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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이상곤 원장

이상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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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건강 유지 비결과 질병

이상곤의 타임머신



조선시대의 왕은 단순히 개별적인 인간이 아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주는 천명의 계승자다. 설문해자는 왕을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에 문자를 만들 때 세 번 줄을 그어서 그 가운데를 연결시키는 것을 ‘왕(王)’ 이라고 한다. 삼(三)은 하늘, 땅,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왕의 건강과 질병, 치료는 국가의 안위와 연결된 중요한 정보다. 건강 관리에 기울인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인조실록에 “천지의 신이 의탁하고 억조신민이 받드는 바이니 병을 삼가는 도리에 대하여 더욱 조금이라도 소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왕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국가적인 최선의 의학적 노력을 기울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노력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도적 학문적인 시스템도 완성했다. 왕의 치료를 전담하는 어의들은 숙련된 궁중의들만 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간의 뛰어난 명의들을 초청하여 진료에 참여시켰다. 열린 시스템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지만 능력있는 의사들을 참여시키는 유연한 제도였다. 특이한 점은 기술적인 부분은 의사들이 담당하였지만 치료의 논리적 타당성은 유학자들인 제조들이 검증하였다는 점이다. 이같은 열린 의료시스템은 질병 해석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는 특이한 방식이다.



조선왕들의 단명은 스트레스와 과로



질병 경과와 치료법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수집되었고 집대성하여 향약이라는 토속의료를 체계적으로 기존 주류의학에 편입하였다. 향약은 단순히 민간에서 사용하는 유용성뿐만이 아니라 숙련된 궁중의와 유학자들을 통해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입된 중국의료와의 접점을 통해 중국의학의 조선화를 이루었고 동의보감의 집대성을 통해 획기적인 한국의학으로 탄생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향약은 긴 검증을 통해 민간의 경제적 이유와 편리성이라는 소박함에서 주류에 편입된 것이다. 하멜표류기에는(1630~1692) “조선인들은 많은 약초를 재배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약초를 거의 쓰지 못한다. 의원은 고관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이 의원을 부를 여유는 없었다.”



동의보감이 의학의 자주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스타가 이룬 업적은 의학의 질을 완전히 개선하지는 못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군왕들은 지금 세상에 의학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없다. 의관을 천시하는 풍토가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왕들의 목숨마저 위협하였다. 소현세자나 정조처럼 조선의 개혁과 개방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이같은 거대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의 질병들이 이 시대에 던져주는 분명한 교훈이다. 조선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에 불과하다. 국가적인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단명했을까. 해답은 지금시대와 똑같은 스트레스와 과로다.



스트레스는 대부분의 왕들이 토로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였다. 2대왕 정종은 “본인은 본래 병이 있어서 잠저 때부터 밤이며 마음 속으로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고 하였고 성군인 세종도 요동의원 하양이 진맥한 뒤 “전하의 병환은 맥이 상부는 성하고 하부는 허하므로 정신적으로 과로한 때문입니다” 라고 진단하였다. 세조도 질병이 이어지자 꿈에 현호색을 먹으면 낫는다는 계시를 받고 七氣湯에 현호색을 복용하고 질병이 쾌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종기는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지긋지긋한 병



칠기탕이 기가 울결한 질환 즉 스트레스 해소에 처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화병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광해, 연산, 숙종, 중종 등이 모두 한결같이 속에 화가 있었다는 점은 현재의 관점에서의 스트레스가 가장 지배적인 질병의 원인이였음을 보여준다.



종기는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가장 지긋지긋한 질병이었다. 세종, 문종으로부터 종기를 치료하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숨을 거둔 효종이나, 종기를 치료하다 죽은 정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왕들이 종기에 의해 고통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종기의 원인은 火다. 동의보감은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흔히 이런 병이 생긴다”, “아픈 것, 가려운 것, 창양, 옹저, 저, 진, 유기나 멍울이 생길 때 속이 답답한 것이 심한 것은 다 화열에 속한다. 이때 불에 가까이 해서 약간 덥게 하면 가렵고 몹시 뜨겁게 하면 아프다. 불에 닿게 하면 헌데가 생긴다. 이것은 다 화의 작용이다” 라고 원인을 밝힌다.



스트레스가 종기를 유발하거나 안질 등 다른 질환의 내재적 원인이라면 피로와 과로는 육체적으로 가하는 고통이다. 조선의 왕은 근본적으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추구하였다. 내적으로는 성인 같은 인격을 완성하고 외부로는 왕다운 왕 노릇을 하라는 규범이다. 성인 같은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 학문에 매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스트레스와 과로 피하는게 장수의 지름길





경연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매일 신하들과 학문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일 수밖에 없다. 업무와 공부가 반복되고 신하에게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 잠까지 줄이면서 건강에는 붉은 경고등이 나타난다. 의욕이나 집중력이 사라지고 초조감이 쌓이며 잠을 잘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 사신의 접대, 잦은 술자리와 잠자리는 무장의 후예인 강철 같은 그들의 체력을 소진하고 죽어서야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세조의 이야기는 확실하게 그 원인을 짚어준다. “내가 어렸을 때 방랑한 혈기로서 병을 이겼는데 여러해 전부터 질병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왕위에서 쫓겨난 2대 정종과 광해군의 삶은 이점을 증거하는 좋은 예다. 정종은 어렸을 때부터 허약하여 주변의 걱정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는 63세까지 살았고 태조 이성계도 74세까지 장수하였다.



광해군 또한 재위기간에는 화병과 여러 가지 질병을 호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67세까지 살아 장수하였다. 뛰어난 명의와 사철 때 맞는 음식, 약에 가까운 다양한 약선요리가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과로를 피하는 것이 건강을 보장하는 지름길임을 왕들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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