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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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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 249(국제표준화기구 249 기술위원회)’라는 게 있다. 2009년 중국 주도로 ISO(국제표준화기구) 내에 만들어진 세계 전통의학 분야 표준화 위원회다. 우리나라의 한의학을 포함하는 세계 전통의학 분야 국제표준 제정을 위한 다자간 모임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31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통의학 분야 국제표준은 이 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지난달 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총회에서는 당혹스런 일을 겪었다. 각국이 자국의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내세우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현장에서 뜻밖의 발표가 시작됐다.



중국 대표가 ‘장백산(백두산의 중국명)인삼’의 ‘연고’를 내세워 인삼종자와 파종 방법에 대해 자국의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제정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당연히 필자를 포함한 한국 대표단은 술렁거렸다. 중국이 인삼종자 국제표준을 제안한 것은 인삼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기득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코리아 진생(高麗人蔘)’ 기득권 무너질 수도



중국은 치밀했다. 자국 인삼 표준의 국제표준 선점을 위해 이미 자국 인삼에 대한 국가표준을 만들었다. 중국이 제안한 인삼종자와 파종 방법의 국제표준안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되면 우리나라의 인삼산업에 큰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인삼제품은 지금까지 ‘코리아 진생(高麗人蔘)’이라는 브랜드 가치로 중국인삼보다 월등한 가격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런 기득권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제안에서 고려인삼의 기득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각국의 반응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많은 국가들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인삼종자와 파종방법이 중국의 의도대로 국제표준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우리에게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중의학 표준화로 세계 전통의학 시장 장악



중국의 전통의학에 대한 표준화 전략은 이처럼 치밀하다. 중국은 자국의 전통의학인 중의학을 세계 전통의학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ISO내에 TC 249를 주도적으로 설립해 대표격인 간사국을 맡고 있으며 TC 249의 명칭 자체를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중의학)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한의학이 중의학으로 불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독일과 베트남, 몽골 등 여러 국가가 연합해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사회주의국가의 장점을 살려 2008년 한해에만 20여개의 자국내 국가표준을 제정해 국제표준을 대비하고 있으며 전 세계 화교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침구학회연합회(WFAS)나 세계중의약학회연합회(WFCMS) 등의 친 중국 성향의 전통의학 조직을 통해 TC 249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이 이처럼 자국의 전통의학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내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전통의학 시장에서의 주도권이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 전통의학 시장은 2000억달러를 상회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인구의 75%가 최소 한차례 이상 전통의학 치료를 받았고 독일은 통증클리닉의 77%에서 침 치료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떠오르는 전통의학 시장에서 진단과 처방, 용어, 심지어 교육시스템까지 중의학 체계를 국제표준으로 내세워 전 세계 전통의학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다.



한의학 표준화 범 정부 컨트롤타워 설치 필요



그러면 한국은 이대로 중의학 체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은 2009년 동의보감이 의학서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되는 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09년에는 기술표준원이 친 서민 생활표준 1250 계획안에 한방용 뜸 표준안을 포함했으며 1회용 호침의 국가표준을 제정하고 한국한의학연구원 주도로 침 국제표준을 위한 포럼 사업을 벌이는 등 국제협력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ISO TC 249 회의는 내년 5월 우리나라에서 3차 총회를 갖는다. 중국의 인삼종자가 국제표준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표준이 확정되면 도리없이 따라야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룰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한의계가 나서 착실히 준비하자. 우리나라가 표준전쟁에서의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생산, 유통, R&D, 의료서비스 등이 따로 떨어져 정부 각 부처에서 다루고 있는 활동들을 한 곳에 모아야 경쟁력이 생긴다. 이번 기회에 한의학 표준화를 위한 범 정부 컨트롤타워를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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