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7년 『東方醫藥』誌가 밝히는 유공자들
1957년 나온 『東方醫藥』誌 제3권 제4호에는 당시 유일무이한 한의계의 정론지로서 활동했던 본 잡지가 자금의 문제로 1년여 넘게 간행되지 못하던 것을 네명의 한의사 독지가의 기부로 속간되게 된 사실을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東方醫藥誌有功者紹介版’이라는 제목에 소개된 네명의 한의사는 상중당한의원장 李鍾海, 천부한의원장 洪鍾憲, 보생당한의원장 李根七, 원일한의원장 金昇起 등이었다.
이들 네사람을 소개한 글을 원본 그대로 아래에 요약한다.
○ ‘仁術本位로 하는 醫功을 세워려고 努力하는 先驅者’ 삼중당한의원장 李鍾海: “性稟이 柔하고 行身이 寬하다고 알려져 있는 李鍾海 先生은 서울 胎生으로 嚴格한 禮儀凡節에 傳統있는 名聲높은 家門에서 出生하여 普成中學校를 優秀한 成續으로 卒業하고 銀行員으로 八年間 勤務하면서부터 財政經濟에 關한 實際的인 經驗과 硏究를 綜合하여 얻은 知識과 力量으로 産業에 임한 바가 있다. 그는 ‘漢醫師타잎’으로 仁慈한 모습으로 患者의 精神的 慰安을 주어가며 익숙한 臨床治療의 多大한 成果를 거두고 있다. 環境整理한 診察室에서 國民의 健康을 爲하여 疾病 治療와 醫學的 學理 硏究에 애쓰는 偉容은 반드시 누구에 못지않는 社會的 曙光있는 醫功을 세울 것으로 將來가 자못 期待되는 바 크다. 그는 서울特別市漢醫師會 副會長을 역임했다.”
○ ‘한의학 向上과 實力化를 爲하여 싸우는 한의사’ 천부한의원장 洪鍾憲: “서울 한의학계의 重鎭으로 屈指的인 存在로 學術面으로나 醫術面으로 堂堂한 醫人으로서 他의 認定하는 바로 事實有能한 老練에 漢醫師로서 ‘醫術 向上과 實力化가 오늘에 緊急問題’라고 主張하는 그는 獨特히 不斷한 勤勉 節介있는 信條를 가진 한의학자이다. 지금으로부터 三十餘年 前 專門學校를 優秀한 成績으로 卒業한 秀才의 法學士로 敎育에 普及이 人類를 根本的으로 人格化함이 첫째라는 굳건한 信念으로 十餘年間 敎員生活에서 많은 人材들을 社會로 輩出하는 한편 漢醫學에 뜻을 두고 多年間 學理的 硏究를 거듭하여왔다. 醫術 向上과 實力化를 爲하여 初志一貫한 漢醫學 硏究로 ‘衆生廣齊’하는 妙道로 쌓은 醫績도 至大하려니와 將來가 囑望되는 바 크다고 하겠다.”
○ ‘醫治上 自負하지 않고 醫功을 쌓아가는 醫家’ 보생당한의원장 李根七: “서울 孝悌洞에 자리잡고 있는 보생당한의원 李根七 원장은 治療面에 있어 ‘나는 무슨 難治病을 고치느니-또는 高名하니’하는 醫治上 自矜이나 自負 自家宣傳이란 조금도 하지 않고 다만 醫者는 國民의 疾病 治療가 本分인 것으로 하고 對症患者에 60퍼센트 以上 完治를 보는 것이 醫家의 社會的 責任과 義務란 着實한 信條로 恒常 實力을 本位로 하여 患者를 對症하며 學理的 硏究와 오랜 臨床治療에서 體得한 빛나는 經驗方을 살려가며 科學的 治療計劃을 세워 卓越한 醫技로서 民生保健事業에 至大한 醫功을 세우고 있어 孝悌洞, 忠信, 東崇洞 一帶에서 寵愛를 받고 있는 서울 한의계에 重鎭으로 本誌 續刊을 爲하여 三個月에 걸쳐 物心兩面으로 援助하였다는 것도 現社會에서 흔히 볼 수 없는 黃金萬能 拜金主義者와는 類가 다른 한의학 부흥의 유공자이다.”
○ ‘한의학계 發展의 先驅者’ 원일한의원장 金昇起: “‘義理’라면 누구에 못지 않는 先驅者이요 性品에 ‘强柔’를 가리자면 ‘岩下老佛’의 象徵인듯 淳朴하고 溫柔한 人間味가 多分히 보이는 江原道 胎生으로 市內 東大門區 龍頭洞에 있는 원일한의원 원장 金昇起는 臨床治療面에나 學術面에 있어 優越한 才士로서 社會的 活動도 兼有한 재간꾼으로 將來 囑望되는 바 크다고 보겠다. 그는 언제나 自身의 患者의 神經으로 쓰라림을 느끼고 治療에 置重하기 때문에 至極히 精誠어린 臨床施療를 하고 있는 良心的 한의사로 定評을 받고 있는 것이며 本誌 續刊을 爲하여 多大한 功獻을 寄與한 바로 本誌가 蘇生의 길을 얻은 것이다.”
<- 1957년 ‘동방의약지’에 기제된 4인의 유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