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원식 교수님과의 추억
필자의 근현대 관련 자료 수집과 정리의 기억들
근현대 시기의 한의학 관련 자료를 수집한 것은 필자의 단순한 취미생활이었다. 근현대에 대한 충분한 학자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기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헌책방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던 한의학 서적들은 낡아빠진 옛 추억을 일깨우는 감추고 싶은 과거 사진처럼 느껴지곤 했다. 길어봐야 3, 40년 된 이런 자료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 이렇게 되묻곤 했었다.
그러나 헌책방 귀퉁이에 처박혀 있는 몇 쪽 안 되는 자료들 속에서도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내다 버린 자료들이었을 것이다. 몇십 년밖에 안 된 자료들이 낡을 대로 낡아 마치 수천년의 풍상을 겪은 골동품 같은 모양으로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가 수집한 자료의 일부 주인공들은 살아생전에 필자와 동시대에 호흡하기도 했는데 낡은 자료를 들여다볼 때면 그들이 먼 옛날, 먼 나라에서 살았던 인물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 속 인물들과 필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세월의 꺼풀을 벗겨가며 그들의 활동상을 더듬어가다 보면 이들이 고심했던 문제를 같이 고민하게 된다.
비록 필자와 이들은 다른 시대를 살고 있긴 하지만 한의학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 1999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지도교수님 중 한 분이셨던 홍원식 교수님(1939〜2004)께서 당신이 과거에 작업하셨던 연구 카드를 보여 주시면서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를 되새겨 주셨다.
홍원식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 열자 한약장 크기의 카드장을 만들어 그곳에 카드를 채우시고 한 장씩 한 장씩 제목과 내용을 적어 나가기 시작하셨다. 홍 교수님의 카드 작업은 『동양의학대사전』을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카드 한 장, 한 장마다 교수님의 고심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이 카드 장과 카드는 현재 경희대학교 한의학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홍 교수님께서는 당신이 젊은 시절 만들었던 한의과대학 교과서 몇 개를 주시면서 근현대 한의학의 역사를 정리해줄 것을 부탁하셨다.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부탁이었다. 단순한 취미생활처럼 근현대 한의학 서적을 모으다가 본격적으로 미지의 주제를 연구하려니 비난받을 일을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김기수(金琦洙) 대사님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기수 대사님은 근현대 한의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청강(晴崗) 김영훈(金永勳·1882〜1974) 선생님의 자제분으로 집안에서 보관해 온 김영훈 선생님의 유품을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에 기증하시겠다고 했다. 기증 자료 안에는 일제시대 간행되었던 한의학 학술잡지와 각종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기수 선생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한의계와 관련 없는 삶을 살았음에도 1974년 부친이 서거하신 후 그 유품들을 그대로 간직했다가 1999년 경희대에 기증했다. 한 해 앞서 1998년에는 경희대 한의대 학장을 지낸 김정제(金定濟·1916〜1988) 교수님의 집안에서 유품을 기증하여 근현대 한의학 자료가 풍부해졌던 상황이었다. 이 무렵부터 필자에겐 근현대 한의학 자료 수집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강원도한의사회 명예회장님이신 임일규 원장님의 지속적인 자료 제공은 필자의 희망을 증폭시켜 주시곤 한다. 젊은 시절부터 근현대 한의학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 수집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신 원장님은 피보다 더 진한 자료들을 아무 조건 없이 필자에게 넘겨주셨다. 아울러 경희대 한의대 14기로 수년전 눈을 감으신 최진창 원장님의 사모님도 자료를 기증하여 주셨다. 2010년에 그동안 보관하고 계시던 현대 한의학 자료 일부를 경희대 의사학교실에 기증하셨다. 이외에도 신설동의 고 허소(許沼) 원장님의 사모님께서도 근현대 한의학 유물과 서적들을 기증해 주셨다.
경희대 한의대 소재 한의학역사박물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