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療人治世 療世治人
“안풍”이라는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한바탕 소동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거대한 흐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청춘콘서트를 열게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 의사 안철수와 의사 박경철은 늘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고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대답해왔다.
내가 이 두 분을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 안철수, 경제전문가 박경철이 아닌 의사 안철수, 의사 박경철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이들의 <청춘콘서트>가 내 눈에는 2011년의 한국 사회를 치료하고 위로해주고 싶었던 큰 의사로서의 그 두 사람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의사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고 의업과 관련없는 다른 전문 분야에 대중이 인정한 “권위”라고 하는 면허증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전국을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라고 하는 쇼(SHOW)를 벌였을까? 그 진의를 100% 파악할 수는 없다. 정치성향을 띄었느냐 순수한 의도였느냐 하는 등의 평가는 호사가들에 따라 엇갈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안풍” 사건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배려와 위로”라고 하는 진정성에 대중들이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추석에도 전국의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홍삼이 팔려나갔을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고르러 갔던 내 눈에도 홍삼은 퍽 그럴듯해 보였다. 가격도, 무게감도, 생명력을 간직한 듯한 붉은 빛깔도, “면역력”으로 대표되는 홍삼의 TV 광고 이미지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최근 홍삼 자체의 부작용 혹은 장기복용의 문제점에 대한 많은 보도가 있었다. 홍삼도 약일진대, 모든 사람들에게 부작용이 없고 또한 장기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속설은 어쩌다가 전설이 되어버렸을까? 한의계에서는 홍삼의 부작용이 인삼만큼 강하다며 체질에 따라 가려 먹어야 한다고 당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 진정성 담긴 충고가 잘 먹혀들면 좋으련만 대중들은 여전히 눈을 빼꼼히 뜨고 “보약”이라고 하는 밥그릇을 가로챈 홍삼업체가 얄미워서 이제 와서야 부작용 운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부작용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도 있지만 홍삼 업체들의 반발이 예상했던 것보다 거세다.
이 홍삼에 관련된 언론보도 행태와 관련하여 한의사들이 욕을 덜 먹으려면 위에서 언급한 안철수-박경철의 “배려와 위로” 코드를 한 번 대입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진정성이 없는 행동, 가슴과 따로 노는 언어는 대중들의 배신과 비판으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60%에 육박하는 홍삼시장을 생각할 때 "홍삼은 나빠요, 부작용이 많아요, 함부로 먹지 말아요“ 라고 하는 부정적인 문구만을 대거 삽입한 광고를 지속적으로 퍼붓는다면 홍삼업체 혹은 민심을 되려 자극하여 그들의 화남이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우리의 심장부를 찌를 지도 모른다. 대신 ”홍삼도 인삼입니다. 한의사의 처방으로 보다 안전하게 복용하세요“ 혹은 ”홍삼의 전문가, 한의사가 있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한의사의 진단과 함께하는 홍삼처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본다면 어떨까? 잘못된 홍삼 복용으로 쓸 데 없는 고생을 하고 있을 많은 국민들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한의사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진심이라면, 그 진심은 진실이 되어 잘 전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경쟁업체간의 서로 물고 물리는 물어뜯기 공방전이라면 이미 날은 새 버린 셈이다. 저급한 마케팅으로 이미 진흙탕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홍삼업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이 한의사들에게 있는지 또한 우리는 진정성을 지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 보아야 한다.
15년 전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과 교수로 근무를 시작하신 이래 필자와 15년째 사제지간의 귀한 인연을 맺고 계신 조명래 교수님(현 대한침구학회장, 동신대학교 목동한방병원 침구과 교수)을 찾아 뵙게 되었다. 몇주 전 <한의신문> 지면을 통해 성균관대 법학과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는 소식도 접했기에 겸사겸사 진료실로 들러 축하인사를 건넸더니 교수님께서 학위 논문 앞장에 “療人治世 療世治人” 여덟글자를 써 주신다.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도 세상을 치료하는 것이라 의미가 있고 세상을 치료하는 일도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시며 세상을 치료하는 “사회의학”에 대한 교수님의 오랜 철학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아울러 들려 주셨다.
