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에 파묻힌 李相漸의 『한의학용어사전』
한달 전에 단골 헌책방에 들렸을 때 책방주인이 필자를 위해 한 덩어리의 근현대 한의학 관련 서적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李相漸 교수의 『한의학용어사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전은 100여쪽에 달한다. 1974년 1월20일자로 杏林書院에서 출간된 이 사전의 머리말에서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감회를 밝혔다.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수천년 전부터 고유한 민족문화와 더불어 선조들의 경험의학지식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성에 비추어 볼 때 그 원서가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용어의 해석이 까다롭기에 읽고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므로 저자도 이 점에 대하여 공감을 느끼면서 한의학의 병명 및 용어 해석을 1972년 5월1일에 초판을 간행하였고 이번에는 개정 증보판으로 한의학용어사전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자에 수록된 용어는 동의보감, 상한론, 방약합편, 내경, 의학입문 등을 위시하여 수권의 한의서를 바탕으로 하고 가나다라의 순서로 엮었다. 그러므로 한의학에 관한 초보자나 한의학도들에게 참으로 보기 쉽고 편리하게 저술되어 있다. 이 책자가 한의학을 현대화로 발전시키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준다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겠다. 용어의 해석이 불충분하게 된 점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오니 강호제언의 이해와 지도편달이 있기를 바란다.”
李相漸(1931〜1983)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한 함경도 흥남 출신의 한의학자였다. 그의 저술로 『한방안이비인후과학』, 『한방약물학』, 『한의학용어사전』, 『신경통의 한방요법』, 『한의학개론』, 『한방신경정신과학』, 『한방처방해설과 응용의 묘결』, 『최신한방약물학』 등이 있는데, 이것은 그가 多作을 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점 교수의 용어집은 몇가지 면에서 돋보인다.
첫째, 가나다 순으로 한의학용어를 정리하는 先河를 열었다. 이 사전은 가나다 순으로 한의학용어를 사전식으로 정리한 초창기 저작에 속한다. 보다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면 밝혀질 일이지만 이 시기까지 용어에 대한 정리가 그다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돌아볼 때 이 저작은 활용도 면에 중요한 목표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그는 가나다 순의 편집을 선택하였다.
둘째, 용어의 바탕이 한국의 한의학에 있다는 점이다. 이 저작에 나오는 용어들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동의보감』, 『방약합편』, 『의학입문』, 『황제내경』 등 한국의 한의사들이 많이 읽었던 의서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전을 보노라면 친숙한 느낌이 들게 된다.
셋째, 용어 설명에 서양의학 용어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음호산(陰狐疝)’을 ‘鼠蹊헤루니아’라고 설명한 것이나 ‘음(陰)’을 ‘광범위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인체에 국한된 陰의 뜻은 寒冷, 血液, 내분비 홀몬, 水分, 骨, 筋, 體內部(裏), 臟腑, 左腎 등을 지칭하는 代名詞’라고 설명한 것이 그러한 것들이다.
넷째, 단순한 용어 설명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학리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풍상위(風傷衛)’의 경우 ‘風氣는 주로 봄철에 많이 발생된다. 그 이유는 肝屬木, 木屬春, 春屬風이기 때문이다. 봄철에 溫暖하여야 될 氣候가 不順하여 體表의 理의 機能이 弱하므로서 體溫調節障碍가 생기면서 發病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傷寒論에서는 太陽經의 傷風證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용어사전은 발간 후에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역사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필자는 이상점 교수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 1974년 이상점 교수가 출판한 한의학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