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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6일 (수)

황연규 원장

황연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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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부활운동의 선봉장이었던 독립운동가의 아들 이우룡

(대한한의사협회 초대 회장 : 1908.2.1 ~ 1979.1.28, 譜名 : 墩浩, 號 : 葛雲)



민족정기의 부활을 외치며 한의사제도 부활을 위해 활동가로 활동하신 대한한의사협회 초대 회장과 2대 회장을 지낸 이우룡 회장에 관해 조명해 보려고 한다.

지금도 일제잔재인 침사, 구사의 부활을 외치는 집단이 있는데 한의사제도의 부활을 이끄신 ‘5인동지회’분들은 과감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일제가 자연도태를 목적으로 대한제국의 의사인 한의사를 ‘의생’으로 말살 도태시키려 했던 일제의 의료제도를 폐지하며 한의사 부활운동의 구심점인 ‘오인동지회’ 이우룡 회장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우룡 회장의 부친 이원발



이우룡 회장은 재령이씨 현령공파 20세로서 조선시대 儒醫를 배출한 영남학파의 가풍을 이어받았는데 그의 직계선조인 갈암 이현일(1627~1704, 이조판서) 선생은 퇴계 이황의 남인 학풍을 이어받은 학자로 유명하며 갈암 선생의 동생 이정일 또한 儒醫로서 유명하다. 특히 갈암 선생의 모친인 ‘조선의 큰 어머니 貞夫人 장계향’(이황의 문인 경당 장흥효의 딸 : 1598~1680 : 서화가)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로 음식다미방(飮食知味方)의 저자이며 조선시대 약선을 알리는 약식동원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부친 이원발(字 : 士進, 號 : 문제공)은 애국지사 김덕기, 이동녕, 이회영, 안창호 등과 활동하였으며 만주 정의부 부흥학교 교장으로 항일사상을 고취하다 잡혀 4년 선고를 받고 옥사한 것으로 유명하다(1928년 10월 14일 동아일보, <이의사 문제 실기> 참고).



2. 해방 후 일제의 잔재(침사, 구사)를 몰아내고 한의사제도 확립



부친이 옥사하여 만주 해룡현에 영면했으며 당시 그는 만주에서 의생을 했다. 1951년 한의사제도가 부활되기 전 1948년 미국군 군정청 보건후생국에서 발급한 의생면허로 한의사활동을 하셨다. 이우룡 선생님은 50년대에 한의사면허가 4번으로 등록되었으나 70년대 갱신을 통해 제1대 대한한의사협회장(1952.11~1955.11)과 제2대 협회장(1955.12~1956.4)으로 한의사면허 1번을 부여받았다.



3. 교육가로서 활동



부친 이원발 義士는 독립운동가이며 교육가였는데 해방 후 부산에 영남상업학교(現, 부산 정보고)와 영남 제1중학교(부산 영남중학교)의 설립자로서 활동하였다. 현재 아드님 일훈(작고, 캐나다 몬트리올 / 譜名 : 秉淇)·승헌(譜名 : 秉貞)이 있다. 한의사로서 부산 서구 토성동 정인한의원 원장으로 토성동 2가 13번지(자택)에서 개원했으며 6.25전쟁으로 임시수도 부산의 한의사 양성대학인 부산동양의학전문대학의 학장으로 활동하셨다.



4. 한의사협회의 활동



1952년 11월2일 대한한의사협회 결성 준비 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한의사’ 탄생에 공헌을 하였는데 51년 한의사제도 부활의 5인동지회 국회발언의 중심이었던 한국의약회(=한국의약회 > 동양의학 학술원 > 동양의학 학술회로 명칭이 변경됨)의 회원으로 중국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경험을 통해 국회활동을 했는데 “중국 의료법령 제정시 일어났던 불상사”에 관해 역설하시어 한의사제도 부활에 활동하시고 일본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침구사제도(일제시대 일본인만 회장을 둔 일본식 제도)에 관해 비판하시고 일제의 조선의료령을 파기시키고 국민의료법에 한의사의 부활을 이루었다.



대한한의사협회 1, 2대 회장이며 경남한의사회 회장, 대한한의사협회 고문(3대)을 역임하였는데 1대 회장의 취임기였던 1952년 11월에서 1955년 11월까지 대한한의사협회장으로 회를 이끌다가 수도권에 사단법인체 사무소를 두어야 하기에 회장직무대리체계로 박성수(당시 부회장)가 대리하였으며 2대 회장과 3대 한의사협회 시기에는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학술적 성과는 부산동양의학전문대학 학원장, 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대한한의사협회의 동양의학회 학술원의 병리학 부분을 담당하였고 저서로는 <한의사 수험지>(1952년 대한의검협회 발행)가있다.



의권수호활동으로 1958년 5월 26, 27일 양일간 <마산일보>에 양의 김임환의 “한의원, 한약은 전염병 환자의 도피소”라는 글을 보고 부산시한의사회 회원과 함께 고발하였으며 1960년 12월19일 <의사시보>의 김두종의 “한방의사 폐지론”에 반발하기도 하였다.



현재 경남 양산 신불산 공원묘원에 영면하신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2008년 9월26일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오인동지회 공적비’기념비를 건립하였는데 국민의료법 제정(법률 221호)에 의해 한의사제도의 부활에 공헌한 업적을 부산 오인동지와 함께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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