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원과 전통지식 활용에 대한 이익을 공유하라
나고야의정서 (上)
1. “창의적 모호함 속의 걸작품
(a masterpiece in creative ambiguity)”
2010년 10월27일 일본 나고야에서는 생물다양성협약 제10차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선진국과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개도국과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누가보아도 나고야 총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총회 마지막 날인 2010년 10월29일 새벽, 의장국인 일본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협상단을 설득하기 시작하였고 폐회를 불과 2시간여 남겨놓고 문안에 잠정합의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1993년 발효한 생물다양성협약의 두 번째 의정서인 나고야 의정서, 정식명칭은 ‘생물다양성협약 부속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과 이용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의 공정하고 공평한 공유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NAGOYA PROTOCOL ON ACCESS TO GENETIC RESOURCES AND THE FAIR AND EQUITABLE SHARING OF BENEFITS ARISING FROM THEIR UTILIZATION TO 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입니다
당시 정부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이번 의정서 채택으로 지난 1992년 6월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된 후 18년간 진행된 생물유전자원 이익 공유에 관한 논의가 마무리 되었다”고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나고야 의정서가 갖는 문화적·경제적 파급력에 비해 의정서 자체의 문안은 매우 모호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총회 의장이었던 일본이 폐회를 불과 하루를 앞두고 도저히 합의될 수 없는 쟁점들(brackets)은 모두 삭제 또는 내용을 모호하게 만들어 합의안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제협약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모호한 내용으로 가득한 나고야 의정서를 협상자들은 ‘창의적 모호함 속의 걸작품’이라고 평하였으며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전 세계에서 나고야 의정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2. 생물다양성협약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다양성협약(CBD: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의 제10차 총회에서 합의 채택된 의정서입니다. 생물다양성협약은 생물다양성 보전, 그 구성요소의 지속가능한 이용, 생물유전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공평한 공유라는 세가지 방향성을 목적으로 하는데 나고야 의정서는 이중 세 번째인 유전자원의 이익 공유에 대한 협정입니다.
생물다양성협약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생물유전자원이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되어 자유롭게 접근되고 이용되어 왔습니다. 지구상의 동식물을 어느 특정 공동체의 것으로 규정하지 않고 공동의 자산으로 여기는 것은 얼핏 당연한 듯 보이나 이러한 인식 하에서 이익을 보는 대상은 생물자원을 이용하여 특허를 신청하고 이로써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게 되는 선진국과 대기업들 뿐이었습니다.
가령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기술이 부족한 개도국은 자신의 국가에 자생하는 식물로 만든 의약품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선진국에게 수입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생물자원 이용으로 발생한 이익을 해당 생물자원의 보유국에게 일정 정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생물다양성협약과 나고야 의정서의 핵심 내용입니다.
생물다양성협약에 의해 유전자원에 대한 이익 공유 사례는 이미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의 님나무로, 미국과 유럽에서 님나무의 오일 추출성분을 특허출원하였지만 님나무가 전통적으로 인도에서 천연 약재로 사용되어왔음이 알려지자 진보성 결여를 이유로 특허가 취소되었습니다. 생물다양성협약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과거 많은 자생 유전자원을 침탈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임영운 박사는 19세기 말부터 미국, 일본 등이 한반도 고유 생물유전자원을 수집하였고 15개 기관에서 2만여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에 반출된 식물은 1000여종 이상이며 이중 280여종이 상품화 되었다고 합니다.
3. 나고야 의정서 주요내용
나고야 의정서는 전문과 36개 주요조문, 그리고 1개의 부속서로 구분됩니다. 나고야 의정서의 핵심 내용은 ‘접근(Acess)’과 ‘이익 공유(Benefit-sharing)’의 두가지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전자원을 이용하기를 희망하는 기업이 유전자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해당 유전자원의 제공국이 정한 절차에 따라 사전통보승인(PIC, prior informed consent)을 받아야 하고 유전자원 제공국은 유전자원을 이용하여 파생된 이익을 ‘이익 공유’하기 위해서 상호합의조건(MAT, Mutually Agreed Terms)을 체결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과 이익 공유에 대한 국내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는 것이 나고야 의정서의 가장 핵심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정서가 명시한 이익 공유 대상은 첫 번째 ‘생물유전자원’과 두 번째 ‘토착지역공동체(ILC, Indigenous and Local Communities)가 보유한 생물유전자원 관련 전통지식’입니다.
공간적 적용범위로 보면 자국 영토를 벗어난 공해, 혹은 남극 등지에 존재하는 생물유전자원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시간적 적용범위에 대해서는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한 시점부터냐, 생물다양성협약이 발효한 1993년까지를 소급하느냐로 논란이 있는데 개도국은 심지어 1993년에 취득한 유전자원에 대해서도 이익 공유의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고야 의정서는 2010년 10월30일 합의되었지만 다시 각국이 서명하고 비준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2011년 2월2일부터 뉴욕 유엔본부에서 1년간 서명을 개방하고 있으며 2012년 2월1일까지 50개국이 비준을 한다면 이후 90일째 되는 날에 정식 발효됩니다.
나고야 의정서에 비준한 국가는 자국민이 외국의 생물유전자원을 획득하여 이용할 때 해당 국가의 PIC, MAT 체결을 위한 입법·행정·정책적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생물유전자원 이용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점검기관(Checkpoint)를 설치하여야 합니다. 2012년 2월6일 현재 92개 국가가 서명하였으며 우리나라는 2011년 9월20일 유영숙 환경부 장관이 서명하였습니다. 의정서는 빠르면 올해 안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