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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장규태 한방소아과 교수

장규태 한방소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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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보는 소아 치험례

알기 쉬운 한의학-102



조선시대 서호수[徐浩修, 1736~1799]라는 선비가 있었다.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양직(養直), 시호는 문민(文敏)으로 중추부판사 서명응(徐命膺)의 아들로, 1765년(영조 41)에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持平)이 되었고, 1776년 사은부사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에 규장각 직제학(直提學)이 되었다. 1781년 부친 서명응과 함께 정조의 명을 받아 《규장총목(奎章總目)》의 편찬사업을 완수했으며, 1799년에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의 속편을 편찬하였으며, 저서로는 《연행기(燕行記)》가 있다.



하지만 이 분은 어릴적 소화기가 매우 약해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은 기록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전문서적인 《급유방(及幼方》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세마(洗馬) 서명응(徐命膺)의 아들이 본래 감질(疳疾)이 있었는데 열살 때 기름지고 단 음식과 생 음식, 찬 음식을 지나치게 먹어 가슴과 배가 찌르는 듯 아프므로 향사양위탕(香砂養胃湯)을 쓰고 나았다. 그 후 6~7개월 지나서 음식 먹는 것을 주의하지 않아 증상이 다시 발작하였는데 지난번보다 더 심하였다. 나(조정준)는 음식물이 오랫동안 비위(脾胃)에 정체되어 소화되지 않으므로 충(蟲)이 되었으니 사군자(使君子), 관중(貫中), 석웅황(石雄黃) 같은 살충제를 썼더니 이튿날 과연 회충이 나오고 배가 아픈 것이 조금 멎었으나 오래되지 않아 또 발작하므로 다시 비위를 따뜻하게 하고 회충을 안정시키는 약을 쓰고 계속하여 이공산(異功散)에 건강(乾薑), 사인(砂仁), 신곡(神 )을 가미하여 쓰고 겸하여 팔미환(八味丸)을 쓰니 점차 나았다.”



이 글과 더불어 아버지 서명응이 급유방의 저자인 조정준(趙廷俊) 선생님에게 보낸 감사편지가 다른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명응의 아들 호수는 나서부터 병이 많아 2세부터 13세까지 헌데와 옴이 생기고 설사, 부종, 창만과 위황, 수척 등 증상들이 있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매번 다른 의원들은 열이라 하는데 조 선생은 차서 그런 것이라 하였고 다른 의원은 실증이라 하였는데 조 선생은 허증이라 하였고 때로는 달이던 약을 치워버리고 다른 약을 고쳐 쓰기까지 하여 위태한 것을 낫게 하였고 죽는 것을 살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근년에 음식을 조절해 먹이지 못하여 다시 가슴과 옆구리가 아픈 병이 생겼는데 매번 발작할 때에는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뜨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하게 된다. 전국의 이름난 의원들이 다 치료할 수 없다고 하는데 조 선생만은 시종일관 아무말없이 서두르지도 않고 늦추지도 않으면서 순서있게 치료하여 지금에 와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이를 낳은 것은 부모요, 아이를 살린 것은 조 선생이다. 그러므로 아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 선생의 힘을 입지 않은 것이 없다. 조 선생은 우리집에서 3대를 두고 친분이 있어 우리 형제와 삼사촌들이 누구나 다 내 아이처럼 은혜를 입었지마는 그 중에서도 내 아이가 은혜를 가장 많이 입었으므로 특히 그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한다. 이 책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의 내용은 다 실지 경험한 일을 서술한 것이고 보고 들은 것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1748년 음력 6월 하순에 홍재 서명응 군에게서 받은 편지를 기록한다.”



급유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전문서적으로 그 의의가 크고 다른 서적과 달리 조정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체험한 실제적인 치험례가 85가지가 수록되어 있어 그 당시의 치료를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다는데 더 의의가 크다. 비록 한가지 치험례이지만 그 분들의 숨결이 함께 느껴지고 상황이 한눈에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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