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상·기초 소통 활성화 해야
K원장! 잘 지내지? 공개편지만 아니면 대학시절처럼 그냥 이름을 불러 보고 싶네!
졸업 20주년 행사 준비하면서 동기들에게 전화를 하고 그 기억만으로 자주 연락한 것 같은 착각을 한지 벌써 4년이 다 되었네. 서울 행사장에서 본 뒤로 벼르기만 하면서 연락도 제대로 못한 지 몇 년이 되었고, 벌써 내년이면 졸업 25주년이 되네.
I형님을 통해 애들 교육 때문에 외국에도 갔었다는 소식 들었다네. 동기 중에 가장 일찍 결혼한 K형님은 아들이 취직해 조만간 잔치를 하면 같이 볼 것 같다는 소식도 들리네. 대부분의 동기들은 대학생의 학부모가 되었는데, K원장과 나는 조교생활을 하느라 결혼이 늦어져서 애들이 다소 늦지? 어머님께서도 건강하신지, 요즈음도 영주 고향에서 지내시는지 궁금하네.
대학시절 늘 조용하면서 묵묵히 공부를 하고,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 자네는 웃음이 일품이었지. 빙긋이 조용하게 웃던 그 웃음은 여전하겠지? 모든 과목에 성적이 뛰어났고 얼마나 답안지가 완벽하였으면 결혼식 주례사를 하시던 은사께서 신랑 소개를 하면서 칭찬을 하셨을까? 자네 같은 사람이 대학에 남아 있었다면 금원사대가처럼 일가를 이루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네. 이런 얘기를 하면 늘 빙긋이 웃었는데, 아마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웃음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렇지? ^^
돈도 명예도 아닌 무슨 인연으로 조교를 함께 시작하였지?
학창시절 현곡 윤길영 선생님댁에 인사갔었던 겨울 방학 때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던 그 시절이 기억나는가? I형님은 예과시절부터 현곡 선생님의 원고 정리를 하면서 공부를 하였고 자네를 비롯한 몇몇 동기와 후배들이 공부를 하였었지? 나는 그때만 하여도 생리학에 관심도 없었는데, 본과 1학년 때 학생회를 하면서 수업거부 사태가 계기가 되어서 생리학 강의 준비를 도와드리면서 교재를 만들게 되었지. 그 무렵 병리학 교재를 만드시는 교수님께 자네를 소개하여 학년이 올라가면서도 계속 작업을 하면서 동기들 사이에 ‘권생리’, ‘K병리’가 되어 버렸지? 지금 생각하면 선택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이 인생의 흐름이 되었고, 벗어나려는 의지도 있었지만 큰 흐름에 맡겨진 채로 벌써 25년이 다 되어가네.
요즈음 나는 MRC(Medical Research Center)사업 준비로 정신이 없다네. 기초의학에 남는 의사 출신들이 멸종(?) 위기라서 정부에서 연구비와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점점 사람을 키우는 것은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네.
간혹 학생들이 기초의학 전공교수가 되고 싶어 상담을 오면, 늘 4학년 국가시험 치고도 마음이 변치 않으면 그때 보자고 얘기한다네. 그때 상담을 오더라도, 장남이나 장녀인지, 부모님이 고향에 따로 사는지, 동기들과 비교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결혼할 배우자도 동의하는지 등 학문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엉뚱한 조건만 점검하게 된다네.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교수 T/O가 언제 배정될지, 기존 교수들의 선입견은 없는지, 교실간에 갈등은 없는지 별의별 변수를 다 생각하다 보면 한의사 출신 기초교수 양성은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네.
더구나 사립대학에서는 교수인건비 부담을 덜려고 개원하고 있는 개업의를 기초과목에 출강시키고 그를 핑계로 전임교수를 채용하지 않는 악순환의 상황에서 다른 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네. 이제 내 나이도 50이고 우리 부산대 한의전의 1기생들이 내년이면 졸업하는데, 이들 중 한명이라도 교수로 양성하려면 빨라도 5~6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 걱정이 많다네. 기초이론에 대한 고전 연구도 능통하면서 최신 연구기법도 익혀야 하는 미래를 생각하면 과연 대를 이을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있다네.
대학뿐만 아니라 한국한의학연구원에도 한의사 출신 연구원을 채용하지 못해 답답해한다니, 여전히 개원의가 좋긴 좋은가 봐.
한번씩 K원장을 생각하면 그 시절 시국데모가 많아서 자주 불렀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처럼 대학에 남아 함께 노년의 학자로 남자던 그 맹세는 독백이 될 것 같아 씁쓸하다네.
