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리했다구요, 자만과 방심은 금물입니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연전연승하고 있다. 특히 상대직능단체의 집요한 압박과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대통령한의주치의 임명에 성공했고, 양의사의 침술행위와 관련된 IMS 대법 판결에서도 승소했다. 여기에 더해 한의약육성법 개정이라는 쾌거도 올렸다. 그러나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치는 흐름은 호사다마(好事多魔)와 새옹지마(塞翁之馬),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반복된다. 궂은 날은 갠 날을 기대하고, 갠 날은 궂은 날을 대비하여야 한다. 여기 국내 스포츠계의 전대미문의 기록을 갖고 있는 184연승의 신화, 이창호 전 여자국가대표 배구감독(전 한의협 수석부회장)을 만나 연승 실패 뒤 다시 연승을 이끌었던 그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 한의협 집행부의 나날도 그때의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정말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연속이었다. 목표인 200승을 향해 정말 열심히 가자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너무 커 빨리 이 연승의 기록이 깨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1969년 국세청으로 시작, 대농-미도파로 이어지는 배구팀 감독과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이창호 전 한의협 수석부회장(70·경희대 한의대 13기·경기도한의사회 명예회장). 그는 무려 16년간 배구 전장(戰場)을 누빈 명장(名將)이다.
그는 당시 여자배구 미도파팀을 이끌고 국내 최다 연승기록인 184연승을 일궜다. 1984년 LA올림픽 4위, 1990년 베이징아시아게임 준우승도 그가 일군 값진 승리의 기록이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1985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 남녀종별배구대회에서 약체로 분류됐던 선경배구팀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패하며 미도파의 연승기록은 멈추고 만다.
“자만했고, 방심했다. 또 연승에 대한 조바심과 스트레스도 너무 심했었다. 당일 경기에 앞서 팀의 주공격수인 김화복 선수가 발을 접질러 다쳤다. 이 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 졌고, 선수들에게 화를 내는 등 경기에 차분히 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잡지 못했다. 그 결과 참담한 결과를 받아 들여야만 했다.”
이익단체인 한의협의 회무나 반드시 승리를 목적으로 전투에 나서야 하는 스포츠팀이나 공히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라는 이 전 수석. “결코 승리에 도취해선 안된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항상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다잡아야 한다. 긴장을 늦출 때 화(禍)는 다가온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은 칭찬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한의협 현 집행부가 이룩한 여러 가지 업적들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하다. 집행부의 희생정신과 회원들의 공감대가 어우러져 많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분명 한의학을 도약시키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전 수석이 한의원을 운영한 것은 3년에 불과하다. 한의대 졸업 이후 마포구 서교동에 개원했던 삼진한의원이 그것이다. 이후 그는 서울시회와 중앙회 수석부회장 역임 외 배구계의 전설적인 스타 감독으로, 정당 자문위원, 제16대 대선 대통령후보 체육특보, 배구협회 상임 부회장, 나라사랑 새정신 운동본부 공동상임대표, 민주평통자문회의 성남시협의회 부회장, 법무부범죄예방 분당지역협의회 감사 등 활발한 사회참여 활동을 펼쳐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의계에 대한 외부인사들의 인식을 솔직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한의학은 우리 고유의 전통의학이자 문화유산이라는 친근감이 많다. 그러나 한의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들이 한의학을 특징짓는 것은 대개가 세 가지다. 첫째, 중장년층 이상의 의료다. 둘째, 한의는 보약이다. 셋째 한약은 고가(高價)라는 지적이다. 물론 한의학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이같이 지적하는 것도 있지만 어찌보면 이것이 일반인들의 솔직한 시각일 수도 있다.”
일반인들의 인식을 아니라고 부정하기보단 그 같은 시각에 맞춰 개선하고 보완할 것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 전 수석.
“젊은 층을 어떻게 한방의료 영역으로 흡수할 것인지, 한약은 보약이라는 등식을 깰 방법은 무엇이며, 왜 한약은 비싸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접근 방법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 전 수석은 또 한방의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각종 경기단체의 팀닥터로 활동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운동선수들은 한방의료를 매우 선호한다. 하지만 상당수 경기단체의 팀닥터는 양의사 내지 물리치료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무모하고,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 각 한의원별로 경기단체에 적극 접근해 의료봉사도 하고, 운동선수 1명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져 잘 치료하면 한의사 팀닥터의 필요성이 입소문으로 퍼져 나갈 수밖에 없다.”
정공법과 함께 게릴라 전법도 함께 구사하라는 강조였다. 그 실예로 차상현 원장(74·부산 서구 축복한의원)을 들었다. “차 선배께서는 무조건 침통을 들고 전국의 씨름판을 돌며 선수들의 부상 치료에 나섰다. 그 결과 씨름협회의 팀닥터하면 씨름인 모두가 차 선배를 꼽았다.”
또한 이 전 수석은 한의학 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옛날의 허준 드라마와 같은 히트작품이 또 다시 나올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하고, 스타 한의사를 발굴·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자신은 비록 현재 진료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몸 속의 피는 온전히 한의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의학의 희망을 곳곳에 전파하는 ‘한의학 전도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