좌장을 교체해야 하고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발언하였다. 그러나 바로 직전 미국대표가 필자에게 와서 앞으로 의료정보 분야의 의장(convener)을 맡을 것이냐고 조용히 물어와서 “그러겠노라”했던 터이다. 흥분한 중국대표의 발언에 대해 필자가 웃으면서 양보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고, 그러자 이어 미국대표가 필자가 같이 의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대부분의 대표들이 동의하여 필자는 중국대표와 함께 의료정보 분야의 공동의장으로 선임되었다. 실제로 각 조에서 만들어진 결의안이 이번 회의의 핵심이고 성과이기 때문에 각국은 그 결의안 문구를 놓고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 의장과 비서국은 각국 대표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였으며, 대신 중국은 이미지와 영향력에 있어서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그들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결국 여러 나라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엄연한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전통의학 분야에서는 당연히 자신들이 주도할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목소리를 높였고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의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의장의 직권으로 투표에 부친 결과, 놀랍게도 9:5로 중국측의 요구가 부결되었다.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이제 ISO는 서서히 중국의 주도 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총회를 통해 두드러진 변화는 일본의 침몰이다. 11명의 대표가 참석한 그들은 이번 회의에서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또 대표가 엉뚱한 돌출발언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ISO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비중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말았다. 이전의 일본측 대표였던 동경대 쓰다니 교수의 건강상 이유로의 퇴진, 그리고 작년에는 실질적으로 TC249의 부의장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도호쿠대학 세끼 교수의 쓰나미 후유증으로 인한 퇴진 등 리더십이 사라진 상황에서 일본측은 지금 세력의 심각한 약화를 겪고 있다.



이번 회의의 결과로서, 여섯 명의 WG 의장 가운데 세 명은 중국이, 두 명은 한국이,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독일이 차지한 것으로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차기 회의는 우리의 제안대로 내년 5월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모든 회의를 마치고 중국 대표 루아이핑, 국가중의약관리국의 주하이동 그리고 WFCMS의 왕퀘이에게 “오늘이 끝이 아니고 앞으로 전투적인 경쟁 모드에서 서로 협력하고 조화하는 관계로 나가자”면서 서로를 격려하였다.



간단한 점심 후에 주최측이 마련해준 시내의 소인국관광을 하였는데, 중국대표단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관광을 마친 다음, 일부 한국 대표들과 함께 이준 열사 기념관을 다시 방문하였다. 그 기념관에는 며칠 전 유럽을 순방 중인 박근혜 의원이 다녀갔고, KBS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56일간의 일정으로 과거 이준 열사(대한제국의 제1기 검사)의 행로를 그대로 거쳐온 젊은 후배 검사 2명과 제작진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백년 전 일본에 의해 늑탈당했던 우리의 국권을 회복하려 국제사회에 호소하였던 이준 열사 일행의 처절한 절규를 느낄 수 있다.





기념관을 돌아보는 동안 눈길을 끈 것은 당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이준 열사의 生死觀이다. “人死稱何死. 人生稱何生. 死而有不死. 生而有不生. 誤生不如死. 善死還永生. 生死皆在我. 須勉知死生.”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백년이 지난 지금 헤이그에서 우리는 그분을 기리면서 이제는 그 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백년 전의 원수였던 일본이 퇴조하고 오히려 그들과 공조하고 있음에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이번 총회가 필자에게는 올해의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국제회의였고, 정말 부담스러운 회의였다. 회의에 참가하는 동안 중국측과 사무국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를 겪어야 하는 것도 괴롭고, 오랜 친구들끼리 서로 자국의 이익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사흘을 어떻게 참아내나? 그러다가 일본의 쓰다니 교수처럼 회의하다 중국 대표와 격돌하여 고혈압으로 물러나는 것은 아닐까? 서울에서 공항 가는 길에 정채빈 이사에게 혹시 청심환 가지고 왔느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매일 새벽이면 잠이 안 오고 당일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와 발표슬라이드 준비 등으로 매 순간 긴장하였지만, 그래도 하나 하나 차근차근 겸손하게 헤쳐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였던 것이 주효하였다. 다시 한번 더 老子의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을 실감한다.



이제 TC249는 갓난 아이에서 걸음마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다. 의장과 비서국이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가고, 명분과 자존심에 얽매어 명칭에 대한 샅바싸움에 정신 없었던 시기를 지나 실질적인 내용을 논의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넓은 마음과 먼 시야로 우리의 전통의학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각국은 투명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협력 경쟁하여야 한다. 이번 헤이그 총회는 그 가능성을 조금 보여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회의의 참담한 결과를 놓고 중국측은 절치부심하고 이후를 대비할 것이다. 이미 중국은 NWIP 후보 70개를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는 처음이라 5개만 내놓은 것이라고 루아이핑은 공언하였다. 그렇다면 중국이 제안한 NWIP가 앞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우리 대표단이 여유롭게 헤이그 유일의 한국식당인 서울가든에서 저녁식사를 즐기는 동안, 그는 의장, 비서국, 그리고 각국의 대표들에게 짤막하게 우호친선의 메일을 보냈다. 필자는 바로 답장하였다. “우리들은 아직 과정, 배우는 과정에 있노라고, 그리고 자주 연락하자”고.



바야흐로 우리 전통의학계도 국제적으로 표준 전쟁에 접어들고 있다. 오랫동안 외쳐 왔던 한의학의 세계화는 바로 이 국제표준의 성적으로 판가름나게 되어 있다. 즉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는 얼마나 많은 국제표준을 한국이 가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이제는 더 이상 구호로만은 안 된다. 지금 전통의학의 국제표준은 침구와 한약 그리고 정보 분야 등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능력과 사명감을 가진 한의계의 젊은 인재들이 이 대열에 더욱 많이 참여하여야만 한다. ISO의 다른 위원회 전문가들도 TC249의 행보에 대해 우려를 할 정도로 이번 총회는 매우 걱정스럽고 부담이 가는 행사였다. 그러나 학계를 비롯한 연구 분야 종사자, 정부 관계자와 산업계 대표 등 다양한 구성으로 한 팀을 이룬 우리 대표단은 각자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유기적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오늘의 기쁨을 계속 가져가기 위해서는 바로 냉정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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