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약법 제정을 위한 한약 관련 용어 정의가 필요
국내 제약사들이 천연물신약 개발에 너도나도 달려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60억원을 투자해 개발된 조인스의 경우 2010년 보험청구액만 263억원으로 한해에만 투자액의 4.3배를 벌어들였고, 스티렌은 180억원을 투자해 2010년 보험청구액만 투자액의 4.6배인 836억원에 달했다.
이는 국제 메이저 제약사들조차 힘들어할 만큼 신약 개발 및 허가 과정이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는 양약 제약시장에 비해 천연물의약품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저비용으로 개발이 가능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FTA 이후 손쉬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어려워진 국내 제약사들이 변질된 손쉬운 허가과정과 정부의 투자 지원에 힘입어 새로운 돌파구를 일명 ‘천연물신약’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왜, 제약사는 한의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3일 대한한의사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안재규)가 대한한의사협회관 5층 중회의실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한의약법 제정을 위한 한약 관련 용어 정의’를 주제로 초청강의에 나선 원광대학교 한약학과 김윤경 교수에 따르면 외국의 제약트랜드가 변하고 천연물제품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제도가 신설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가 역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한약에 대한 새로운 틀이 짜여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한의사는 고려되지 않은 채 개발된 천연물신약이 전문의약품으로 보험에 등재되고 의사에 의해 처방, 약사에 의해 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방건강보험의 연도별 약제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94년 27.79%에 달했던 약제비 점유율은 2008년 이후 1.5%대에 그치고 있다.
김 교수는 “시장이 작은데 누가 투자해 제품을 개발해 주겠는가? 제약회사로서는 이러한 한의약 시장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한의사의 역할을 새롭게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 같다”며 “그 방향은 의약품에 대한 개념과 한의사 직종 이외의 산업계, 한약사 등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김 교수는 소위 ‘천연물신약’을 ‘현대화한 한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제 한의사들도 의약품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제시하는 의약품의 품목허가 및 신고를 득할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하고 식약청장이 허가한 GMP시설에서 생산해 안전성·유효성·안정성·균질성을 확보한 제품이어야 한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한약에 있어서도 향후 5~10년 이내에 제제가 대중화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한약제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행 약사법 하에서는 한약을 아무리 의약품의 조건에 맞춰 만든다 하더라도 양약이 되어버리고 한의사가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약 관련 용어의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행 한약의 정의는 약사법 제정 당시인 1950년대 시대상을 반영한 전통적인 첩약의 범위와 형태에 근간한 것으로 이러한 정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원내 조제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한약의 형태가 탕액제, 환제, 캡슐제 등의 형태로 제형 변화가 상당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며 한약재와 한약, 건강기능식품과 한약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의약품의 정의에 비춰볼 때 한약의 정의는 환자에게 투여되는 형태의 완제의약품 개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약제제’란 용어에 문제가 너무 많다
생약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한약재를 지칭하는 용어로 생약제제를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 정의하는 것은 잘못이다.
외국의 전통의학인 Naturopathy나 Homeopathy에서는 한의학과 같이 독자적인 전통약리 이론 없이 전통적 근거로 사용하는 약재들의 효능을 서양약리학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으나 서양의학에서 인정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약사법 2조6항에서는 한의학적 원리와 서양약리학적 효능으로 한약제제와 생약제제를 구분해 약리학적 효능을 입증하면 한약제제가 아니게 돼 한약의 과학화를 가로막는 악성조항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한약전 및 규격집에 수록된 한약재 중에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되는 약재가 다수 있으며 자오가, 천수근과 같이 최근 새로 도입된 약재들로 인해 사용되는 한약재의 수가 계속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국내 사용경험이 없는 외국의 전통의학에서 사용하는 약재라 할지라도 이를 별도로 서양의학적인 것으로 분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김 교수는 ‘생약제제’라는 용어를 없애고 현대적 한약제제의 의미로 천연물의약품을 정의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천연물의약품이라는 용어 없이 한약제제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로 도입된 약재들이 한약인지 아닌지, 한의사들이 사용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한의사들이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수한 한약제제 개발 활성화를 위해 임상시험 또는 일정 품질기준을 갖춘 전문한약제제에 대한 독점생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약제제의 경우 처방에 대한 특허권 보호가 쉽지 않고 기성한약서에 수재된 것은 누구나 신고만 하면 생산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어느 한 제품이 잘 팔리면 같은 처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제품을 개발한 제약사가 이익을 올리기 어려워 새로운 제품 개발 의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안전성·유효성 자료나 품질관리 방법 등에 투자해 제대로 된 한약제제가 생산, 판매될 수 있게 하려면 투자한 제약회사가 투자액을 회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독점판매권이나 일정 기간 보험급여 우선등재권 등을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약제제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일본의 경우 1985년 의료용 한방제제는 표준탕제와의 비교시험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보험에 등재했으며, 미국에서는 전문약의 경우 임상시험이 필수인데 임상시험을 하면 특허에 무관하게 독점 생산권을 3~5년간 인정해 주고 있다.
대만 또한 한약과 관련된 별도의 특허제도를 갖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한약제제를 생산하는 제약회사에게 동기를 부여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임상시험을 거친 전문의약품 한약제제는 보호약품으로 선정하거나 5년간 독점생산권을 준다는 제도가 있다면 충분히 한약제제 시장을 다시 살려 활성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와 함께 원전에 근거한 기준 처방에 대한 융통성의 범위를 확정하고 그 부분을 허락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김 교수는 한의사들의 제제 사용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한의대 교과과정에서부터 교육을 실시하고 엑스제 제조법과 품질평가법, 국내에 도입되는 외국의 약재와 제제에 대한 기본지식들이 교육되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새로운 제약환경에서 한의사의 역할이 한의사만을 위한 기성한약서의 한약제제만 사용하며 점차 고사할 것인지, 의사나 약사 시장에 덤으로 존재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처방의약품 개발과 한의사 시장 확대를 시도하며 천연물의약품의 주인이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며 “좋은 한약제제가 무엇인지, 한의사에게 중요한 지표는 무엇인지를 고민해 한의사가 주도적으로 관련된 자료를 요구하고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