면허를 취득하고 인턴시절부터 헤아려보면 필자가 임상 한의사로 생활한 지도 벌써 12년째 이다. 환자 한분한분께 최선을 다하려고 해도 가끔 내 스스로가 작아지고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 초라한 순간도 있었다. 이 사람을 잘 치료함으로써 이 사람이 속해있는 작은 사회가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대해석은 감히 하질 못했다. 그냥 나를 힘들게 하는, 내 앞에 있는 한 명의 환자가 무척 버겁게 느껴질 때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마음을 다잡았던 순간도 많았다.
조명래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내 진료실에서 환자 한분한분을 대할 때 주문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나를 만나게 되기까지는 많은 인연의 고리들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온 사람도 많고 한방치료에 대한 필요성으로 병원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우리 병원에 들른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 사람이 아프게 되기까지 여러 사회적, 개인적 여건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을 치료함으로써 이 사람이 속해있는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룩한 미션을 내게 주어봐야 겠다. 그렇다면 상담하는 말 한마디, 환자를 다루는 손길, 침 끝에 보다 정성이 더해질 것만 같다. 그리고 치료도 훨씬 더 잘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세상의 모든 임상의들이 얼마나 귀한 일을 하고 있나 싶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교수님의 “사회의학”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다시 안철수-박경철의 <청춘콘서트>를 떠올려야 했다. 따라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나름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떠올려지는 <청춘콘서트>이다. 의사들이 뭉쳐 이 세상을 움직거리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부러움과 존경심이 치밀어 오른다.
요즘 주변을 돌아다보면 한의사 선후배들 중에 능력이 출중한 분들이 한두분이 아니다. 각자의 개인기와 개성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한의원이든 개인 이름을 내건 한의원이든 정말 열심히들 사신다. 끝도 없이 공부를 하러 다니시고 국내도 모라자 중국으로 미국으로 학회도 세미나도 정말 열심히들이다. 이 공부들의 종국적 목표는 무엇인가.. 하고 살펴보면 결국은 환자이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보다 실력을 갖춘 원장이 되어보고자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공부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療人”에만 올인하느라 “治世”는 꿈도 못 꾸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신 것 같다. 환자들 생각도 좋지만, 이제 우리도 눈을 좀 더 크게 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봉직의 생활만 해 온 나는 드넓은 야생의 들판에 서 계신 개원가의 원장님들의 경지와 감히 비교조차 당할 수 없는 변변치 못한 존재이다. 대신 그들에게 간절한 바램을 드려보고 싶다. 더 큰 세상을 호령하고 계시는 한의사 선배님들께서 이제는 “治世療世“ 하시는 일들을 좀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 의사 안철수나 의사 박경철이 아니라도 좋다. 한의사로서 할 수 있는 세상 치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통큰 선배들이 바로 설 때라야 후배들도 정신 차리고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의 외연은 같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안철수 바람에 대하여 많은 평론가들이 “올 게 왔다” 라고 논평하였다. 여야정쟁에 지친 민심이 새로운 바람을 갈망하였고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한 야생 실력을 직접 평가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한의계를 향해 불어닥칠 바람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수천년의 역사를 운운해도 수백편의 논문을 인용해도 애매모호함으로 질질끄는 세월탕 권법의 수준이라면 앞으로는 어느 한 순간도 버텨낼 수가 없을 것이다. 2011년이 가기 전에 한국한의계의 좌표를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필요없는 것은 싹뚝 잘라내야 한다. 대신, 필요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잘 다듬고 포장해야 한다.
안철수 바람에 여야가 맥을 못 추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바람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분명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는 바깥에서 불어닥친 미풍에도 한의계는 휘둘릴 것이다. 긍정의 바람을 주도할 만한 아이템을 정하고 治世療世할 수 있는 배짱도 좀 키우자.
그렇게 선배들의 자양분을 잘 먹고 자란 한 명의 올바른 한의사는 수천명의 환자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미칠 수 있다. 그런 토대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한의계에도 안철수와 박경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조명래 교수님의 법학박사 학위취득을 축하드리며 ‘療人治世 療世治人’ 여덟글자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