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지연 책임연구원과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창업 교수 공동연구팀은 여러 약재를 함께 달이는 전통 한약 제조 방식이 약재의 화학 성분을 구조에 따라 선택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대사체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규명했다.
특히 기존 연구들이 한약 처방의 생물학적 시너지 효과에 집중했던 반면, 이번 연구는 달이는 과정 자체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연구팀은 8가지 약재로 구성된 팔미지황탕을 대상으로, 약재를 함께 달인 경우와 각각 따로 달여 나중에 섞은 경우의 화학 성분을 비교 분석한 결과 총 120개 화합물 중 22개(18.3%)의 화합물이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으며, 그 중 16개는 증가하고 6개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알칼로이드류는 약 50%가 유의미하게 증가한 반면, 고분자량 배당체류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부자(附子)에서 유래한 벤조일메사코닌, 카라콜린 등의 알칼로이드는 2배 이상이, 또한 산수유(山茱萸)의 이리도이드 배당체인 모로니사이드, 로가닌 등도 크게 증가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이같은 화학적 변화가 약물 유사성 및 생체이용률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 반면, 독성 관련 지표와는 음의 상관관계를 나타냈다는 부분이다.
연구팀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세포 실험을 수행한 결과, 약재를 함께 달인 경우가 따로 달여 섞은 경우보다 세포독성이 유의미하게 낮고 항산화 효과는 더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수백 년간 경험적으로 최적화된 전통 제조법이 치료 효과는 높이고 독성은 낮추는 방향으로 성분을 조절하는 정교한 과정임을 시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약재 간 화학적 상호작용을 규명하기 위해 ‘이론적 가산 모델’이라는 새로운 분석 방법을 개발했다.
이 분석 방법은 약재를 따로 달였을 때의 성분을 기반으로 상호작용이 없을 경우의 이론값을 계산하고, 실제로 함께 달였을 때의 측정값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단순 혼합 효과와 달임 과정에서의 상호작용 효과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으며, 더불어 분자 구조 유사성 기반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화합물을 4개 모듈로 분류하고, 각 구조 그룹별로 서로 다른 추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을 밝혔다.

이와 관련 1저자로 연구를 수행한 장동엽 교수(동의대)는 “앞으로 AI 및 계산적 접근을 활용한다면 다양한 한의학적인 관례 또는 이론들이 갖는 의의에 대해 보다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지연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전통 탕제 제조법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면서 “단순히 약재를 섞는 것과 함께 달이는 것이 화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히 김창업 교수는 “현재 한약 품질관리는 개별 약재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방제 단위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변화를 놓치고 있다”면서 “방제 단위의 한약물이 갖는 특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한약물의 표준화화 현대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한의학연구원(KSN2313021)과 한국연구재단(RS-2024-00339889)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이번 연구 결과는 보완대체의학 분야의 Q1(상위 25%) SCI 학술지 ‘BMC Complementary Medicine and Therapies’ 최신호에 “Combined decoction selectively modifies chemical composition of traditional Asian medicine: a systematic analysis on Palmijihwang-tang using theoretical additive model”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됐다.