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꼼수와 깔대기
왜 한의계는 이렇게 감추는 게 많나요?
‘꼼수’ 부리지 말고 맨몸으로 맞딱뜨리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방송작가로부터 한의사편 <명의>를 꾸려보고 싶다는 기획의도를 전해듣게 되었다. 그런데 방송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진행을 하면 할수록 이런저런 문제들이 너무 많더라는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양방쪽은 대개 대학병원들을 중심으로 각 병원에서 ‘스타’라고 불리우는 교수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늘어서 있고 각 병원 홍보실에 전화 한 통이면 각 병원에서 속칭 ‘잘나가는 분들’, ‘병원에서 미는 분들’의 명단을 바로 얻어낼 수 있으며 또한 각 학회에 팩스만 보내도 각 학회에서 2~3명씩은 바로바로 추천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간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지만 매주 다양한 전공과목과 질병을 다룰 수 있었고 대개의 의사들이 드라마적 요소도 갖추고 있었고 해당 교수를 위해서라면 인터뷰에 응해줄 적극적인 성향의 환자분들도 몇 분은 늘 섭외가 가능했으며 수술장면, 연구장면, 학회장면, 진료장면 등이 풍성했었다고 한다.
한방쪽에서도 이런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한 번 만들어보자며 몇 어르신들과 말씀을 나누어 보면 일단 ‘누구’를 선정하느냐라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교수들 중에 1시간이라는 방송시간을 채울 정도로 여러 요소를 갖춘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렇다고 개원가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자니 광고성으로 흐를 위험도 있고 대학병원 교수들도 반대할 것이며 그 추천의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방에서는 수술장면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치료장면이 부족할 것이고 특히 진료장면은 공개하기에는 좀 뭣한 면이 즉 비방이라 공개하기도 어렵고 공개하기도 싫고 실제로 화면에 보여줄 정도로 화려한 것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기획단계의 회의에 지쳐버린 그 작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밖에서 바라보는 한의사들의 이미지가 의사들과 많은 비교가 되겠구나’ 싶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작가의 질문 중 하나가 “교수님, 왜 한의계는 이렇게 감추는 게 많은가요?”였고 “양방보다 규모는 적은데 그 안은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라는 탄식이 이어졌다. 혹시 그 작가가 이 새로운 방송에 대한 기획을 포기하려는 다짐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섣부른 걱정도 들었다. 좋은 기회를 우리의 준비 미숙으로 또 날리는 건 아닌지 자꾸 조바심이 든다.
내가 좀 더 개입할 수 있다면 대학병원 위주도 아닌, 방송에 돈 대는 부자병원 위주도 아닌, 그야말로 수십년 한 가지 질병에 매진해 오신 향토명의 소리 듣는 한의사 선배님들을 발굴하여 오디오, 비디오 안 된다고 TV 출연 꺼려오셨던 분들만을 위주로 한 번 꾸려볼만도 할 것 같은데…. 그리고 화려한 수술장면, 학회발표장면 대신 그 선생님만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전국에서 몰려든 수십, 수백명의 환자들의 인터뷰 장면을 넣으면 될 것 같은데. 이런 게 방송꺼리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평가는 시청률이 말해주겠지만 그런 한의사 선배들은 우리 주위에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향토명의로 불리우는 참 한의사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각자의 동네에서 ‘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결은 물론 실력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겠지만 그보다도 많은 환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음을 얻는다는 것… ‘꼼수’가 아닌 진실성과 진정성으로 늘 그 자리에서 한 두 가지 질병에 매진해 오셨던 성실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꼼수’의 사전적 정의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다. 향토명의 이야기를 하다가 ‘꼼수’라는 단어로 이야기가 옮겨붙어서 말인데, 요즘 이 단어가 새삼 화제이다. 그러고보니 ‘꼼수’를 부리는 주변 한의사들의 이야기가 종종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이는 비단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지금은 봉직의로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비닐하우스 안에 살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 개원의가 되어 살벌한 야생 생활을 해야 한다면 어떤 ‘꼼수’를 부릴지 나도 모른다. 많은 ‘꼼수’는 어쩌면 한의원의 영업 형태의 일부일 수도 있겠고 그래서 그 ‘꼼수’를 들여다보면 이 시대 개원의로 살아간다는 것의 처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꼼수 중 하나는 “10번 치료를 받는 것을 프로그램화 해서 한꺼번에 수납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다용하고 있는 패키지 프로그램이다. 우리로서는 일반적일 수도 있는데 특히 그 환자분이 통증환자셔서 그랬는지 내가 한 번에 나을지 열 번에 나을지 어찌 알고 열 번을 한꺼번에 수납을 하라는 것인지 침값이 싸니까 돈을 많이 받으려고 저렇게 꼼수를 부려서 괘씸해서 한 번 가고 나머지는 환불을 받아오셨다며 씩씩거리셨다. 요즘 한의사들 왜 그러냐며… 약으로 돈을 못 버니까 이제 침값을 약값처럼 받으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요즘 한의사들 왜 그러냐…’는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고 환자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의사들이 꼼수를 부리는구나…’ 로 보이는 대목은 곳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2011년 한국의 한의사들은 왜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로 전락했을까? 