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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권영규 교수

권영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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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꿈인 릴레이를 이어준 K군 일당들에게

K군! 보건소에서도 늘 웃는 모습으로 지내지? Facebook에서 느낄 수 있지만 가운을 입고 보건소를 찾는 환자들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네.

그날 저녁 지역보건에 일익을 담당하는 공중보건의사로서 제 역할을 하는 듬직한 한의사로 만났지만, 학창시절의 순수함도 여전하여 더 반가웠다네. 옛 기억을 떠올리고자 예과 2학년 때 받았던 자기소개서를 찾아보니 다들 대단한 능력자들이었더구만!^^



간호사이신 모친의 권유로 제주 의대를 버리고(?) 진학한 K군, 중국과 한국을 번갈아 가며 살면서 상해중의약대학을 버리고(?) 진학한 한국인인 K군, 경북대 수의대를 자퇴하고 몇 번의 실패(?)를 딛고 진학한 P군, 대구에서 벗어나 서울로 진학하였다가 새로운 진로를 택하느라 나이로는 4수생인 S군, 구미에서 재수를 거쳐 진학한 스스로 지나친 승부욕을 걱정하는 Y군, 중학교 때 침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다가 공대 진학 후 원인불명의 하지통증을 침 치료하고 진로를 바꾼 Y군, 3수를 거친 뒤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격이 너무 사교적으로 바뀌어 유급(ㅠㅠ)을 한 L군, 공대를 지망하다가 깊이(?) 공부하면서 동양적 가치에 매료되어 재수뒤 진학한 L군, 외고 출신이 이과로 전과하여 3수를 거쳐 진학한 ‘깨자’가 좌우명인 J군,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운동을 좋아하고 성적에 맞추어 가까운 대학이라 진학한 J군, 그리고 비대위·편집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붓글씨와 검도를 수련삼아 하는 자네 K군! (이름 가나다순임)

비난을 각오하고 개인적 사정을 공개하면서까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보는 것은 고맙다는 인사를 일일이 하고 싶기 때문임을 이해하겠지?



K군! 벌써 4년이 흘렀네. 자네들과 함께 좁은 학생회실에서 A교수와 같이 앉아서, 우리 동기들의 졸업 20주년 사업 일환으로 학생회에 장학금 500만원을 전하려는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얼굴을 마주하였던 일이. 2007년 그해는 자네들 04학번이 본과 2학년이 되어 학생회를 맡고 있었던 해이고, 우리 1기들은 졸업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기에 함께 만나게 되었지. 본과 학생회가 처음 만들어지고 첫 학생회장을 맡았던 A교수와 자네들이 함께 자리하였으니 우리들의 감회는 남달랐다네. 일부에서는 장학금은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반대도 하였지만, 대학에 있는 우리들에게 일임해 준 덕에 학생회 활동을 해본 후배들이 아무래도 대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생각으로 자네들에게 장학금을 전할 수 있었다네. 특별한 조건이 있었지.



첫째, 해외여행을 갈 것. 둘째,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언젠가는) 전할 것.

그런데 우리는 졸업을 하고 20년이 지나서야 후배들에게 베풀었는데, 자네들은 ‘릴레이장학금’의 취지를 잇고자 학생회 때부터 돈을 모으고 공보의 월급에서 1년치 회비를 한꺼번에 모아서 졸업 2년만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K군! 자네들은 장학금을 받고 학생회를 마무리하는 그 해 겨울 당장이라도 해외여행을 갈 것 같았지만, 학사일정과 개인별 사정을 조정하느라 자네들의 표현대로 새내기 04학번이 본과 4학년이 된 2009년에 북경을 다녀왔고, 감사의 편지와 사진을 보내주어 우리 동기들의 까페에 아직도 그 자료들이 남아 있다네.



그 편지글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일행은 중국의 중의학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개인의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견문이 좁고 갇혀있는 느낌을 많이 받는 우리 한의대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우리 일행들이 접한 이런 좋은 기회를 더 많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많은 선배님들의 도움을 청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넓고 큰 세상을 바라보고 깨우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략) 더불어 선배들에게 기회를 바라기만 하는 우리가 되기보다, 언젠가 선배가 될 우리들도 후배에게 많이 베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글을 마쳤는데, 자네들의 약속처럼 그렇게 후배들에게 베풀었으니 요즈음 표현처럼 ‘완전’ 자랑스럽다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역사의 주인



K군! 자네들의 동기들이 입학하기 전 우리 대학은 교명을 ‘경산대학교’에서 ‘대구한의대학교’로 바꾸고, 2004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대구경북한방산업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동시에 서울삼성병원의 컨설팅을 받으며 한방임상시험센터를 건립하고, 한·중·일 삼국의 동방의학학술대회를 개최하며 한방산업을 선도하고 있었지. 그때 나는 한방산업공동기획단의 운영위원장과 한방임상시험센터장을 맡아서 자네들과는 2006년 본1 강의실에서 첫 대면을 하였지? 돌이켜 보면, 자네들의 학창시절 특히 학생회를 맡았던 2007년은 대학역사에 아픔을 남긴 슬픈 해로 기억되네.



