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身形藏府圖 뒤에는 ‘孫眞人曰’로 시작하는 문장 다음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이어져 있다.
“朱丹溪曰凡人之形長不及短大不及小肥不及瘦人之色白不及黑嫩不及蒼薄不及厚而
肥人濕多瘦人火多白者肺氣虛黑者腎氣足形色旣殊藏府亦異外證雖同治法逈別.”
위의 문장은 원나라의 朱震亨(1281~ 1358)이 지은 『格致餘論』 안에 나오는 ‘治病先觀形色然後察脈問證論’이라는 제목의 글 안에 포함된 일부 내용이다. 朱震亨은 丹溪지방에서 활동했기에 朱丹溪라고 부른다. 朱震亨의 학설로 유명한 것은 ‘陽有餘陰不足論’으로 ‘相火’의 常變에 따라 인체의 상태를 논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상화는 망동하기 쉬우니 망동하면 경혈을 손상하여 病變을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임상 치료에서 滋陰降火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養陰이 필요하다.
위의 문장은 朱震亨의 『格致餘論』에서는 진단상 觀形色이 먼저이고 察脈問證이 다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써놓은 것이다. 『格致餘論』은 3000여 자로 쓰여진 朱震亨의 대표작으로서 그의 의학사상의 요점이 되는 것을 적어놓은 적은 양의 이론 중심의 의서이다. 이 의서에 나오는 위의 문장을 『동의보감』 앞부분에 ‘孫眞人曰’로 시작되는 문장 다음으로 두 번째에 놓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孫眞人曰’로 시작하는 문장에서 인간과 자연의 연관관계, 즉 天과 地의 人과의 형상적·수리적 대응에 대해 논하는 것에 이어서 외형적 진단을 논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말한 내용은 인간과 자연의 밀접한 외형적·내용적 상응이며, 이러한 상응은 자연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해낼 수 있는 기초 지식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수행해내기 위해서 보다 더 구체적인 진단상의 기준이 필요하다. 자연의 영향에 따라 인간이 태어나서 삶을 영위한다는 점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이지만 그 타고난(이것은 선천적·후천적으로 품부받은 것을 모두 포함함) 품부의 차이로 인하여 감별되어야 할 외형이 존재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한 우선적 이해가 바로 진단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허준은 인지시키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위의 문장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朱丹溪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사람의 형체는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 미치지 못하며, 몸집이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 미치지 못하고, 살찐 사람이 마른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의 피부색은 흰 사람이 검은 사람에 미치지 못하며, 아리따운 사람이 씩씩한 사람에 미치지 못하고, 옅은 사람이 진한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살찐 사람은 습이 많고 마른 사람은 화가 많다. 피부가 하얀 사람은 폐기가 허하고 검은 사람은 신기가 족하다. 형과 색이 이미 다르면 장과 부도 역시 다르니 밖으로 드러난 증상이 비록 같더라도 치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위의 문장은 ‘사람의 형체(人之形)’와 ‘사람의 피부색(人之色)’의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사람의 형체(人之形)’에 속하는 기준은 長短, 大小, 肥瘦이며, ‘사람의 피부색(人之色)’에 속하는 기준은 黑白, 嫩蒼, 厚薄이다. 여기에서 『동의보감』 특유의 체질론이 드러난다. 사람을 구분하여 살펴본다는 것은 특징별로 유형화한다는 의미로서 체질론적 구분의 기준이 작동된다는 것이 외현되는 것이다. 長短, 大小, 肥瘦는 형태적 체질론이며, 黑白, 嫩蒼, 厚薄는 색채적 체질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질론적 구분의 목표는 진단학상 外證雖同治法逈別論, 즉 “밖으로 드러난 증상이 비록 같더라도 치법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논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작동된다. 여기에서 “밖으로 드러난 증상이 비록 같더라도 치법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논리는 바로 앞 문장인 “형과 색이 이미 다르면 장과 부도 역시 다르니”라는 것의 논리적 결과이다.
『東醫寶鑑』의 앞부분에 이러한 논리적 문장이 놓여 있는 것은 뒷 부분에 존재하는 진단, 치료로 연결되는 의학적 연결상에 대한 전제이며 앞으로의 긴 여정에 대한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孫眞人曰’로 시작되는 문장과 함께 논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東醫寶鑑』 전체에 전제로 깔려 있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