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의 문화적 가치를 높인 醫家家門들
근현대를 수놓은 한의사 가문들
한의학의 강점은 마음으로부터 전해오는 문화적 공감대에 있다. 필자는 주변에서 한의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의학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들은 한의학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비싼 의료비, 한약에 대한 안전성, 치료에 대한 신뢰도 등 각종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한의학이 우리 민족의 저변 정서를 대변하는 학문이라는 데에는 이론을 달지 않는다.
이러한 잠재적 한의학 애호 집단들은 일년에 한번도 한의원에 가지는 않지만 자신이 사상체질상 무슨 체질에 속하는지, 평소에 건강 관리를 위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동의보감』은 어떤 책인지 등 한의학에 대한 사회적 이야기들에는 깊은 관심을 표명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한의학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저력은 집안 대대로 한의사 집안을 이어온 가문들 속에서 발견된다. 필자는 수년동안 근현대 한의학을 정리하면서 대대로 한의업을 가업으로 이어온 한의사 가문들과 만났다.
한의사 가문으로 근현대를 장식한 유명 집안은 춘원당 가문이다. 이 가문은 1847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7대를 이어오고 있다(현재 아들이 한의대에 재학 중이므로 실제로는 8대이다). 윤상신(尹尙信·1792〜1879)에 의해 이 가문은 처음 건립된 후 2대 윤빙열, 3대 윤기찬(尹基燦·1848〜1912), 4대 윤단덕(尹 德·1862〜1915)으로 이어졌고, 5대 윤종흠·6대 윤용희(1931〜1968)로 이어져 현재 윤영석(尹永錫) 박사가 7대로 활동 중이다.
구한말 춘천에서 활동한 孫師濬도 三世醫家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이르러 원근의 병자들이 매일 모여들었으니 화천산중에 개업하지 않다가 그만두고 병원을 춘천부에 세우고 한약 83종을 발명하여 강원도 경무부에서 인가를 받았다. 田光玉(1871〜1945)과 田錫鵬(1911〜1993) 父子의 대를 이은 한의학 사랑은 유명하다.
전광옥은 동제의학교 도교수로 선발된 이후로 일제시대 전 시기를 통해 한의학 교육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습을 실시한 한의사이며, 전석붕은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면서 대민진료에 임하였고 경기도한의사회의 회장과 중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의사회의 조직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한의학을 전업으로 하는 한의사 집안에서 가전으로 내려온 경험방을 정리한 『洪家定診秘傳』은 洪淳昇(1889〜1961)의 역작이며 현재에도 후손인 홍학기 등이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三省家誡』라는 문집으로 한의사 가문의 정신적 중심을 잡은 權五震(1899〜1968)은 권경호, 권택현으로 이어지는 삼성한의원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漢方臨床四十年』이라는 저술로 유명한 朴炳昆(1912〜1989)은 이 책의 저술 목적을 “환갑기념과 아울러 한의사인 二男 京均에게 전승의 多目的으로 보잘 것 없는 이 책자 『漢方臨床四十年』을 세상에 반포하려고 上梓를 단행하기로 하였다”고 하듯이 아들 박경균에게 학문을 전승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醫家家門 出身인 金基澤(1909〜1976)은 할아버지 龜洛, 외숙 趙寬河 등이 명의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다.
그의 제자 趙世衡(1926〜2004)은 특히 金基澤의 학문을 그대로 계승한 인물로서 고금의학회라는 모임을 통해 『後世處方學』이라는 제목으로 스승의 학술사상을 후대에 전하였다. 조세형의 가문은 아들 조성태(본디올 아카데미 한의원장), 손녀 조윤희(경희대 한의대 재학) 3대 한의사로 이어가고 있다.
『方藥指鍼』의 저자 孟華燮(1915〜2002)의 삼남(三男) 맹웅재(孟雄在)는 현재 원광대 한의대 교수,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손자인 맹원모와 손녀의 남편(孫壻) 강신흥은 현재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동양철학과 상한론 연구에 조예가 깊은 蔡仁植(1908〜1990)은 蔡炳允(전 경희대 교수)에 전승되었다. 또한 經絡과 약물을 類聚한 한의학자인 李龍城(1901〜1989)의 차남 李珩贊, 삼남 李珩九(전 경희대 교수), 손자 이성환, 장손 李俊茂 등이 유명한 한의사 집안을 이루었다.
<- 홍가정진비전으로 한의사 집안의 가풍을 세운 홍순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