요즈음도 나라를 흔들고 있는 반값 등록금 문제처럼 그해 겨울 방학기간 동안 등록금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3월1일 학생회 성명서가 발표되었지. 등록금 문제가 직원의 대자보 훼손사건을 계기로 4월까지 등록금 민주납부, 수업거부, 거리투쟁, 촛불시위로 이어졌고, 엉뚱하게도 3월 30일 본관 앞 시위 도중 다른 학과 학생들이 차량으로 우리 학생들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지. 당일의 동영상은 아고라에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그 현장과 동영상을 본 우리 교수들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네. 이후에 학생들 사이의 대치를 방관하는 대학본부를 비난하는 졸업생들의 성명서도 발표되고. 아무튼 자네들의 가슴에 남아있을 상처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이 가질 수 있는 영광으로 생각하길 바라네. 그러한 상처를 딛고 대학생활을 하였기에 자네들은 더 빨리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의미있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네.



대학의 주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학의 주인



K군! 이런 표현을 하면 전국의 모든 사립대학의 ‘대학을 세운(立) 개인(私)’이 흥분하겠지만,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은 없앨 수 없으니 주인이 될 수 있겠지(^^). K군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81년 산꼭대기에 1호관만 덩그라니 반쯤 건축되었던 대학을 다닌 동기들이 졸업하고 학교쪽으로는 무엇(?)도 안하겠다는 원망을 하곤 했었는데, 자네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네들의 동기들도 그런 표현을 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네. 그날 이야기하였듯이 나는 내가 한의학과 인연을 맺고 한의학을 전공하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다시 대학을 선택한다면 데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을 다니고 싶다네. 나이가 들수록 투쟁보다는 사랑이 더 소중하고 더 힘 있음을 느끼고, 사랑을 받지 못한 경험은 사랑을 잘 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되어 있음을 문득 문득 느끼기 때문이라네. 젊음의 열정을 학문에 쏟고 환자를 위해 자비로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 데모를 할 필요가 없는 대학을 다니고 싶은게지. 물론 데모의 경험이 꼭 부정적이지는 않음도 자네들도 알겠지만. ^^



며칠 전 모교에 남아 있는 후배교수와 함께 한 자리에서 ‘선배의 그런 판단력과 논리력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우리 대학의 주인이라는 생각과 우리 대학이 최고의 대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眞心’이 그 원천이라고 생각한다네. ‘릴레이장학금’을 기획한 것도 우리 후배들이 우리들보다 더 주인답게 후배들을 위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고(역시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지!).



시대에 뒤떨어지게 왜 ‘동의보감’을 권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졸업 20주년 기념으로 신입생들에게 ‘동의보감’을 전달하는 행사도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 5기 졸업생들의 행사소식기사를 본 동기가 내 생각이 났다며 연락을 하여 저녁대접을 받았다네.



한의대에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켜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겠지만, 7년 동안 전쟁과 유배생활에서도 집필을 포기하지 않았던 허준 선생의 정신과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의학서적으로 해외에 수출되어 지금까지 임상에 사용되는 자랑스러움을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라네. 선배들이 기증하지 않아도 전국의 한의대에서 신입생들에게 ‘동의보감’을 증정하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마음의 문제라고 본다네.



K군!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전국의 한의사들이 비록 원망이 많은 자신들의 모교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진정 대학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들을 진정 사랑하는 선배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경관이 뛰어난 보건소에서 밤새 지새울 수 있길



K군! 학생회 시절부터 만난 동기들과의 모임이 아직도 이어져 오는 걸 보니 앞으로도 여전할 것 같네. 다들 공보의 시절 전국에 흩어져 있지만, 전국의 명산 가까이에 있을 보건소를 방문하는 재미도 그 시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특권일테니 부지런히 만나길 바라네. 그리고 경관이 뛰어난 보건소에서 모일 때 연락주면 체력을 보강해서라도 밤새 지새우며 젊음을 함께 나누고 싶네. 나 또한 학생회와 졸준위를 함께 하였던 동기들과 자주 연락하며 만나는데, 안건(?)이 있으면 전국에서 모인다네. 마치 학생회 때 사건만 생기면 함께 모여 밤새 작전(?)짜던 습관 때문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밤새 한의계와 관련된 얘기로 밤을 지새우지.



봉사하는 큰 꿈 실천을 기대하면서



K선생! 요즈음 세대들은 ‘대박인생’을 꿈꾸는 경향이 있는데 동기들도 그러한가? 아니면 이제 한의학에 물이 들어 대박보다는 ‘가늘고 긴’ 인생을 꿈꾸는가? 의사라는 직업이 그러하지만, 본질적으로 자본과 가까워질수록 봉사가 힘들지 않은가? 보건소에서도 많은 수의 환자를 보면 아무래도 소홀해지고, 늘 깨어있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치료하게 되지 않던가? 장인들은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고난한 과정을 거쳐 만든 작품도 미련없이 포기하는데, 자신의 치료에 만족하려면 정말 시간이 부족할테니 어떠한 한의사로서 삶을 꾸려갈 지 큰 고민하길 바라네.



또 돈도 잘 벌면 어떻게 쓸 것인지 늘 생각해 두게나. 준비없이 생기는 돈은 인생을 망칠 수 있으니. 자네들은 학창시절부터 공보의 월급까지 모아서 장학금을 마련한 걸 보니 큰 꿈을 세우고 멋있게 돈쓸 줄 아는 소질이 있어 보이네. 그날 이야기하였듯이 100년 가는 기업처럼 자네들의 정신을 이어갈 멋있는 기획을 하여 먼 훗날 함께 축하할 일을 만들어보게.

초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양산벌에서 자네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권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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