50~60대 한의사 선배님들은 대개가 한의학의 미래를 애처롭고 애잔하게 바라보며 과거 좋았었던 한 때, 본인이 잘나갔던 한 때를 회상하시는 듯한 말씀을 자주 하신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날은 2012년이지 2002년이 아니기 때문에 어르신들로부터 귀담아 들을 덕담도 좋지만 언제까지 미래가 아닌 과거에 갇혀 지낼 것인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의원에서 고가의 치료 패키지 프로그램을 강권하는 것이라든지 혹은 사보험으로 환자들이나 자동차보험 환자들을 입원시켜서 입원실을 겨우겨우 유지하는 현실은 과거 하나하나씩 제대로 짚어내고 준비해서 법적 근거, 치료적 근거를 마련해서 합법의 플랫폼을 만들어두었더라면 꼼수없이 보다 당당하게 환자들을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런 기초 작업들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하나하나 묘수를 부리지 않으면 힘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도 앞서지만 2012년 아니 2020년을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은 꼼수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얕은 꼼수는 욕만 먹을 것이다. 그리고 얕은 꼼수는 이미 한의계 꼰대들이 다 해 본 것들이거나 실패가 분명한 꼼수일 것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나약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무기와 끝도 없는 자기애 정신일지 모른다. 이른바 ‘깔대기’ 정신이랄까?
어디가서 크게 내세울 학술적 업적 하나 (아직까지는) 없는 교수 신분의 필자인지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이 글을 우리 학생들이 볼까봐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우리의 서바이벌을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깔대기 총대를 매어볼까 한다. 12년차 임상 한의사로 살아온 나는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그 어떤 한의사 아니 의사를 통틀어서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화술’과 끈끈한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2000년 인턴 때 인연을 맺었던 환자가 그 때의 나를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게 이런저런 상담을 해 오는 것은 물론이고 4년 8개월 근무했던 동신대학교 목동한방병원에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환자분들은 내가 떠난 후의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양산에 있는 현재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진료를 위해 그 먼 길을 날아오기도 하셨다. 주말에는 내가 서울에서 지낸다는 사적인 정보를 알게 된 몇 분들은 상담을 간절히 원하시는 통에 근처 다른 절친 한의사 선배들에게 소개장을 써 드리고 직접 안내도 해 드렸다. 나로 인해 큰 통증질환의 한 고비를 이겨내셨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절대 신뢰는 절대로 끊을 수가 없는 것이 의사-환자간의 관계인 것도 같다. 이 끈끈함을 셀 수도 많이 경험했고 가끔 환자분들 혹은 병원일로 힘들었어도 “교수님 덕분에 저 살았잖아요…”라는 많은 환자분들의 감동어린 편지와 포옹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내가 환자들과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대화의 기술’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의신문의 이 귀한 지면을 내 자랑으로 채우게 될 줄 몰랐다. 그래서 지금 상당히 낯부끄럽다. 누군가의 칭찬을 들을 때면 늘 “별 말씀을요”, “송구합니다”를 연발했었다. 한의학의 많은 치료기술들과 임상 성과들이 그렇게 겸손 버전으로 일관하다가 지금 풍전등화의 위치까지 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자기PR 시대가 도래한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의계는 지나치게 겸손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미 FTA니, 의료민영화니, 영리병원이니 한의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은 점점 나쁘고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우리는 정말 너무 안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깊은 한숨을 감출 수가 없다.
변신이 필요하다고 말만 해왔지 한의계가, 한의사들이 그간 어떤 변신을 해왔었나 따져보니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도 벌을 좀 받아야 한다. 2011년 새해, 차원이 다른 내가 되어보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곧 연말이 다가오다니 말이다. 올해 후반기를 되돌아보니 <나는 꼼수다>와 <슈퍼스타K3>라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나꼼수>를 통해서는 “쫄지 말자” 정신과 끝도 없는 자기자랑으로 일관하는 ‘깔대기’ 정신, 그리고 모든 심각한 상황을 희화화 시켜버리는 대범함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슈스케3>를 통해서는 멋지게 잘 노는 것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본인이 가진 능력을 모두 내보여야 하는 무대에서 꼼수는 통할 수 없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해야 하는 세상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여져 있는 그래서 모두가 우리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무대일 수밖에 없다. 전통적 가치에 의해서 보존되어져 왔던 많은 개념들이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 방영되었던 <산후풍은 있는가> 라는 다큐도 그렇고 서양에서 진행되는 많은 한의학 관련된 연구의 출발은 “침은 효과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를 전제로 하고 있다. 꼼수 부리지 말자. 깔대기 정신으로 우리 스스로를 무장하자. 맨 몸으로 맞딱뜨리자. 2012년 새해가 오고 있다. R U R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