그래도 조교시절에 봄·가을 중간고사 무렵 조교단합대회를 하거나 학생들 MT지도 하러 동행하였던 추억이나, 후배들과 함께 올랐던 지리산의 가을단풍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후배들 때문에 대학의 비리에 울분을 터뜨리며 밤늦도록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던 그 시절은 함께이었기에 외롭지 않았다네. 매주 원전·생리·병리·약리·본초 전공 조교들이 함께 고전을 강독하고, 후배조교들을 위해 장학금도 전하던 시절에는 따뜻한 정이 넘쳤었지? 요즘도 우리 모르는 곳에서 그런 정이 흐르는지 모르겠네.
참! 지난번 졸업 20주년 때 학생회 간부들에게 릴레이 장학금을 전하였는데, 지난 달 그때 그 학생들이 공중보건의 월급을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다시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이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역시나 우리가 뿌린 정이 끊이질 않는 것 같아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워 뿌듯하였다네.
개원의의 길에서는 무엇으로 기운을 얻는가?
현역처럼 젊고 똑똑하였던 누님이 몇 년 전 한의원을 접고 그냥 지내시기에 왜 그만 두셨냐고 이유를 물으니 치료가 되더라도 그 효과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안되는 답답함 때문이라고해 황망하였다네.
부모님께서 자식 결혼할 때까지 원장 직함이라도 유지하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낚시업이 더 재미있고 수익성도 뛰어나 아예 사장으로 변신한 창원의 K원장은 적성에 맞는 전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네.
K원장! 자네는 개원의로서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무엇으로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다른 전공에 비하여 정년이 없는 직업의 장점, 환자가 제대로 치료되었다고 감사해 하는 인사, 진단가설에 정확한 처방으로 의도한 치료경과를 확인할 때, 짐작이 되지 않는 다른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네. 내가 가지 않은 그 길에서는 어디서 어떻게 힘을 얻고 있는지 궁금하다네.
기억나는가? 우리가 첫 발령받았던 날짜가 공교롭게도 5월15일 스승의 날이고, 그날도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학교가 텅 비었던 그날. 강의시간에 스승의 날 선물에 뒤늦게 감사를 하면서 늘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미안함만 더해 가는데, 그래도 힘들 때 학생들이 고맙다고 써준 편지글을 읽으면 가장 힘을 얻게 된다고 이야기 하였는데, 열정이 약해지는 요즈음 자네는 어디서 힘을 얻는지 진짜 궁금하다네.
어제 우리 부산대 한의전의 젊은 후배교수들을 다독이느라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자네 생각을 하였다네. 뜻이 있고 의욕이 있는 젊은 교수들이 지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다들 대학별 출신에 따른 경험이 다르고 대학별 선후배가 아니기에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지 못하고 조심을 하다 보니 서로가 실망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초창기 우리 대학시절이 생각났다네.
젊고 의욕이 넘쳤던 그러면서도 능력이 있는 교수님들께서 한분 두분 떠나시는 상황에 마음 달랠 곳도 없었고 대학에 실망하였는데, 그 상황이 모래를 치는 채 위에 돌만 남은 것과 같다는 비유를 하면서, 돌만 남는 대학이 되지 않도록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달래면서 10년이나 20년 뒤에 그 분야의 최고교수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조급해 하지 마라는 조언이 아닌 부탁을 하였다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득하다네.
정상에서 만나듯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한의학의 과목을 양방과 똑같이 생리학·병리학으로 만들어서 혼란을 주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네. 그 뿐만 아니라 본초학과 방제학의 구분이 과연 바람직한지, 경혈학과 침구학은 과연 따로 교육해야 하는지 등 교육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해결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한 만큼이나 책임감에 짓눌린다네.
임상과 이론의 연결고리가 없거나, 교과서적인 진료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진료환경에 맞추어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기초와 임상의 구분마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예전에 비하여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언젠가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라고 자위한다네.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우리 부산대 한의전 1기생을 대상으로 처음 임상실기시험을 치르게 된다네. 다양한 질환모델의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하는 상황과 똑같이 설정해 실습시험을 치르고, 각종 시술을 순서와 지침에 맞게 제대로 구현하는지 평가하게 된다네. 임상실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흰색 가운 입고 실습책을 끼고 멀뚱히 서있기만 하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네. 언젠가는 기초에서 임상으로 연결시키거나 임상에서 이론을 도출하여 자네와 내가 함께 만나 소통하게 되는 날도 오겠지?
그렇게 만나게 되는 날을 기다리네. 아마 자네가 임상에서 이론을 도출하여 나에게 연락하게 되겠지? ^^
젊은 날을 추억하며 양산캠퍼스 연구실에서 조교를 함께 한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